아침에는 바람이 많더니 정오가 되자 멈추었다.

날이 푹했다. 고마워라.

벌써 날이 서면 이 불편한 곳에서 얼마나 고달플 것인가.

사람들이 오는 줄 아나보다. 하늘 고맙다.

새끼일꾼들은 이 같은 일을 물꼬 날씨의 매직이라고들 한다.

 

코로나19 3차 확산세에 5인 이상 사적모임 집합금지였던 2주는

다시 17일부터 24일까지로 2주 연장되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완화된 측면도 있었다.

‘(...)

정 총리는 반면 헬스클럽, 학원 노래연습장 등 문 닫아야 했던 다중이용시설은 엄격한 방역 수칙을 적용하는 조건으로 운영이 재개된다고 말했다. 이어 카페와 종교시설 같이 방역기준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았던 곳은 합리적으로 보완한다고 덧붙였다.‘

[속보] 거리두기·5인 모임금지 연장헬스장 등 조건부 운영https://news.joins.com/article/23971688

[출처: 중앙일보] [속보] 거리두기·5인 모임금지 연장헬스장 등 조건부 운영

 

내일부터 167계자, 오늘은 샘들 미리모임이 있는 날.

낮 버스로 다섯이, 저녁 버스로 둘이,

그리고 상주하는 이들까지 더하여 아홉이 모였다.

- 아니, 그대들은 뭘 믿고 이리 모이셨대!

고맙다.

선한 일에 함께하겠다는,

선한 일인데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겠냐는 낙관이 있겠지만

혹 확진자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감당해야 할 상황에 대한 각오도 있을 것.

물꼬는 그 마음들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들 앞을 막아서서 책임을 다하리.

 

낮밥상을 물리고 차를 천천히 마셨다. 바쁠 거 없다.

오는 샘들 고생 좀 덜하게 하자,

워낙 일 많은 이곳이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여기라

일이라도 좀 덜해야 가뿐하지 않겠냐,

미리미리 안에 있던 손들이 초벌 청소며 구석구석 더 움직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몇 없는 계자라 아무래도 준비에 수월한 면도 있는.

장도 최대한 신선하게 멕인다고 미리모임 날 보러나가는데,

지난 여름일정부터는 하루 일찍 장도 봐둔다.

그러고 보면 혼자서도 대해리의 봄날이라는 제목으로 학기 가운데 5월에

아홉 아이들을 데리고(새끼일꾼 포함) 67일 일정을 진행하기도 했더랬네.

아이 하나가 깨진 출입문 유리에 다리를 다쳐 119에 실려 가고,

병원에 입원까지 시켜 오가며 돌보기도 했던.

2008년이었다. 젊은 날이었다.

심지어 그때 학부에서 특수교육도 공부하면서 말이다.

말하고 있으니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이네...

 

새끼일꾼 건호와 예원이가 물꼬 한바퀴를 맡았다.

처음 온 이는 처음이라서, 왔던 이들은 또 시간이 끼어들어있었으니

공간을 익히는 게 필요할 거다.

다시 물꼬에서 하는 교육을 되새겨보는 시간이기도.

일과 예술과 명상을 통한 교육,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끊임없이 돌아보고 하는 일상 훈련,

마지막 순간까지 물건을 어떻게 책임지고 쓰는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물건을 잘 쓰는 게 쓰레기를 줄이는 일,

그것도 이곳에서 가르치고 행하는 일이다.

물건에 대한 예의 같은 거.

이런 생각들이 물꼬 공간 구석구석에서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환기한다.

 

먼지풀풀.

아이들맞이의 첫째 작업이겠다.

청소는 핵심은 후미진 곳, 구석진 곳’.

모든 물건은 이면이 있다.

보이는 것만 하기 쉽지.

손을 뻗고 발돋움을 하고 너머로, 아래로, 구석으로 눈을 넓히기.

이번에는 창틀 묵은 먼지들을 중심으로 청소한다.

저녁 밥상에서 학교 마당에 잔해가 남은 이글루 이야기가 나왔네.

섣달 그믐날 하다샘이 만든 이글루가 운동장에 어제까지 있었다.

오늘은 지붕이 녹고 벽체만 남은.

하다샘이 그날 했던 말을 되살려 전하다.

나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진흙밭을 뒹굴어도 말린 적이 없다며,

필요한 걸 찾으면 어디 있다 알려주거나 심지어 이것도 써보라며 가져다주었다고 회상했던.

- 그래, 내가 널 그리 키웠어!

우리가 계자에서 하고 싶은 하나도 그거다.

자신이 무한히 허용된 느낌,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한껏 자신을 펼치는 장을 주고 싶다!

 

계자는 그 계자에 관련된 이들만 준비하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마음들이 닿는다.

어제 수진샘이 유기농과자들을 한 상자 보냈고,

밥바라지를 하는 인교샘은 감귤이며 부엌 식재료들이며 미리 택배를 보내왔다.

약품을 미자샘이 보냈고,

휘령샘이 들어오면서 핫팩이며 문구용품들이며.

말로는 안 비싸더라구요.” 하지만

대도시에서 저 하나 건사하고 사는 일도 버거울 청년들일 것을...

게다 달마다 물꼬 후원하는 논두렁이기도 한 그이라.

결코 넉넉하다고 타인을 돕는 게 아닌 줄 안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물꼬에 닿는 후원의 면면은

모자라도 제 것을 쪼개들 나누어주는!

커피 떨어졌는데...”

거친 멧골 생활은 벌써부터 달달한 커피를 부르게 하지.

! 그때 짠하고 해찬샘이 들고 들어오는 저 상자를 보라지.

커피였다.

오늘도 그렇게 전율이 오는, 물꼬의 작은 기적 하나 있었네.

 

미리모임’.

이 자리에 앉았는 저이들이 누구인가.

어떻게 코로나19 이 상황에서 저들은 이 멧골까지 와서,

이 낡고 거친 환경에서 자기를 쓰려 하는가.

자원봉사를 왔다가 연애를 하고 혼례를 올리고 거기 내가 주례를 서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 다시 계자를 오는 물꼬의 세월.

아홉 살 아이가 동생도 데리고 물꼬를 드나들며 자라 새끼일꾼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낼모레 군대를 가는 해찬샘.

밥상머리무대에서 시를 읽던 열 살 아이가 자라 새끼일꾼을 하고 있는 여원 형님,

말도 안 되는 일곱 살 심통쟁이였던 아이가 어떻게 저리 잘 자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건호 형님,

운동장을 누비며 축구하던 과묵한 쌍둥이 여자애 둘은 자라

(재밌어요, 좋아요, 툭툭 말이 퍽도 짧았던 그들은 그만큼 담백한 마음으로 정갈하게 자랐다)

한예종에서 현악기를 전공하고, 그 가운데 한 명 세빈샘,

물꼬가 집 못잖게 자신을 키운 집이라는 해찬샘이 말한 곳을 보러 온 새내기 채미샘,

한 인간의 성장이 보는 이를 얼마나 뿌듯하게 하는가를 언제나 가르쳐주는,

스물의 휘령샘은 서른을 넘은 지도 좀 지났고나.

밥바라지 3년차였던 2012학년도 겨울에서 2020학년도 겨울에

아이들 다 키워놓고 다시 밥바라지로 짬을 내주신,

지역활동가로 변신에 변신을 더하는 인교샘까지.

 

일정을 의논하고 역할을 나누고

1부를 마치고 삶은 고구마를 먹는다. 산골의 밤참다운.

2부 준비모임; 아이들맞이 구석구석 이름표를 붙이고 속틀을 붙이고.

구체적인 일정이야 아이들과 짜겠지만.

 

, 으윽! 바람이 대단히 찼다.

기온이야 10도가 채 되지 않았는데.

낡고 바람구멍 숭숭하나 그래도 안이라고

장작보일러 땐 본관 안이 얼마나 훈훈했던지.

나갔다가 새파래져서 들어왔네.

이 밤은 아직 아이들 들어오기 전이라

바깥해우소가 아니라 안의 흙집 화장실을 어른들이 쓰는데,

고마워라.

지나간 시간들에 샘들이 한 겨울 고생에 또 울컥해지나니.

밖으로 나가지만 않아도 수월한 멧골의 겨울밤이다.

 

자기 전 남자샘들이(라야 해찬샘과 건호 형님) 뒤란 나무보일러 아궁이 앞의 학교아저씨를 들여다본다.

사람의 마음이 그런 거라.

밤새 불을 땔 고단을 살핀.

어느 해보다 잘 마른 장작이다.

게다 중간에 도끼질을 하지 않아도 되게 충분히 쌓여있다.

방이 따숩다. 매우 따숩다.

내일은 아이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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