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없고 볕이 좋았다. 고맙다.

눈도 주고, 이어 해도 주었다. 고맙다.

아이들을 데리고 잘 있다는 건 불편을 메우고 아이들을 지키는 샘들 손만으로는 다 안 되는.

이런 절대적 하늘의 힘 같은 게 있어야. 고맙다.

 

샘들 해건지기.

오늘 아침에 눈을 감고 뜬 것 같은데 옥쌤께서 깨우셔서

내가 그렇게 잘 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채미샘의 날적이 가운데서)

전통수련 기본동작으로 몸을 풀고 대배 백배를 하고 호흡명상도.

아이들이 수행방으로 건너오고.

벌써 이틀 여기서 살았다고 해건지기에 바로 돌입하는 아이들,

샘들 해건지기를 끝내고 아이들이 잠자리를 빠져나온 옆방으로 건너가니

애들이 모두 채성이를 따라 이불을 갰더라고. 그것도 각까지 맞춰서 예쁘게.

채성아, 같이 하자고 했어?”

그런 것도 아니란다.

해건지기를 마치고도 깔개로 쓴 이불을 개서 이불방으로 들고나는 아이들.

아이들의 적응력(더하여 친화력)은 우주 최강이라!

 

아이들 해건지기;

첫째마당은 팔단금으로 몸풀기,

둘째마당은 호흡명상,

셋째마당은 마당으로 나가 걷기.

그찮아도 자기들의 흥에 겨운 아이들이

하얀 눈밭의 사걱거리는 소리에도 마냥 즐거워라 했다.

그들이 눈으로 건설한 눈 나라의 마당에서(허물어진 이글루를 중심으로 날마다 노는)

먼 곳의 마을인 양 풍경을 이루고 있었네.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드디어 밥상머리공연이 있었다.

무대에서 새끼일꾼 건호 형님의 기타에 맞춰 채성과 수범과 태양이 노래를,

서윤이는 살죽비(아이들은 어제던가 그제던가 잼베를 잡아먹었다. 찢어진.)를 두드렸네.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여행을 떠나요!”

소박한 밥상머리무대는 물꼬가 지닌 분위기와 가치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생은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로 채워진다...

누구나, 무엇으로든 무대에 서서 다른 이들과 즐거이 나눌 수 있나니!

예술은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움을 표할 수 있다마다.

그렇다고 예술가가 가진 전문성과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손풀기가 이어진다. 명상에 다름없는.

해건지기 때처럼 바로 손풀기 체제 돌입하는 아이들.

사물을 관찰하는, 그래서 나 말고 다른 존재를 볼 힘까지 생기는,

그리고 말 그대로 손을 자극하고 그림 연습까지.

그 시간은 또한 그 아이 마음 상태를 엿볼 수도 있는.

 

들불’; 겨울계자의 백미라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들에 불을 피우고 거기 고구마와 떡과 은행이 익어가고,

아이들은 얼음밭을 뒹굴다 불가로 모이고, ...

그림은 그런 거였다.

해찬샘과 건호형님이 화롯대를 마당에 옮겨 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굽고.

그런데, 다른 계자 같으면 놀면서 틈틈이 긴 줄을 이루고 먹는 것들 앞에 서 있을 텐데

샘들이 외로운 들불이었다나.

달고나가 쌓이는 걸 처음 봤다고.

아이들에게 비축된 달고나를 줄 수 있는 여유로운 순간이 있어 좋았다’(휘령샘)

입을 따라 가지 못하는 달고나의 속도였는데.

샘들도 물꼬 와서야 비로소 처음 해보는 것들이 있다.

달고나 같은 거. , 은행 구워먹는 것도.

태양이와 윤수는 채미샘이 처음 만든 달고나를 너무 사랑했고,

인서는 밖에 있는 해찬샘 건호 형님, 채성이에게 제가 만든 달고나 배달도 갔네.

 

때건지기.

, 얼마나 따순 밥인지.

새끼일꾼 아들과 함께 온 밥바라지 인교샘은

거의 10년 전에 밥바라지를 온 뒤로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펼쳤다.

작년에 고3 아들 바라지로 도시락을 날마다 두 개씩 싸며 늘었음직도.

음식이 편해졌더라.

워낙 에너지도 많고 흥도 있는 이여서 전체 분위기를 도우는 당신이라.

긴 세월 아들 둘과 물꼬를 드나들며 가족들이 공유점이 있는 것도 참 좋아 보였더랬다.

내가 밥바라지 하며 지낼 계자일 줄 알았는데,

내가 했다면 밥상이 이리 풍성할 수 없었을.

고맙다. 덕분에 샘들도 아이들도 (내가) 충분히 들여다보고 살필 여유가 되는.

교무실 일도 챙길 수 있는.

(계자는 어디서 동떨어져서 하는 일정이 아니라

물꼬의 일상 터전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

그래서 이벤트라기보다 이 멧골 일상의 연장인.)

밥바라지샘에 더하여 휘령샘의 흥도 말하겠다.

십년도 넘어 되게 본 그가 성장한 세월을 안다.

후배 품앗이샘들을 잘 안내하고 있는 그이라.

, 나는 얼마 만에 샘들한테 묻혀가는 계자를 보내고 있네.

꼭 오든 이들이 계속 오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물꼬라는 공간에 축적된 것들이(이들이) 있는.

어느 때는 이벤트적으로 흥미만을 가지고 모이는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물꼬의 세월을 잘 안은 이들 중심으로 모이는.

이번 계자도 구성이 참 좋은 샘들이라.

그래서 이리 편안히 꾸려지고 있을 거라, 꼭 규모가 적어서만은 아닌.

 

구들더께’.

게으르거나 늙어서 구들을 지고 누운 이들을 흔히 말하는 다소 부정적 낱말이나

겨울 따순 구들에서 뒹굴거리며 평안을 누린다는 의미로 물꼬에서 쓰는 낱말.

아이들은 오자마자부터 자연스레 대략 6+1+1로 편재되었더랬다.

현준 수범 윤수 동우 서윤, 그리고 태양이가 더해지고,

채성이와 인서로.

그러나 아무도 외롭지 않고,

그 덩어리가 고착화되지 않고 서로 이리저리 스며도 들고.

오늘은 주로 책방을 중심으로 모였다.

어느 계자라도 그렇기도 한데,

이번엔 본관 방들을 비우고 마당에 주로 쏟아졌던 아이들이더니

이번 시간엔 책방이다.

남자아이들 다 모여서 오목과 체스를 두고 있었네.

수범과 윤수가 아주 한참을 열중이다.

그것들이 소리 지르고 달리고 하는 것 말고도 그런 모습이 있는.

수범이와 동우와 태양이와 서윤이 바둑판을 맞대기도.

물꼬에는 동적인 활동과 정적인 활동들이 퍽도 조화로운.

아이들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그런 면면을 두루 볼 수 있는 공간이어서도 여기가 참 좋다.

세빈샘과 수범이 오목을 붙고,

건호 형님과 윤수가 체스 한판.

채미샘은 윤수와 몇 차례의 오목에 내리 패했다던가.

윤수는 바둑, 오목, 체스, 장기 끝판왕에 등극하다.

체스도 학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

멧골에 깊이 사니 세상일에 어둡긴 한데

시대는, 모든 배움이 학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가며 뛰는 게 책방에서라고 조용했던 건 아니었는데, 일순 정적이 돌았다.

, 이러면 사고가 있는 거다.

곧 동우가 현준이 안경을 발로 찼다고 교무실로 달려들 왔다.

에너지가 많았던 동우가 제 흥을 어쩌지 못하고 넘치게 쏟아 과격해졌던.

저도 제 잘못을 알지.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현준이형한테 사과를 하는 것으로,

하지만 현준은 좀 불편해하고 속상해하고 얼마 동안 계속 우울하였네.

안경은 다행히 곧 고칠 수 있었다.

뜨거운 물에 담가 안경테를 살짝 녹히고

펜치와 니퍼를 써서 잘 펴 주었다.

인서는 자기 용돈으로 산 특별한 선물을 쌤들 하나하나에게 편지와 함께 주려 한다지.

사랑하고 그것을 표현하고, 그런 마음들이 여기 모여서도 좋다.

한편 샘들은 얼어붙은 달골 길을 치우러 다녀왔다; 휘령샘 해찬샘 건호형님 채성이까지.

대부분 녹아도 그늘진 마지막 깔끄막은 한참을 녹지 않는.

낼모레 아이들과 오를 때를 위해 미리 살핀.

샘들은 이곳의 불편을 그렇게 구석구석 몸으로 채운다.

구들더께답게 더러는 따순 아랫목에 누워들도 있었다.

인서와 휘령샘이 머리를 감고 나란히 누워 끝말잇기를 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면 먹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는데

우울했던 현준이도 라면이며 타령을 하다가 좀 우울을 털었던 듯도.

 

한데모임.

언제나처럼, 아이들 수가 적다고 달라지지 않는, 노래 노래 노래들이 흐른다.

모든 노래가 좋았지만 역시나 강강술래다.

부르는 아이들의 흥얼거림, 들썩이는 어깨들이 나까지 더 크게 노래 부르게 했다’(휘령샘)

손말도 익히고.

보낸 하루를 돌아보고,

서로에게 전할 말을 전하고, 의논하고.

167계자를 위해 곳곳에서 닿은 마음을 아이들에게도 들여주었다,

우리가 얼마나 여럿의 지원과 지지로 이 계자를 누리고 있는가를.

우리 존재가 다른 존재들에 진 빚과 그것을 갚아 세상을 밝히기 위한 결의도 했달까.

수진샘이 유기농과자에 이어 안흥찐빵을,

연규샘이 아이들 주전부리거리를 챙겨주라 후원회비를 보내기도 했고,

준한샘이 머쉬멜로우며 몇 가지 먹을거리를 부엌에 들여주고 가다.

 

대동놀이.

세빈샘과 건호형님과 여원형님이 진행을 한다.

처음 진행을 맡아본 새끼일꾼들이 열심히 안내를 하는데,

벌써 신나서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

분위기로 이미 신났다.

몸으로 전하는 낱말 알아맞히기;

입에서 불이 나오고 하늘로 나는 것을 설명해도 아무도 맞힐 수 없었던 것의 답은

이었네.

배드민턴은 골프, 야구, 테니스, 온갖 운동종목이 나온 마지막에야 겨우 맞힌.

인서가 얼마나 열심히 문제를 내고 있던지.

 

항상 신기한 건 물꼬에 아이들이 와서 엄마가 보고 싶어도,

처음 와서도 재밌었다고 말하는 것이다.’(휘령샘)

윤수는 글씨를 참 잘 쓴다.

둘러앉아 하루를 돌아보고 날적이를 쓴 아이들이 씻으러 간다.

양치를 하러 간 태양이,

거울 보며 수화와 함께 방금 배운 노래를 부르는데 열중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해찬샘과 눈이 마주치니 아주 쑥스러워하며 무심한 얼굴로 양치를 마저 하더라는.

 

고맙다, 여기(이 산마을에) 우리 있어서.

저토록 에너지 덩어리들이 얼마나 답답한 지난 1년이었을까.

잘 왔다.

계자 잘 열었다!

아이들을 위해 이런 선택을 한 부모님들도 고맙다...

인서 채성 서윤 동우 수범 윤수 현준 태양, 다 잘 있습니다!

 계신 곳에서도 잘들 지내시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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