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23.해날. 비

조회 수 255 추천 수 0 2023.08.05 02:29:51


간밤 늦게 대해리를 들어와 완전 쓰러졌다.

집안 어르신 댁에서 병풍을 가지고 오느라

멀리까지 돌아와서 더 먼 길이었다, 비까지 내리고.

운전을 직접 한 것도 아닌데...

 

비 내린다.

엄청난 폭우가 곳곳을 할퀴고 지난 지 얼마지 않아

아직 무른 땅들이 걱정이라.

학교는 평지에 있으니 딱히 따로 무너질 만한 곳이 있는 건 아니다.

북쪽 뒤란은 경사지이지만

나무들이 자리 잡고 70년도 더 흐른 시간이라 걱정일 건 아니고

다만 낡은 건물에서 새는 비가 두어 곳.

비가 주춤거릴 때 달골을 돌아본다.

기숙사 뒤란의 높은 축대는 별일 없다.

거긴 마사토가 흐르기도 하지만 안쪽이 암반이라니까.

구두목골 작업실을 만들면서 땅을 정리했던 경사지 밭도 괜찮다.

새로 놓은 배수로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말.

 

아침뜨락도 든다.

비가 이리 많아도 해 한 번씩 잊지 않고 들고,

그 틈에 꽃들을 피운다.

맥문동이 보라색 꽃들을 피워 올렸고,

옴자 한편에 심었던 골든볼이 꽃봉오리를 맺었더라.

, 고라니 발자국과 똥 무더기 밥못 가에 무수히 찍혔고,

따라가 볼 것도 없이 못의 북쪽 경사지 쪽 개구멍으로 온 걸 거라.

거기 둘에 철망을 세워두었는데, 단단히 묶어둔 건 아니었다,

자꾸 걸치적거리면 불편해서 아니 오겠거니 하고.

그 하나를 밀어내고 왔을.

다시 잘 여며두었다.

그들을 잡지 않는 한 또 올 것이고,

나는 또 철망을 일으켜둘 것이다.

 

위패를 만들다.

오는 나무날 뜻하지 않게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집안 막내인데 우리가 모신다 했다.

넘들도 이제 안 지낸다는 제사를 왜 모시냐 말 걸건 아니고,

각 댁마다 문화가 있을 것이라.

학교 부엌이 집 부엌이기도 한 삶, 제사도 학교에서 모시겠지.

제기를 샀는데, 위패가 하나 밖에 없었다.

차례처럼 다섯 분을 같이 모시기로 했는데, 네 개가 더 필요할세.

나무로 만들까 하다 일단 올해는

마침 딱딱하고 두툼한 종이 있어 그걸로 만들리라 한다.

기울어진 비석 모양이면 되겠지 하고.

아래 받침대, 그리고 상자처럼 만들어 거기 비스듬히 세우려는.

저녁밥상을 물리고 제법 시간이 흘러 나머지는 내일.

(* 부부를 한 장의 지방으로 써도 됨을 알고 나중에 두 개만 완성)

엄만 뭘 해도 정성이네. 참 대단해.’

아들의 응원 문자.

아들 어릴 적 학교를 가는 대신 이런 일이면 멧골에서 둘이 그리 살았더랬는데.

제사라는 게 보니까

서로 조금만 마음을 쓰면 식구들이 모이는 재미난 이벤트가 될 수 있을.

내 삶에 없던 또 하나의 장이 펼쳐진다. 제사상을 다 차리게 될 줄이야...

사람 생이 참 모를 일이다. 그래서 흥미진진한. 그래서 또 살아가는.

우리 오지 않은 날을 두려워하기보다 반기며 새 세상을 맞아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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