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진짜 떠나시는 거예요? 한 말씀만 남기고 가세요, 그러면, 막지는 못하겠고.”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보며 왼손으로 뺨을 부비다

카메라 쪽을 보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마디로, 한마디로 개 같애.” (말에 울음이 섞인다)

“무슨 말인지 알아?

 이거 이거를 막는 사람들이 어떤 양심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이거,

 내 방송 앞에서 이런 얘기 하면 안 되는데,

 그럼 안 돼, 자리가 뭐가, 체면이 뭐 그렇게 중요해, 권력이 한없이 가냐구?

 그러면 안돼요. 이러면 안 되는 거였어. 이러면 안 되는 거야.”


달포나 글을 올리지 않고 있었다.

물론 기록을 않은 건 아니다.

날마다 짧게 쓴 글들을 ‘물꼬에선 요새’에 올릴 때는 뺄 거 빼고 더할 거 더한다.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늘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해에 배가 빠지고, 아니 빠뜨리고, 끊고 있었던 언론을 다시 챙기기 시작했고

그찮아도 사는 일에 자주 길을 잃던 나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자신을 잃었다.

미국에서 좋은 조건의 소셜워크(사회복지)를 제안받고도 미련없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곳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모두 미국에서 자리 잡고 싶어하는데, 너는 왜 있는 자리도 버리고 가니?”

왜? 물꼬가 있으니까.

여전히 물꼬가 있는데도 더는 물꼬가 있는 한국으로 여기기 자꾸 힘겨웠다.

사람들이 자주 그랬다, 옥샘이 계신 곳이 물꼬이지요 라고.

어디라도 되리, 그런 생각이 자꾸만 일었다.


세월호 1주기에는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일기장은 비어있었고,

2주기에는 ‘오늘은 어떤 뉴스도 듣지 않겠다, 보지 않겠다.’고 썼다.

‘까닭을 아는 이별도 이리 숨쉬기가 어려운데,

 고작 그 열흘에도 몸에 떠난 이가 살아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보냈거늘,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고 국가의 폭력에 자식과 벗을 보낸 그 몸들은

 이태를 어이 견뎠을까나...’라고 이어 썼다.


잠을 잘 때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딱 그렇다.

4.16 이후 늘 그 배에 타고 있었다.

이제야 뭍으로 건져낸 배의 부식은

내 삶의 부식을 넘어 피부에서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


다시 그날이 왔다. 3주기.

<다이빙 벨>을 보았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는 해야는데 그 부담으로 괜스레 청소도 하고 옷장도 정리하는

그렇게 미루는 일처럼 열지 않은 파일이었다.


감독 OOO OOO. 앗!

세상이 좋은께.

나는 검색어로 사람을 잘 찾지 않는다.

그냥, 뭐랄까, 그의 실체와 마주치는 게 아니라는 느낌.

혹은 나만 상대를 알아 불공정하다는 기분도 들고,

게으름도 크고,

그렇게 실시간으로 뭔가를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그런데 오늘은 OOO, 그 이름을 넣었다.

나이든 남자가 거기 있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내게도 있겠구나,

나이든 여자가 그것을 보고 있었다.


1994년 물꼬 기사를 한 일간지의 자매지 주간지에 올렸던 이가 해룡 형이었다.

그 몇 해 전 선배랑 강제 징용된 한인들을 좇아

부산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가는 길에 동행하면서 처음 만났다.

영국의 섬머힐을 모델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키노쿠니학원이 물꼬에 왔던 1997년엔

다른 일간지에 있던 당신의 아내가 기사로 다루기도 했고,

당신의 연으로 대구의 성원샘이며 여럿이 물꼬 품앗이샘들이 되었다.

한참을 잊고 있었던 이름자다.


울었다.

그러리라 하고 봤다.

그런데 그 이름에서부터 울었고, 그의 사진을 보고 울었다.

세월이 흘렀으나 우리는 얼마나 나아진 세상에 서있는가 아파서 울었고,

그런데도 여전히 곳곳에서 보다 의미로운 쪽으로 가는 걸음들이 있다.

마치 유니언에 대한 기억이라도 가지고 있어 공동체성을 잃지 않았으나

거대한 자본의 지구 위에서 버둥대는 영화 <다니엘 블레이크>가 겹쳐지는.

우리 세대는 그렇다. 연대의 기억을 진하게 가진 세대.

그리고 여전히 그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곳곳에서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고마워서 울었고, 든든해서 울었고, 격려해줘서 울었다.


자, 내가 걷는 걸음도 누군가에겐 그럴 수 있을 것.

서로 잘 사는 것이 서로 힘.

영차!


더하여, 세월호가 병풍도 앞바다에 빠져있는 동안 나를 살려준

우리 아이들과 벗과 동지들과 동료들과

이제는 내가 사는 나라에는 없는 오직 사랑했던 그대에게도 하염없이 고마움을 전함.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456 97 계자 세쨋날, 8월 11일 물날 맑음 옥영경 2004-08-13 1875
6455 "계자 94"를 마치고 - 하나 옥영경 2004-06-07 1874
6454 2007. 2.18.해날. 맑음 / 설 옥영경 2007-02-22 1871
6453 2005.11.1.불날.맑음 / 기분이 좋다... 옥영경 2005-11-02 1871
6452 봄날 닫는 날, 2008. 5.17.흙날. 맑음 옥영경 2008-05-23 1864
6451 1월 21일 쇠날 맑음, 100 계자 소식-둘 옥영경 2005-01-25 1857
6450 99 계자 첫날, 10월 29일 쇠날 맑음 옥영경 2004-10-31 1854
6449 98 계자 닷새째, 8월 20일 쇠날 흐림 옥영경 2004-08-22 1854
6448 5월 22일 흙날, 대구출장 옥영경 2004-05-26 1846
6447 127 계자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9-07 1845
6446 9월 2일 나무날, 갯벌이랑 개펄 가다 옥영경 2004-09-14 1845
6445 2007.12. 2.해날. 눈비 / 공동체식구나들이 옥영경 2007-12-17 1842
6444 1월 24일 달날 맑음, 101 계자 여는 날 옥영경 2005-01-26 1839
6443 찔레꽃 방학 중의 공동체 식구들 옥영경 2004-06-04 1837
6442 2007. 4.21.흙날. 맑음 / 세 돌잔치-<산이 사립문 열고> 옥영경 2007-05-10 1830
6441 97 계자 네쨋날, 8월 12일 나무날 옥영경 2004-08-14 1828
6440 8월 5-8일 이은영님 머물다 옥영경 2004-08-10 1828
6439 11월 3일 물날 쪼금 흐림 옥영경 2004-11-13 1824
6438 9월 16일, 바깥샘 도재모샘과 오태석샘 옥영경 2004-09-21 1819
6437 대해리 미용실 옥영경 2003-12-26 181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