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17.달날. 비

조회 수 837 추천 수 0 2017.05.10 07:08:14


한 이틀 혼쭐나게 더웠다.

갈수록 봄은 짧고 여름은 그악스럽다.

그래도 너른 하늘이라 비 한 번 내려줄 만.

미세먼지며 황사때문에라도.

그예 왔다.


한 일간지에 트레킹기를 연재하고 있는데,

일이 일을 만든다.

가을에 중앙아시아에 달포를 머물 일이 생겼다,

이야기야 좀 더 오가봐야 꼴을 갖추겠지만.

천산을 넘었던 실크로드 40일 여정을

키르키즈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가 마무리했던 적도 있었네.

(아, 그 마지막 밤 오페라 라보엠을 무대에 올린 국립극장에서 보냈다.

 아스라하고 그리운 시간...)


꼭 비올 것까지는 않아 보이더니 용타싶게 비 빠졌다.

연못 방수 작업을 하려고 봄 여러 차례 날을 벼뤘다.

퍽 일을 잘한다는 기사가 산판을 마치고 산을 나올 때를 기다렸고,

드디어 받아놓은 날이 오늘인데, 비 소식.

그래도 작업 현장을 둘러보고 의논한 오전.

낼은 들어올 수 있겠다는데...


오늘 고개 너머 다른 산에서 생태교육원을 준비하는 이가 자문(諮問)을 구했다.

“캠프도 하고 쉬어가는 곳도 하고 건강한 먹거리도 먹고....”

이 군내만 해도 몇 곳의 농장에서 군의 지원을 받아 농촌체험교육장들이며 여러 캠프가 생겨났다.

물꼬 역시도 여름과 겨울 계자(계절자유학교;계절학교;캠프)를 해왔는데,

2017학년도는 쉬어가는 해로 기존에 해오던 일정을 쉬는 대신 조금 다른 움직임들을 가지고 있다.

그찮아도 이제 캠프형태의 계자는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자문(自問)도 하고 있던 참.

“먼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왜 하는가 그런 생각들이 우선 돼야 할 것 같아요.

 교육이란 공간이 그저 경제적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면

 하는 사람도 재미없고 오는 사람도...”

멀어도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은 그곳의 특색 때문에 오는 거니까.

물꼬만 해도 이 깊숙한 산마을에 이름도 없이 살지만

끊이지 않고 발길이 닿는 것도 그 까닭일 테다.

물꼬는 물꼬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우리여야만 할 수 있는 그런 일.

물꼬가 글쓰기운동을 시작할 때, 계절학교를 열었을 때, 대안학교를 준비할 때, 공동체를 시작했을 때, 어린이 극단을 만들었을 때, 

물꼬가 서울을 떠나 산골에 자리를 잡았을 때, 대안학교를 상설로 열었을 때, 장애통합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재활승마를 시작했을 때, ...

대개 우리는 그 시작점에 있었고 그것이 보다 대중화 되면 다시 더 필요한 다른 길로 나아갔다.

“규모도 그저 키우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걸 가늠하시고!”

물꼬는 딱 지금이 좋다. 이만큼, 너무 붐비지 않고, 발길이 뜸하지는 않는.

명상에 더 집중하면서 계자의 규모도 이제는 크다고 느낀.

열둘 정도의 규모가 맞춤하다.

그리고, 넘 안 하는, 물꼬여서 물꼬이니까 할 수 있는 바로 그 일을 해왔고, 또 할 것이다.


네가 아는 것을 말하고, 네가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을 일어나게 하라(Say what you know, do what you must, come what may)."

(<소피아 코발렙스카야 - 불꽃처럼 살다간 러시아 여성 수학자>가운데서)


벗이 전화했다.

요새 연재하는 트레킹기를 읽으며 든 생각들을 전해왔다.

전화 먼저 잘 안하고 인터넷도 잘 안보며 전화기도 곁에 잘 두지 않는 그인데

사람을 생각한다는 건

자신의 흐름을 깨는 것도 감수하며 그렇게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더라.

역시 또 전화가 닿았다.

30여 년 전 일간지에서 시간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은 부서에 있었던 이들의 소식을 30년 건너 들었다.

모두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다.

정녕 어떻게든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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