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줄 모르는, 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어쩜 저렇게 한결같은 얼굴이냐싶게 비는, 억수비는 억수로 내린다.

틈도 없이 내린다.

몇 날을 이러는 날씨인가.

처음 아이를 보내는 한 댁에서는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비가 너무 많이 오니 아이 아빠가 걱정을 많이 하네요...

활동을 많이 하거나 학교가 비가 계속 오면 아이들을 돌보기 힘드실까 해서요 ㅠㅠ

물꼬의 학교는 멧골에 있지만 산사태로부터 안전한 마을 한가운데 있다.

물꼬의 서울 생활을 빼더라도 이곳에 자리 잡고 보낸 지난 25,

큰 비와 큰 눈에 아직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온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다. 세상은 아직 우리가 만나본 적 없는 일들이 세기말처럼 쏟아진다.

크게는 지구에 끼친 인간의 해로 일어난 일들일 것임을 말해 무엇할까.

물꼬는 위기에서 대처능력이 뛰어납니다.”

전화를 끊을 쯤의 마지막 말은 그랬다. 물꼬는 즉흥에 강하다.

그건 그간 야전(野戰)에서 쌓은 축적물이라 함직하다.

계자의 세월동안 적지 않은 위험 앞에 놓였을 때

샘들이 보여준 연대와 해결의 순간은 지금도 가슴 먹먹하고 벅차다.

계자 앞에 언제나 적잖은 불안이 스미다가

아이들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지는 다른 계자와 달리

밤의 이 통화 앞에서 마음이 턱 놓여버렸다.

166계자도 한판 신나는 대동춤이 되겄다.

 

지금 해둡시다!”

166 계자 아이들이 내일 들어오는데

영동역에서 만나는 여느 때와 달리 물꼬 대문에서 만난다.

코로나19가 이곳에 미친 영향 하나이다.

해서 부모 대기 장소로 소나무 옆에 차양을 치기로.

다행하게 한밤 비가 멎고,

어쩜 매미가 먼저 알고 울더라,

남자 넷 나가서 준비하다.

그렇게 틈틈이 일을 하도록 숨통은 주고 내리는 비라.

쥐구멍의 볕처럼 그렇게 사람의 삶은 숨통이 있었더라.

 

초벌 청소는 안 식구들이,

들어온 샘들이 재벌 청소며 손이 못 갔던 곳들을 챙기고,

교실에 있는 물건들도 교무실이나 창고로 보내고,

저녁 7166계자 미리모임.

물꼬 계자 역사상 처음으로 물꼬 대문에서 맞는 아이들.

서울역에서, 이후 영동역에서 모여 들어오던 계자 아이들이었더랬다.

세밀하게 움직임을 그린다.

아이들 들어올 때 짧은 어른의 학교도 열자,

몇 날 며칠을 내리고 있는 비가 내일도 멎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럴 땐 어찌 할까,

아이들과 무엇을 어찌 할지는 날마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으니 대략의 그림만 그리고...

 

물꼬는 man power로 굴러가는데...”

저녁 7시에 시작한 미리모임이 끝나면

계자 안내판이며 여기저기 이번 계자를 위한 표지들을 붙인다.

오늘은 사람이 적으니 모임에 속도도 붙겠다 했는데

회의는 일찍 끝냈으나 밤 10시 끝낼 수 있으리라던 일들이 결국 자정에 이르렀다.

그때 하다샘이 말했다,

역시 손이 좀 모자라는 느낌이라고.

아이들이 적어도

이 공간을 꾸리기 위한 최소한의 어른의 손이 있는 거다.

이곳의 불편을 메우는 게 어른들(새끼일꾼 포함)의 손발이니까.

 

이른 아침부터 책상에 앉았더랬다.

비는 내리고, 장대비로 내리고, 날은 컴컴하니

옳다 이럴 땐 또 밀린 기록들을 좀 챙기자,

글이 막 달리고 있는데,

! 학교아저씨가 찾는다.

옥천에서 애 세 명이 왔어요!”

무슨 일일까?

어제 늦도록 움직인 샘들은 비 핑계로 좀 더 쉬라고들 하고

달골에서 서둘러 불려 내려갔지.

이번에 옥천에서 계자에 참가하는 두 아이가 있는데,

그네가 왔단 말일까...

행정적인 작은 착오가 있었다.

혹시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 자원봉사활동서가 발급가능하도록

자원봉사센터에 행사 공지를 하고 신청케 했는데,

이미 우리는 계자 교사가 다 조직되었는데

굳이 활동서가 필요치 않는(물꼬 샘들은 대개 그렇다. 그것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이들이라

신청자리가 남아있었던.

일단 모든 것에 손을 놓고 마음 쓰기!’

샘들이 쉬는 오늘 아침 반나절이면 제법 밀린 기록들을 정리할 수 있을 터인데,

하는 마음을 밀어내고 그들을 맞았다.

이 작달비에 여기까지 온 마음과 손발이라.

물꼬가 전하고픈 이야기를 전하고 차를 내고 물꼬 한 바퀴.

낮버스로 나가자면 배도 출출하리.

간단하게 먹을 걸 좀 챙겨 멕이다.

그들이 나가기 전 짧게 남긴 갈무리글;

 

12년 김서연:

아침에는 학교가 텅 비어있어서 당황했다. 그래도 환영을 받고 한 바퀴를 돌고나니

비어있다고 느낀 건물에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것을 느꼈다. 비가 내리고 물웅덩이가

생기는 소리를 듣고, 그런 창가를 보며 이곳에서 느낀 것들은 짧은 경험이었지만

긴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제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준 고마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밖에서 오늘의 인연을

다시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 오늘의 다짐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서, 이후에는

내 곁의 사람도 돌보고 곁을 넓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12년 김가연:

학교의 겉모습만 봤을 때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치만 안에 들어오니까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 흔적들을 보면서 여기는 정말 겉보기와는 다르게 엄청

좋은 곳 같다고 느꼈다. 내가 유치원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를 여기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따.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났었는데

내가 이곳에서 더 어렸을 때, 그때부터 여길 왔더라면 나는 이렇게 못되게

안자랐을 걸 왜 이렇게 행복한 곳을 늦게 알아버린 걸까 후회가 들었다.

꼭 다시 올게요.

 

12년 이재경:

처음 도착했을 때 잘못온 줄 알았다. 사람도 없고 불이 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간의 착오가 있어 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그 덕에 처음 온

물꼬에 대한 설명도 듣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엔 건물이

많이 낡아서 관리를 잘한 것인가 생각도 했지만 천천히 둘러보고 설명을 들으니

관리를 잘해왔고 잘하고 있단 것을 알았다. 여기서 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얼마나 잘해왔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이곳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오고 싶어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옥샘의 말씀을 들으며

처음 차를 마시며 나누었던 교주 같다고 들으셨단 이야기가 공감이 되는 것 같다.

 

낮 버스로 휘령샘과 현진 형님이 들어오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비는 내리고, 많이도 내리고.

여러 날 전부터 내린 비로 정작 바깥일들을 못 다한 대신

안을 여러 번 살핀 덕에 청소가 좀 줄기도 한.

지난주 청계도 있었고, 계자 일의 차례를 바꾼 덕도 있었다.

예컨대 교무실 청소도 같이 해야 하는 청소 범주에 들지만

계자 전 부모 사전 통화를 하면서 같이 엮어 했더니 일 하나 던 식.

 

저녁 차로는 166 계자 밥바라지 2호기 기표샘이 들어오고.

계자 일정이 처음 공지와 달리 한주 당겨지게 되면서

일정이 꼬인 수연샘만 내일 낮버스로 들어올.

내가 밥할게. 벌써 지쳐버리면 안 되니까.”

밥바라지 1호기 정환샘이 어제 낮부터 들어와 있었으나

부엌정리하고 일단 부엌살림 익히기.

잘 아는 공간이겠지만 늘 하는 이곳 살림이 아니니.

 

객원으로 참가하는 논두렁 준한샘, 이번 계자의 10번 일꾼,

달골 물길을 살펴봐주고 아이들 뒷간을 위한 왕겨를 실어주고 가시다.

여의도 금융맨인 기표샘은 휴가를 이곳에서,

정환샘과 휘령샘은 교사 방학을,

태희샘, 수연샘, 하다샘은 대학 방학을,

현진이 형님은 고교 방학을 이곳 166계자에서 보낸다.

이번 계자는 샘들이 워낙 짱짱하게 일찌감치 조직되어 새끼일꾼 자리가 없었는데,

(막판에 한 대학에서 같이 들어오는 샘들 셋의 상황에 변동이 있어

갑자기 연락해 들어오라 하게 된.)

학교아저씨 포함 열이 166 계자에서 아이들을 도운다.

초등 3학년 때부터 20년이 넘게 물꼬와 연이 닿아있는 기표샘부터

새로운 얼굴 없이

대개 초등 계자부터 시작해 물꼬랑 나이를 먹은 이들이 꾸려가는 계자.

그것도 물꼬 정예부대라 할 만한 이들로.

 

자정에야 일정을 끝내고 가마솥방에 모여 다리를 쉬는 샘들.

정환샘과 기표샘이 밤참을 내고.

, 해후한 우리들, 우리들의 캠핑 같은 밤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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