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5.흙날. 맑음

조회 수 403 추천 수 0 2022.01.26 00:40:13


모둠방 문 여닫는 소리, 복도를 걸어 교무실로 다가오는 발자국, 옥샘 하고 부르는 소리, ...

아이들은 떠났으나 소리가 남아 아직 이곳은 계자의 세계라.

 

09시 해건지기.

아직 겨울90일수행기간 중이다. 215일 회향.

계자가 끝났고, 아이들이 떠났지만, 멧골에서 나는 어제 그랬듯 오늘을 산다.

다만 조금 더디 시작하는 오늘 아침.

책상에 앉는다.

계자 중에 미처 다 쓰지 못한 기록을 쓰는 중.

 

밤새들 뽀시락대고 동쪽하늘이 희뿌연 할 때야 조용하더니.

정오, 계자 뒷정리를 맡아 남은 샘들이 가마솥방으로 들어서다; 계자 갈무리위(원회)

낮밥을 먹기 전 아직 걷지 못한 마당의 천막이며 들이지 못한 물건들을 들이다.

콩나물국밥으로 해장을 하고,

혹시 하고 빵도 먹으려니 하니

아까 먹은 건 아침이고 점심을 먹어야 한다나.

빵을 굽고, 잠시 불가에 앉아 뜨개질 두어 줄 뜨며 마지막 인사를.

2시 희지샘을 데려갈 차가 왔는데

어머니가 헤르만헤세의 그림과 시가 담긴 달력과 커피를 사오시다.

그 차편에 같이 마을을 나가려던 샘들(희지샘 지인샘 윤호샘 하다샘)을 다시 불러

차들을 한 잔 하고 가십사 다시 불러들여 홍차와 보이차를 달였네.

수행하며 사시는 거네요.”

눈 밝은 어머니가 말씀하셨네.

 

사람들이 와 떠들썩한 물꼬도 좋고,

고즈넉한 물꼬 역시 좋다.

모두 떠나고 찻자리부터 걷다.

찻잔을 끓는 물에 튀기고, 나왔던 다건이며 다포며 행주며 앞치마들을 팍팍 삶아 널었다.

부엌 가재도구들 정리.

계자를 벗기고 일상 구조로 부엌 물건들 재편하기.

그리고 습이들 산책을 시켰다.

이제는 그들도 이곳 삶에 익어

계자 가운데 주인이 보이기라도 하면 이리로 좀 와보라 짖던 그들이

이제는 사람들이 떠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듯.

장갑을 끼고 중앙현관을 나서며 저들을 쳐다보자,

옳다구나, 산책 가는구나, 알고서 꼬리를 한껏 흔들고 목청껏 짖어댔다.

잘 기다려주었노라 쓰다듬고 길게 마을을 걸었다.

 

상자 바닥에서 짓눌린 귤과 추려낸 얼마쯤의 귤을 씻고 껍질을 벗겼다.

끓이고 설탕을 넣어 졸여 귤잼.

2월 어른의 학교에서 먹으리.

앞 일정의 끝에 다음 일정을 준비하는.

 

저녁 밥상을 물리고 방으로 돌아와 계자 기록을 이어간다.

불과 몇 시간 전이라도 지나간 모든 것은 아련한 아름다움의 범주로 들어간다.

잠을 확보하자고 했지만, 예년에 견주면 조금 더 잘 수는 있었다지만

역시 모자라는 잠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을 텐데

잠과의 사투가 가능한 것은 끝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고,

더하여 아이들과 좋은 동료들과 하는 즐거움이 불편과 어려움을 또한 상쇄해주는.

계자를 반추하며 다시 계자 중.

글은 자주 장면을 따르지 못한다.

졸음이 들거나 지리함이 스밀 땐 잠시 책상을 벗어나 뜨개질 한 줄.

비로소 쉬는 느낌이 드니까.

그렇게 잠시 한 호흡 쉬고 다시 책상 앞.

새벽 2시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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