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30.해날. 맑음

조회 수 350 추천 수 0 2022.02.24 01:32:34


아들과 같이 쓰는 원고가 있어 요새 거의 합숙(?) 중인데,

사실 그렇다고 원고에 그리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

한동안 몸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같이 걷고 뛰고 하기도 했으나 그것도 잠깐.

딱 그런 거다, 시험 기간에 시험에 대한 부담감은 큰데

정작 시험공부를 하려고 준비하는 걸로 요란한.

먹는다고 시끌, 책상 정리한다고 시끌, 책 읽는다고 시끌,

편집회의라고 보내는 시간이 더 많고,

원고 관련 아닌 일이 절대 다수의 시간을 차지하는.

그래도 일단 2월은 집필에 쓰겠다고 한 시간.

 

바디 프로필 열풍이라더니 그 바람이 우리 집 마당에도 넘어왔다.

청년들이 멋진 몸매를 만들어 기록하는 일이 없던 일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더 활발해졌고

인스타그램에는 바디 프로필을 키워드로 올라온 게시물만도 300만 건이 넘었다지.

글쎄, 아들이(아들도) 바디 프로필을 찍었다.

그게 유행이라는 거야 알았다만, 내 새끼까지 그걸 하겠다고 할 줄 몰랐네.

내가 지나온 20대지만 그것이 지금의 20대를 헤아릴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집 자식들에게는 이왕 하는 거 건강을 살펴 잘하라 응원하던 태도가,

내 새끼에게 이르자 마뜩찮은 시선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적잖은 비용을 들여 바디 프로필을 찍고 SNS에 올리는 이들을 관종이라고 비난하는 데

은근 나도 동의하는 바가 적잖았다.

아니! 그걸 왜 한 대니?”

우리는 딱 30년을 사이에 두고 있고,

개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 사는 엄마와 선진국에서 태어나 풍요 속에 자란 아들은

자주 그런 충돌을 한다.

어머니 세대의 학생운동 같은 거 아닐까요?

그 시대 학생운동도 유행으로 했던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제 몸 하나 잘 만들었다는 자랑질이랑

고통 받는 민중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던진 게 어떻게 같이 취급될 수 있냐 싶지만

어쩌면,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엄마란, 부모란 원래 걱정이 많다.

자본주의 아래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우리 세대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런 걸로 무슨 큰일이라고 나는 양...

사실 바디 프로필 같은 게 그리 또 별일은 아닌.

생을 재미나게 산다는 데야 얼마나 좋은가.

그냥도 그걸 한다. 그리 의미 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과 남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 만난 장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SNS는 소통의 공간, 자신을 표현하는 길의 하나이기도.

바디 프로필만 해도 긍정으로 보자면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인 열정의 어떤 결과물일 수도.

우리 집의 20대 친구만 봐도 그걸 위해 용돈을 아껴 헬스장을 가고

큰 먹성을 참고 강변을 달려 땀에 젖어 돌아온 긴 날이 있었더랬다.

186에 몸무게가 100에 육박하는 거구에게 그런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이 많은 엄마는 긴 문자를 썼나니.

 

아들, 부모란 걱정이 많은 존재.

자식이 잘 살아갈 거라 믿으면서도 부모를 타고 세상으로 왔으니...

그대 마음이 정말 좋은 길로 흘렀으면 하는 마음에 몇 자.

 

나는 아들이 생을 즐겁게 살기를 바람.

바디 프로필, 하고 싶은 거 오래 준비해서 스스로 흡족하게 돌아오니 보기 좋더라.

저리 좋아하네 싶어서.

하지만 다른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었음.

머리 좋고 키도 크고 인물 좋고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여건인데,

혹시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가 하고.

 

아들, 남들 따라하는 거 말고도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즐거운 것들이 적지 않음.

그대가 그런 걸 찾을 수 있기를 바라.

자신 특유의 재미를 발견하였으면. 의료인으로서 그 길을 풍성하게 하는 뭔가도 좋고.

(...) 위대한 업적이니 그런 거 아니어도

나를 둘러싼 주위에 좋은 영향을 나누는 사람이면 하는 바람이 있음.

 

그대의 돈과 시간, 에너지를 더 좋은 곳에 쓰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있음.

대단한 어떤 게 아니라도 좋은 세상을 위해 작은 돌 하나 얹는 사람이면 좋을.

아니 아니 그런 거 다 아니어도 맨날 세상 좇아가느라 바쁘지 않았으면.

그건 나를 모자라게 만들거든. 불행하거든.

 

아들, 그대 괜찮은 사람임!

훨씬 못 미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흡족하게 빛나게 살아감.

왜냐하면 존재는 견주는 대상이 아니거든.

부디 스스로충만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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