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해날. 맑음

조회 수 817 추천 수 0 2017.01.09 03:44:49


밤이 지나고 새로 해가 뜨는 것이 무에 새삼스러울까만

한해를 시작하는 날이면 새싹이 돋는 것 같은 나무의 간지럼처럼

으레 부산한 마음이 든다.

우리는 늘 뭔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그래서 이전의 실수에 너그러워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어떤 기대들이 또 내일을 밀고 가니까.

어제를 일별하고 그렇게 새아침을 맞는.

허나 도무지 올해는 새해가 새해가 아닌 아침이다.

물고 물고 물고 무는 국정농단 뉴스의 그 보이지 않는 꼬리의 끝이 정녕 어디인 겐지.


'새로고침'.

인터넷의 새로고침 단추처럼

새해 초하루도 그런 순간일 것.

오늘은 문짝을 새로고침 하였네, 새해 상징처럼.

사택 된장집 뒤란 보일러실 문짝이 바람에 또 떨어져버렸다.

겨울밤 덤프트럭 수십 대가 지나가는 것만 같은 대해리의 바람,

그예 문짝을 날려버린.

하루 이틀 쯤 밀려버린 일이다가 그만 물이 얼어버린 엊그제였다.

낡은 이불로 문을 대신해놓고

오늘은 힘 좋은 12학년 아이도 들어와 있어

식구들이 같이 수리를 하였네.

간장집 부엌문도 문짝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툭 내려앉아있었다.

오늘 문짝들 고치기로 마음먹은 줄 어이 알고.

무거운 문짝을 위로 번쩍 들고 해야 하는 작업이었는데,

여럿 있으니 감당이 된.

"이걸 젊은 할아버지랑 둘만 달랑 하고 있었으면 얼마나 힘들었겠어!"

새해 새학기엔 아이가 드디어 집을, 이 산마을을 떠난다.

제도학교로 간 3년 기숙사에 있기도 하였지만 멀지 않은 읍내였고,

주말이면 들어와 일들을 도와왔다.

그런데, 이제 꽤 먼 곳에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가 없으며 잇몸이라 또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2017학년도를 웁살라에서 보낼 계획을 하고 있었을 때만도

아이는 저가 대학을 가면 주마다 물꼬 와서 이 공간을 건사하는 일을 돕겠다고는 했으나

안식년이란 이름 아래 기존 일정들이 멈추는 대신

다른 일정과 물꼬의 일상을 계속해나가기로 한 지금은

굳이 주마다 들어와 손발을 보태라 하는 건 지나치다.

이제 아이도 저의 삶을 살아야지.

언제까지 그 아이 발목을 붙들고 기대며 살아서야...


'새해 건강하고 복되고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아이들 얼마 되지 않는 이번 계자 굳이 글집을 만들지 않아도 되겠다 하는데

여러 계절 글집을 만들어주고 계신 금룡샘이

미리모임 자료집과 글집을 만들자 먼저 챙겨서 연락 주셨다.

고맙다, 사랑한다, 건강해라,

평범한 인사들이 담백한 음식처럼 화려한 수식어구보다 더 마음에 들어올 때가 있는데,

오늘도 다식과 차가 놓인 찻상 사진과 함께 온 안부가 또한 그러하였네.

누구라도 제 살기 바쁜 시절인데,

연초 어디라도 분잡스러울 것을

물꼬 살림까지 그리 챙겨주신다 한다.

먼저 들어와 계자를 준비하는 샘들이 자료를 보내기로.

고맙다. 이 말만큼 또 고마운 말이 없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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