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6.쇠날. 맑음

조회 수 725 추천 수 0 2017.01.09 21:20:17


계자를 준비하고 있는 주간.

샘들 몇 먼저 들어와 163 계자 준비위를 꾸리다.

오늘은 정환샘도 합류.

밥바라지 엄마가 따로 없는 계자이어 부엌에 손 보태러 왔다.

광장에 모인 연대가 정작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파편화되는 현상,

일상에서도 어떻게 연대 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의 계자도 일종의 그런 연대 아닐까 싶은.

곳곳에서 제 삶을 살아내다 또 우리 모여 이 겨울을 같이 건넌다.


풀을 쒀서 샘들이 계자 전 묵어야 할 사택 벽지부터 손보다.

얼마 전 된장집 한 방의 곰팡이들이 그려놓은 그림을

아이들 그린 한국화들로 덧발랐듯

오늘은 고추장집 벽들을 부쳤네.

“예술하시네!”

그저 덕지덕지 붙여만 놔도. 화가 아닌 아이들이 있던가.

이어 사택 청소.

“맨날 맨날 그리 청소만 해대?”

가까운 선배들이 물꼬에 안부를 넣을라치면 늘 대답이 청소하는 중이라지.

응!

해도 해도 별 표도 안 나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을 되내이며

정돈하고 정리하는, 순간순간을 정성스럽게 사려는 노력,

그리고 이곳을 쓸 누군가를 위해서 내는 기꺼운 마음일지라.


계자 장보기.

학교에서 움직이다보면 또 시간 훌쩍 가버려

해지기 전 문을 닫는 곳들을 들리려면 서둘러야했다.

차바퀴부터 갈아 끼웠네.

쓰기에 아직 여유가 아주 없지는 않은데,

계자 때 움직일 것 대비해 혹 눈이라도 내린다면 안전하도록.

솥단지 뚜껑 고무이음매에서부터 엔진톱도 고치고,

조명가게 철물점 식자재가게,...

산을 나가 세상 속으로 가보면 때로 작은 친절이 사람을 얼마나 힘나게 하는지.

내가 좀 어리숙해서 더들 그러실.

찾는 물건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 어디서 더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는지,

날도 추운데 굳이 따라나서서 가야 할 가게를 가리키시기도.

나도 친절해야지 마음 다지게 하는.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부른다!


금룡샘이 글집과 미리모임 자료집을 가지고 들어왔다.

여러 계절 동안 물꼬에서 필요한 출력 일들을 챙겨줘 오셨다.

내일이면 샘들이 먼저 들어와 아이들 맞이 준비를 할 것이다.

혼자 살아도 한 살림이라, 적은 숫자여도 계자는 계자.

게다 어른들(새끼일꾼 일곱 포함)만도 스물이니 적은 규모도 아니고.

이 계자는 안에서 아이들과 움직이는 이만이 꾸리는 게 아니다.

이렇게 뒤에서 앞에서 곁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있는.

그런 어른들 틈에서 아이들이 어찌 마음 순순해지지 않겠는지.


돈. 재정이라고 말하면 좀 더 점잖아지는가. 그래봤자 돈 이야기다.

그래서 천박하다는 말도 아니고 말 그대로 그냥 돈 이야기.

이번 계자에는 휘령샘이 살림을 맡았다.

“휘향샘이...”

계자는 모든 샘들의 자원봉사로 꾸려지는데,

샘들도 얼마쯤의 밥값을 낸다.

우리 먹을 걸 아이들에게 묻어가지 말자 하는.

졸업하고 임용을 준비하고 있던 휘향샘이 이태 만에 계자를 오는데,

적지 않은 밥값을 보냈다는.

공부하고 있는 사람 주머니가 무에 넉넉하다고.

더구나 우리는 형편 따라 살림을 보태기에 굳이 보내지 않을 수도 있는 걸.

그러고 싶었더란다. 어디 ‘있어서’였겠는가. 빤히 아는 산골 형편을 헤아린.

어디 가서라도 먹고 자는 일에 그리 돈이 쓰이게 된다며.

스무 댓살들의 이런 마음씀을 보면

나는 염치가 있었는가, 있는가 돌아보게 되더라.


계자 준비위에 모인 이들을 위한 ‘夜단법석’.

“정환샘 덕에 먹는 거야. 임용 준비하느라 욕봤네.

그나저나 일을 얼마나 시켜먹을라고 일단 멕이고 시작한데에?”

가리비와 석화를 쪄내고 곡주도 한 잔.

내일이면 샘들이 다 들어온다. 청소 대행진일 거라.

아, 고마운, 이 겨울에도 샘들이 모이고, 아이들이 산마을을 찾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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