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려가는 하늘로 뿌연 보름달,

한밤중엔 말개져 둥실 달떴더라.

하늘을 팽팽하게 하는 달빛으로 가슴도 짱짱해지는 한 밤.

사람으로 상처 입어도 자연으로 어루만져지는 사람살일지라.


낼모레 영하 10도까지 내려가겠다는 날씨,

오후 서서히 바람이 차지고 있었다.

연탄 들였고, 김장했고, 이제 땔감 준비 중.

엔진톱 대신 절단기로 자르고,

도끼 대신 나무를 쪼개는 기계로.

이 없으면 잇몸.

엔진톱이고 도끼고 수월하게 쓸 인력이 쉽지 않으니.

중소기업을 경영하며 오랜 세월 물꼬를 도왔던 오정택샘이 몇 해 전 기증한.

날마다 조금씩 쌓아갈 것이다.

언젠가 마을 한 할머니 댁을 들어서다 한가득 쌓인 나무를 보고 놀란 적 있다.

경운기로 실어오거나 트럭으로 운반한 게 아니라

할머니가 하루에 한 번 산기슭에 가 두어 개씩 끌고 온 것들.

공부하는 놈과 저금하는 놈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그 진리.

날마다 조금씩 해나간 것이 쌓인 시간.

나무 아니어도 잊지 않고 날마다 해나가는 일의 무서움이 그러할지니.

조용히 몇 걸음이라도 날마다 뚜벅뚜벅 걷는 일의 위대함이려니.

우공이산 역시 다름 아닐.


청국장을 띄우는 중.

엊그제 해날 콩을 삶았고, 소쿠리에 콩 사이사이 짚을 깔아

사택 고추장집 한 방에 이불 덮어 아랫목에 두었는데, 별 변화가 없는 거다.

아차차, 사람 없다고 고새 그만 고추장집 연탄불을 빼버린.

얼른 다시 불 지펴 넣어라 학교아저씨한테 전하고

다 식어있는 바구니를 끌고 내려와

가마솥방 난로 위 주전자 뚜껑을 열고 김을 쐬다.

두어 시간 두었다가 다시 방으로.

띄워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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