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0.불날. 비와 안개

조회 수 705 추천 수 0 2016.12.29 01:23:05


고추장집에도 비닐을 쳤다.

청소년계자에서는 본관 뒤란에 불 지피지 않고 사택에 모여서들 잘까 한다.

고래방 뒤란 낙엽도 긁어냈다.

구석으로 내몰리는 삶 마냥 가장자리마다 모인 낙엽이었다.

겨울은 그래서 더욱 없이 사는 이들을 생각키나니.

하여 힘이 생기면 좋겠다, 나눌 수 있도록.


안개 속에서 기어오던 차는 어느새 배가 되어

돛도 없이 등대도 없이 안개바다에서 잠겼다가

마을에 돌아오니 새벽 3시.

바깥수업이며 올 한 해 바깥모임이며 끝.

같이 그림 작업하던 이들과도 마무리 모임.

캐와 씻고 다듬은 냉이를 선물해준 이도 있었고,

직접 수를 놓은 차받침을 받기도 했다.

아이들과 하는 다례 수업에서 잘 쓰이겠다.

무에 그리 애썼다고 이런 선물들을 받나,

하기야 삶에서 누리는 많은 것들이 내가 쏟은 정성보다 늘 많으니.

저 커다란 하늘, 별, 바람, 다 다.

사는 일에 무엇 하나 무임승차가 아닐는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허니 우리 삶을 다른 이를 위해, 다른 이와 나누며 살 까닭이 충분한!


침향으로 명상수업을 했다.

미당의 시도 같이 읽고, 걸맞은 음악도 함께 듣다.

부용향도 손에 비비고.


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궈 넣어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3백년은 水低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 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요.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와 조류가 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침향’ 전문)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다는...


섬에서 귤이 왔다.

살아생전 다시 가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사연 있는 섬이다.

한 PD가 그곳에서 촬영 중이었다.

아이가 제도학교를 가지 않고 산골에서 지내고 있을 적

그 아이를 영상에 담았던 방송인

아이 수시합격 소식을 듣고 보내온 인사였다.

집안 어르신들도 아이 옷 하나 해 입힌다 송금을 하시기도.

애썼네들, 우리 아이들.


어른 상담.

아내와의 갈등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중년의 예술가.

그토록 많은 여자들이 따라 다녀도

자기가 좋아서 좇아간 유일한 여자랑 결혼을 했단다.

아내한테 별로 바라는 게 없는데, 딱 하난데,

아침마다 수프 겨우 끓여 멕이고 아이를 학교 보내는데,

그것마저도 너무나 하기 싫어하는 표정으로,

그냥 단촐해도 따뜻한 밥상이었음 좋겠다는.

작년에는 예술작업을 하는 당신이 직장을 다니던 아내와 딱 몇 해만 카페를 하기로 했는데,

겨우 열한 달 하고 접었다고 아내를 비난했다.
“꼴랑 1년, 아니 열 달 겨우 하고...”

“그런데요, 하기 싫은 걸 해낸 아내에 대해 고마웠단 인사는 한 번도 않으셨군요!”

그는 아내에게 달려갔고,

그들은 오랜만에 편안하게 밤을 맞았다 한다.

그래, 고맙다, 그대가 애써줘서,

우리 그렇게 애쓴 마음 헤아리지 못하거나 고마운 마음 제 때 전하지 않아

그만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하지 않았던가.

“고마워, 네가 애쓴 시간. 고생했어. 사랑해.”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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