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이보다 더한 무엇이 우리 삶에 있겠는가.

삶의 복됨이여.

별은 초롱하고.


바람 한 점 없고, 날은 푹했다.

그토록 거친 바람이었더니.

영하 1도에서 영하 10도일거라던 일기예보였는데 영상 1도에서 영하 5도.

내일도 영상 8도에서 2도.

감사, 감사.

늘 하늘 고마운, 물꼬의 절묘한 날씨이려니.


겨울 청소년계자.

새벽 4시 집을 떠나 아침 7시도 되기 전 성재가 먼저 들어왔다.

아버지 출장길에 부려진.

선발대란다.

“눈부터 좀 붙이거라.”

끓인 물주머니 안겨 사택으로 안내했다.

다른 아이들은 낮버스로 들어들 올 것이다.


청계에선 온수기를 연결하지 않는다.

젊은 것들이라고 따뜻한 물도 없이 지내자거나

난로 위 주전자 물을 주거나 간단하게 씻을 물을 가스렌지 위에서 데워주거나

어쩌다 좁은 사택 욕실(더운물 나오는)까지 올라가 씻기도.

본관의 온수기가 워낙 규모가 커 한번 데우는 데 에너지가 아주 많이 필요한.

다 무슨 고생이었나,

이 산골에 모여든 것만도 얼마나 추울 것인가,

눈 딱 감고 오늘은 그것부터 데웠다.

안식년 전 마지막 청계가 되거나 이후 영영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 마지막의 아쉬움이

에너지를 쓰는 것에도 너그러워진? 그랬을 수.


아이들이 왔다.

한 명 한 명 안는데, 아... 이렇게 훌쩍 자라서...

몇 해 만에 보는 이도, 지난여름에 다녀간 이도 있고,

일곱 살 아이 적부터 12학년에 이른 아이도 있는.

8학년부터 12학년까지 고른 분포,

제주에서 전주에서 광주에서 부산에서 마산에서 천안에서 서울경기에서 그리고 영동 하나.

열셋.

사택에서 잘 수 있는 최대 규모 열하나(안의 식구 둘까지 열셋)로 마감하였는데,

상황이 충분히 헤아려지는 늦은 신청 둘을 더 받았더랬다.

허니 안에 열다섯이 자기엔 사택 두 채, 방 넷으로 쉽지 않을.

사택 한 채란 것도 8평 규모에 마루 빼고 부엌 빼고 방 둘이니...

학교 뒤란 보일러 불을 피우고 본관에서 자느냐,

아니면 사택에서 가능하겠는가,

모두 모여 잠자리부터 살폈다.

“자요!”

사택에서.

물꼬 사정을 너무 잘 아는, 그래서 때로 어른들보다 훨 나은 우리 새끼들이라.


'마주보기'를 하고 낮밥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고래방에서 매트를 들고 와 본관 벽체로 드는 바람부터 막았다.

‘선조(線彫; 선새김)’-가는 선으로 쌓아 올리거나 선을 파 들어가는 조각법처럼 일하기.

일을 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안다, 잘하든 못하든,

일은 참과 거짓을 판별한다,

일머리를 알면 일이 되듯, 일머리는 통찰을 부른다,

머리만 키우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몸도 쓸 것.

물꼬 일에 손을 보태 쌓인 연탄재도 부수고 깔다.

일을 할 땐 일이 되도록, 우물가가 편편해졌다.

이 겨울 영하의 날씨에 땀내까지 났다.


‘부조(浮彫; relief; 돋을새김)’-평면 재료 위에 높낮이를 만들어 표현하듯 몸 쓰기.

차를 마시고 몸을 푼 뒤 달골 올랐다.

눈이 있으면 눈도 치우리, 빗자루와 눈삽도 들고.

이 골짝 좋은 바람만 닿아도 좋으리.

아무 목적 없이 걸어본 적이 언제였더냐.

중간중간 개별 면담도 있는 이번 청계일 것이다;

고교생들에겐 생활점검, 목표다듬기.

현진이는 부엌일을 돕기로 했다.

밥바라지 뒷배가 다 있는, 그것도 아이들 사이에서, 청계라니.

아이가 해주는 고구마전을 다 먹어보는 청계라니.


‘실타래’- 엉킨 실을 풀어가듯 마음 살피기, 마음의 근육 다지기.

아이들은 건강했고, 힘이 있었다.

아이들의 삶은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생기부(생활기록부. 학생부종합전형의 바탕이 될)가 ‘팩트에 기반한 소설’이라 저들이 아는.

저마다 준비해온, 그래서 우리가 숙제검사라 부르는,

책과 생활과 생각을 나누었다.

구상의 ‘꽃자리’와 박노해의 ‘별은 너에게로’,

<페스트>와 <새의 선물>과 <나미야 잡화점의 기억>과 <꿈꾸는 다락방>과 <제노사이드>와

<사피엔스>와 <담론>과 <시민의 불복종>도 나왔다.

누구에게는 너무나 즐거운 책이 누구에게는 지루하였고,

그 다름들이 우리를 풍성하게 했던.

책읽기의 즐거움과 그 효과를 새삼 또 확인한.

그리고 선배들의 당부와 지혜를 나누었고,

후배들의 고민을 같이 듣기도.


‘夜단법석’.

노래와 밤참과, 노래와 밤참과, 노래와 밤참이.

두어 해만에 물꼬에 와 노래집 <메아리>에 눈이 번쩍 뜨인 자누,

“페이지는 같애요?” 물었다.

이건 물꼬의 오랜 걸음들만이 이해하는 말.

그러니까 그 전에 쓰던 노래집은 복사물을 끼운 파일이었는데,

이면지를 써서 물꼬 교무실에서 나온 문건들이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하고,

이곳저곳 노래들에서 복사를 한 것이어 페이지가 들쭉날쭉 했던.

원래 그 노래가 실린 페이지가 그대로 복사되었을 것이니.

그러다 이리 번듯한 노래집이 장만 되었으니.

만들어주셨던 금룡샘에 다시 감사. 때때마다 이렇게 감사.

같이 힘을 내는 노래를 목청껏 같이 부르기도 하고,

좋은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물꼬가 나누고픈 생각을 담은 노래를 배우기도 하고.


씻고 다들 올라오니 새벽 2시.

이틀이라고 하나 그 질감으로 대엿새는 될 청계라.

한 방에 다 구겨 들어가 그때부터 놀이로 낡은 집이 바람도 없는데 들썩이기 시작했는데,

아, 웃음이 눈처럼 펄펄 날리고

깨소금처럼 고소한 단물이 흘러나왔다.

진도 한 바닷가 몽돌밭에서 바닷물에 자갈 구르는 소리,

나는 이 밤에 그 소리를 깊은 산골짝 마을에서 들었으니.

“3시 10분에 끝내기로! 네들이 자야 이 할미가 자.”

아이들은 두 말도 않고 불을 껐더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4536 2016.12.25.해날. 맑음 / 청계 이튿날 옥영경 2017-01-02 773
» 2016.12.24.흙날. 맑아지는 하늘 / 청계 여는 날 옥영경 2017-01-02 902
4534 2016.12.23.쇠날. 눈 옥영경 2016-12-31 747
4533 2016.12.22.나무날. 비 오고가고 옥영경 2016-12-31 726
4532 2016.12.21.물날. 비 옥영경 2016-12-30 659
4531 2016.12.20.불날. 비와 안개 옥영경 2016-12-29 705
4530 2016.12.19.달날. 비 옥영경 2016-12-28 678
4529 2016.12.17~18.흙~해날. 맑다 이튿날 한밤 비 옥영경 2016-12-28 787
4528 2016.12.16.쇠날. 맑음 옥영경 2016-12-28 761
4527 2016.12.15.나무날. 맑음, 기온 뚝 옥영경 2016-12-27 712
4526 2016.12.14.물날. 흐림 옥영경 2016-12-27 698
4525 2016.12.13.불날. 흐려가는 하늘, 뿌연 보름달 옥영경 2016-12-26 784
4524 2016.12.12.달날. 맑다 흐려간 밤 / 사과(謝過) 옥영경 2016-12-24 733
4523 2016.12.11.해날. 맑음 / 먼 곳의 그대에게 옥영경 2016-12-21 771
4522 2016.12.10.흙날. 맑음 옥영경 2016-12-21 724
4521 2016.12. 9.쇠날. 맑음 옥영경 2016-12-21 693
4520 2016.12. 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6-12-21 689
4519 2016.12. 7.물날. 싸락비 옥영경 2016-12-21 851
4518 2016.12. 6.불날. 맑음 옥영경 2016-12-21 798
4517 2016.12. 5.달날. 맑음 옥영경 2016-12-21 75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