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10.달날. 갬

조회 수 264 추천 수 0 2023.08.02 01:32:16


억수비 내린다던 간밤이었고,

곳곳에서 어마어마한 비가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 멧골은 겨우 얼마쯤의 비가 도둑비처럼 다녀갔고,

아침부터 해가 쨍쨍하다.

 

아침뜨락 바닥이 온통 물길이었다.

대나무수로도 넘쳐 뽕나무 앞쪽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멧돼지가 밟아 뭉개진 물길 때문이었다.

물길을 터주었다.

옴자 아래쪽인 감나무 아래도 역시 물이 넘쳐

아침뜨락 들머리 계단 바위가 크게 패이기도.

얼른 물길을 파서 도랑으로 연결해주다.

아침부터 아침뜨락으로 들어가던 목적은

난나와 티쭈 머리 위의 뽕나무 가지들을 좀 쳐주는 일이었다.

무성했고, 그늘지니 그 아래 꽃들이 자라지 못했고,

(대신 반그늘을 좋아하는 꽈리는 기세등등했지만)

벌레 끼고 이끼 끼고.

측백 울타리 두어 그루까지 가지 덮고 있었다.

오르기도 사다리를 놓기도 편치 않았지만

먼저 성가신 곳부터 가지자르기.

한 번에 큰 가지를 치면 수월켔다 싶지만 그게 또 아니다.

걸리는 잔가지를 치고, 내려와 들여다보고 또 치고.

그래야 수형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혹 큰 가지를 치기는 하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며 옮기려면 그것에서 또 가지를 쳐야.

오전이 훌쩍 지났다.

 

밥못 북쪽 경사지 덤불에는 구멍이 둘 있다.

비가 많은 이즈음 고라니의 발자국은 너무나 선명하고,

밥못 둘레에는 그들이 오간 무수한 흔적과

동시에 방금 누었음직한 반들반들한 고라니똥이 한 가득.

저녁답에는 건축현장의 와이어 매쉬를 가져다 절반을 잘라 두 구멍을 막다.

곧 다른 곳을 찾겠지.

그러면 나는 또 그곳을 막을 테다.

그렇게 이어가다보면 모든 곳에 울타리가 쳐져 있지 않을까, 하하.

그들의 길을 명확하게 알지만(빼도 박도 못하는 발자국) 덫을 놓을 수가 없다.

덫을 놓아 어쩌자는 건가?

다친 그는 어쩔 거며, 잡힌 그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숨바꼭질처럼 그들이 오고, 그들을 막고,

그들이 헤집어놓은 곳을 고르고,

그들이 또 그러면 또 그곳을 고르고.

미련하다? 그럴지도. 물꼬가 사는 것이, 물꼬에서 사는 일이 미련한 일이다.

그러나 오래된 미래라 믿는 삶이라.

(그들이 다른 놀 곳을, 물 먹을 곳을,

너르고 우거진 골짝 이만한 곳이야 없더라도 왜 다른 곳이 없겠는가,

찾기를!)

이리 살아가보겠다.

 

마을에서 얻은 일을 이틀하고 나가던 현철샘은

달골 관리자답게 아침뜨락 들머리 계단 아래 무너져 내린 흙을

삽으로 쓸어 올리며 물길을 깊이 파놓고 떠나다. 깨밭 가장자리 말이다.

주말을 지낸 기락샘도 가고,

이웃 밭 농막의 두 어르신들도 휴가처럼 열흘을 보내고 나가고,

두터운 고요가 찾아들었다.

사람이 있으면 있는 대로,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좋은 달골.

 

광주의 동네책방 하나와 통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곳 대표가 물꼬를 알고 있었다.

20년 전인가 캠프를 다녀갔다던데.

아마도 상설학교 학교문연날 잔치정도가 아니었을까.

아니라면 외부에서 들어와서 했던 공연에 구경을 왔을 수도.

물꼬가 오래 살았고,

사람들이 그렇게 드나들었고,

어느 때 다시 연결되기도 하고.

물꼬는 아직 대해리에 있다!

 

지구를 지키려는 작은 실천들이 결코 쉽지 않은...

LG전자의 전기청소기 하나가 애를 먹였다.

청소기 흡입구가 망가져 두어 달 찾았는데

인터넷을 뒤진 건 물론 제조사까지 연락해도 부품을 구할 수 없었다.

아니! 제조년월이 20151월인데, 단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부품이 단품이라니,

10년은 보증해야지 않나.

그곳 고객센터로부터 두어 차례 인터넷 구매경로를 안내받기도 했으나

역시 없었다.

한번은 주문에 성공했으나 호환이 안 되는 부품이어 반품하기도.

기업을 바꾸는 게 제일 쉽다니까, 환경 문제 말이다.

물꼬가 보다 생태적으로 살려는 방법 하나는

만들어진 물건을 오래 쓰는 것.

결국 이렇게 막을 내리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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