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달골 ‘아침뜨樂’의 물길을 살폈다.

낮밥상을 물리고는 소도 안의 풀을 뽑았다.

처지는 몸을 옴작거리는 것으로 끌어올린다.

원고 하나를 퇴짜 맞은 글쓰기의 좌절도 기운을 빠지게 했을 것.


마산에서 택배가 왔다.

얼마 전 민주지산을 다녀간 어르신 하나가

산골 건강한 밥상에 대한 고마움이라며 디포리와 다시멸치를 보내왔다.

물건이 얼마나 좋은지 상품 중에 상품이라고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정성스런 포장과 그보다 더 정성어리고 단정하게 쓴 측면의 글씨!

감동이었다. 이걸 어찌 먹겠는가 싶더라.

아차차, 인연을 맺어준 선배한테도 고맙다 전해야지,

다시 원 상태로 포장 잘 해서 사진을 찍어 보냈다.

“쌩고생. 마산 촌놈들은 매르치도 금박포장?”

농하시며 ‘들러리도 기분이 백배 좋음’하셨네.


2017학년도는 안식년.

안식년은 뜻하지 않게 결정되었다.

외국에서 한 해 동안 연구년을 보낼 일이 생겼더랬다.

처음엔 오랫동안 꿈꾸던 스웨덴의 웁살라였다.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산실이었듯

미셀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썼던 웁살라대학의 중앙도서관 카롤리나 레디비바,

웁살라의 길고 고독한 북국의 긴 겨울이 날마다 여섯 시간 이상씩 집필의 습관을 만들었던.

치밀한 그이 글의 고증은

15세기부터 내려오는 수만 권의 고서와 자료를 비롯한 총 500만권의 책들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곳은 과일도 귀하고 물가가 너무 비쌌다.

하여 물산이 풍부하고 그만큼 생활비가 낮은 바르셀로나로 옮겨갔다.

그런데, 삶이 계획대로 뜻한 대로 되던가, 어디.

불가피하게 일정이 미뤄졌다, 비용을 부담하는 기관에 사정이 생긴 것.

1년이 더뎌지게 되었고, 그마저도 백퍼센트 확정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쨌든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미 안식년으로 결정한 일을 번복하지는 않기로 했다.

마침 오래 해왔던 계자며 이제 좀 검토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느끼던 즈음.

하지만 백수가 과로사라 쉬어간다고 외려 할 일도 하고픈 일도 밀어닥치는 일도 많은...


네팔을 다녀오고 오는 날부터 가방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움직였다.

이제야 여독이며 피로가 어둠처럼 덮쳤다.

대개 일어나는 시간에 깼다가 다시 잠자리로 들어가 늦게까지 잤다.

사실 2014년 4월 16일 서해바다에 배가 잠기고

그 이후 한 번씩 극심해진 현상이기도 했다. 일종의 무기력.

배도 건졌는데.


그런데, 오늘 문자가 하나 들어 왔다,

봄날에 물꼬에 한 번 가고 싶은데 안식년이라 조심스럽다는.

이런! 아! 안식년이었어!

그랬다. 뭘 안 하는 때, 뭘 안 해도 되는 때.

그래서! 뭘 할 수도 있는 때.

사람이 그렇다. 한 순간에 천당일 수도 있는 거다.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람이지.)

갑자기 힘이 솟는다.

늦게까지 잠자리에 있으면 죄책감이 들고는 했던 일이

아, 그간 못 잔 잠을 잘 수도 있지, 로 바뀐다.

아침 9시까지 10시까지라도 된다니까!


어쩌면 법문 하나의 위로일 수도.

생주이멸(生住異滅)이라, 생각이란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사라진다.

행복은 우리 마음이 바뀌지 않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바뀌는 줄 알고 그 변화에 구애받지 않는 데 있다.

과거의 상처?

우리는 자주 그 상처를 되새기고 괴로워하고.

상처 역시 그 기억을 붙들고 있는 내 마음에.

결국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산다!

자, 일어나 그저 걸으시라.

그래서 늦게까지 잘 수도 있지만 또 안잘 수도 있어

이렇게 또 바지런히 옴작거리는 하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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