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시작해 늦도록 이어진 며칠이어 잠이 모자랄 법도 하련만

설렘으로 아침을 열었다.

20년 30년이 예사여 10년 인연은 축에도 못 낄 시간들,

물꼬의 지난 세월이 그랬다.

영동에 자리 잡은 것만도 꼭 20년.

‘물꼬 연어의 날’이다.

뱃속 아이부터 아흔 어르신까지 동행한다.


이른 아침부터 먼저 들어와 있던 샘들은 다시 풀 속으로.

달골에 못다 한(그렇다고 다 하지 못할 테지만 하는 데까지!) 들머리 땅고르기와

달못 둘레 고르기, 그리고 미궁의 미로 안 풀매기.

부엌은 벌써 밥바라지로 인교샘 선정샘 점주샘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아침으로 가볍게 떡을 쪘고,

점심으로 국수를 삶고 있었고,

저녁에 낼 음식의 재료들을 다듬기 시작했다.

겉절이는 간밤에 했던가 아침에 했던가.

용샘이 먼저 들어온 아이들을 데리고 현수막도 걸고

목공실에도 손 보태고.


“이거 해야지... 아, 이건 샘들이 모여야 하지.”

“저거 해야지... 아, 저것도 샘들이 모였을 때 해야지.”

먼저 온 샘들은 쌓인 일들에서 애가 탔다, 한번에 필요한 손이 많은 일들이 남았으니.

낮 버스를 타고 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비로소 밀물처럼 밀려가는 일이었네.

공간들 쓸고 닦고, 창문도 닦고,

베갯잇을 끼고, 못 다 들인 이불들을 걷어오고,

잠자리를 위해 매트들을 털고,...

달골에 이불도 올리고.

달골에는 미취학아동을 동반한 가정들만,

나머지는 모두 학교에서, 계자처럼 자기로.

기표샘이 고새 자라버린 운동장 한켠의 풀도 다시 베고,

화목샘이며 샘들 몇과 아이들 데리고 물꼬 수영장 가는 길 풀을 베고.


교문에서는 서현샘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맞고,

낮 4시 감나무 아래 평상 곁으로 찻자리가 마련되었다.

연꽃차와 오미자차와 홍차.

저온샘은 연신 얼음 담긴 오미자차는 떠야했다.

제주에서 재용이네사 보낸 쑥빵이 다식으로 잘 쓰였네.

마당에서는 장승을 깎기 시작했다.

나무둥치 의자에들 둘러앉거나 오가며 구경들을 했다.

손에는 저마다 차들을 들고.

모둠방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조각그림잇기를 했고,

어른 얼마쯤은 물꼬 공간을 안내하는 ‘물꼬 한 바퀴’를 따라가고 있었다.

저녁 6시 밥상나눔이 있었고, 채성이가 밥상머리공연을,


7시가 좀 넘어 되자 고래방으로 모여들어

논두렁 문저온샘의 사회로 작은 무대가 열렸다.

1부에선 물꼬랑 맺은 인연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를 이어했고,

물꼬가 살아온 날들이 서현샘이 정리한 영상으로도 펼쳐졌다.

아리샘이 물꼬 살아온 날들을 되짚었고,

교장샘이 앞으로 살아갈 물꼬의 날들을 이야기하였다.

시인 이생진 선생님과 가객 현승엽샘의 축하공연으로 2부가 열렸고,

유설샘 미루샘 소울 소윤 소미가 나와 가족합창으로 '무지개 저편'을 불렀다.

미자샘이 해금을 닮은 현악기 얼후를 연주하며 품격을 더했고,

품앗이 교원대샘들이 춤바람을 열었으며,

마지막은 인서와 서윤이가 나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불렀다.

아흔 세월을 사신 이생진샘이 사람 사는 날이 하루도 잔잔한 날이 없더라시더니

어린 두 여자 아이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자 화답했던.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사는 일이 결국 웃자고 하는 일 아니겠는지,

그러자고 이리 모였고, 우리 즐거이 생을 살자 하였다.


밤새 곳곳에서 벌어진 뒤풀이.

혼자였던 젊은이가 이곳에서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 계자(계절자유학교)로 물꼬를 다시 오고,

오랜 시간 떠나있다 아이를 키우며 다시 물꼬를 찾고,

일곱 살 때 맺은 인연으로 아이였던 시간을 건너

새끼일꾼이 되고 품앗이가 되고 논두렁이 된 이들,

옛적 아이와 교사로 만났으니 이제 어깨동무한 동료 혹은 동지가 되고...

우리들의 뜨거웠던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이 물꼬에 있었다.

기표샘과 서현샘과 선정샘과 윤희샘은 밤을 하얗게 갈무리 하였더라지.


대개 왔던 이들이어 그 무리가 더 많이 보이게 되니

아무래도 첫걸음한 이들에게 안내가 소홀했다.

늦게라도 무대의 마지막 순간 다음 흐름(뒤풀이, 잠자리, 이튿날 흐름)을 알려주어얄 것을

중앙에서 못 챙긴.

그런데도 사이사이 왔던 이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고,

사람들의 너그러움이 또한 그 자리를 메웠다.

흙집 씻는 곳이 공사를 앞두고 있어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바깥수돗가에 의존해 고양이 세수를 해야 한 여름 가운데였는데도.

물꼬에 모이는 이들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보여준 한 면이었으니.

놀랍고, 고맙고, 미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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