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몇 장의 여행사진을 보고 그 가운데 가장 설렘을 준다고 고른 건

파리 에펠탑도 히말라야 준봉도 뉴욕 맨하탄도 스페인 그라나다도 아니었다.

맛난 음식도 대단한 풍경도 아닌 비행기 탑승구 사진이었다고.

삶의 여행도 그렇지 않은가 싶은.

유서 깊은 건축물이나 빼어난 자연이 아니라

내일 일을 모르는, 하지만 그 불안과 함께 있는 설렘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날의 진짜 매력이 아니겠는지.

꼬박 두 달, 일한 날 수만 치자면 40여 일, 두 달의 대장정(그랬다!)이 끝났다.

열다섯 평 집이(다락 5평도 있네) 그리 오랜 시간일 줄 몰랐던.

현장 우두머리로 일한 동현샘은 떠나기 전 못 다 한 일들 일러주고 갔다.

그렇게 많은 일이 남은 채, 정리되지 않은 채 시공자가 빠졌고,

어제 손발 보탰던 은식샘도 다시 돌아가고,

이제 현장에는 무산샘과 점주샘과 영경이 남았다.

원석샘과 민수샘이 얼마쯤 손을 보태러 들어오기로 했다.

페인트칠은 결국 외주로 돌려야지 않을까,

바닥을 에폭시로 가기로 했으니 그것까지 묶어서,

퍼티 작업을 해보니 우리 손으로 하려면 일주일을 족히 걸리겠다,

역시 맡겨야겠다. 문제는 지금, 시간이니까.

이웃마을 대식샘이 그 상황 수습을 도우려 현장을 본다고 다녀갔다.

“내가 오든 사람을 보내든 한번 보자.”

좀 더 빨리 정리하지 않았던 현장이어 아쉬웠지만

지금이라도 정리되어 다행하고 가뿐한!

지날 땐 잘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퍽 힘들었던 듯.

그래서들 집 짓고 나면 늙는다했던가.

엊그제 누가 그랬더라,

“옥샘, 팍삭 늙으셨어요...”

“또 하나 지으면 젊어지나...”

그러나 한편, 하루하루 나름 여행이었다. why not!

다 지어진 집이 끄는(물론 아직도 끝은 안 났다만) 매혹이 아니라

그 나날이 준 순간들이 선물이었다.

그때 웅재샘이랑 종일샘이 있었고, 그날은 무범샘이 있었네,

여기 벽 세울 때 그런 일이 있었지, 여기 루바 칠할 때 말이지, 저기 징크 자를 때...,

그런 순간들이 함께 한, 그래서 의미가 된!


누마루는 결국 하지 못했다.

세탁실문, 창고문, 2층 다락문, 누마루로 나가는 문, 문 네 짝은 허공으로 남고,

2층 다락방 벽채는 기둥조차도 세워지지 못했고,

계단 난간도(위험해서가 아니라 준공 땜에) 못했고,

싱크대도 놓이지 못했다.

최고한 먹고 씻고 잘 수는 있어야 집이 마무리인 게지, 이건 원...

계단 바닥만 해도 흠 메우고 사포질해야 하고,

욕실 후향도 달아야 하고,

부엌 후향은 구멍조차 뚫어놓지 않았다.

벽은 석고 그대로이거나 띄엄띄엄 퍼티 작업한 자국들만 남고.

적어도 바닥은 마감을 해야지,

새로운 공법 운운하며 미국에서 수입된 에폭시가 와 있다, 그건 발라야.


시공자를 보내고 학교에 내려가 저녁부터 먹고 올라와

청소를 시작했다, 그래야 다음 일이 되지. 페인트 일부터 기다리고 있다.

무려 4시간을 내리 움직였다.

안에 널린 짐들을 창고로 보내거나 밖에 모으거나.

자정에 다 이르러 햇발동으로 갔네.

그래도 마음들 얼마나 좋든지.

시공자를 둘 땐 5시면 끝나는 현장이었는데,

우리 흐름대로 맘껏 움직이며 외려 일이 되어가는 느낌들.

고단은 하더라.

모두 익은 파김치가 되어 들어서서 안마를 서로 해주며 수다스러웠던 밤,

말 되고 뜻 맞는 또래들이 프로젝트를 위해 같이 모여 움직이는 기분,

마치 우리들이 물꼬 자유학교도들의 부흥회라 부르는 계자 준비처럼 뜨겁고 유쾌했던.

밖은 바람 많고 눈발도 몇,

기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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