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와 생각이 같지 않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말하는 게 아니다.

이미 나와 생각이 같은 이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말하는 것이다.

- 에드몽 웰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 가운데,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 12권 중에서 재인용)


밤새 들썩였던 자리였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딱 그거였네.


이팝꽃: 아침 때건지기

밥바라지샘들 좀 쉬시라 부엌으로 들어가니

선정샘이 이른 새벽부터 먼저 들어와 있었다.

큰 애가 계자를 신청했을 때 네 살 둘째를 업고 밥바라지를 왔던 그니이다.

80년대 거리에서 살았던 내게 훌륭한 인간상을 그렸던 게 있다면

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불 위에는 진업샘네에서 온 어묵국이 끓고 있었다.


불두화: 해건지기(걷기수행).

밥상을 물리고 달골 명상정원으로 갔다; 걷기수행

꼬리부분 들머리에서부터 옴자를 지나 아고라에 이른다.

말씀을 나누는 자리,

그래서 아빠 셋을 무대바위로 불러내보지.

거의 절대로 나서지 않는 수업샘,

여덟 살 딸이 보고 있다고 엄포를 놓으니

그예 나서서 오랜만에 아이랑 보낸 시간을 좋았노라 했다.

그의 아내 현우샘이 아직 혼례를 올리기 전

그러니까 10년 전 특수학급에서 맺은 인연이 그리 넓혀졌다.

진업샘도 나온다.

처음 만났을 때 초등생이던 그가 마흔이 지나 여기 함께 있다.

내 고교시절을 기억하는 초등생 아이였던 그이다.

그의 고모가 내 고교 은사님.

방학을 같이 보낸 뒤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던,

그리고 입사 뒤 딱 10년을 논두렁으로 크게 물꼬를 도왔던 이.

그가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 여덟 살이 되었다.

긴 인연이다.

새 얼굴 대표로 철웅샘이 나온다.

폰 없이 지내본 시간에 대한 소회를 말하다.

미궁에서 느타나무 모신 자리를 향해 걷다. 더러 맨발로.

침묵과 함께해도 좋았을 것이나

도란거리면 도란거리는 대로 또 나쁘지 않았을.

이어 밥못에 둘러 앉아 잠시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였네.

내려오는 길 계곡에서 샘들이 철퍼덕 앉아 아카펠라를 함께 부르기도.

학교에 닿으니 수박이 기다리고 있었다.


담쟁이덩굴: 이강근 샘의 우리소리 특강

사이사이 떠나는 이들은 떠나고,

고래방에서 진업샘을 중심으로 샘들이 마지막 일정에 함께하고 있었네.

이어 남은 이들끼리 마지막 갈무리모임을 하고 짧은 글들을 썼다.

낮밥을 먹고서야 다들 일어났네.


얼마나 많은 손들이 함께했던가.

아이들 일정은 이태를 쉬었고,

작년 바르셀로나행으로 한 해 쉬기도 했던지라

그저 얼굴 한번 봐야지 했던 시간이었다.

얼굴 봐야지, 그렇게 재작년 처음 했던 연어의 날이었고,

또 모여 볼까 한 이번 일정이었는데...


보육원 아이들이 자랐던 시설로 인사를 가는 일은 드물어도

(교사도 바뀌고, 꼭 좋았던 기억만도 아니거나 하는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어쨌든 물꼬는 온다.

이번만 해도 광주의 한 친구는 두 아들 손을 잡고 남편과 왔고,

서울의 한 친구는 곧 혼례를 올린다며 인사를 왔다.

거기 주례로든 엄마 자리로든 서달라는 부탁과 함께.


거개 떠나고 이생진 선생님 일당 셋에 두엇만 남았다.

이번은 해보자던 것이 연례행사가 될 것 같은 연어의 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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