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16.달날. 맑음

조회 수 415 추천 수 0 2020.04.13 21:24:52


 

눈을 뜨면 창밖부터 내다본다.

하얗다. 간밤 한두 발 날리던 눈이 밤새 그 속도로 내렸는지,

한 번에 쏟아졌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은 멎어 있다.

조금이라도 언 길이면 긴장하는 달골,

다행히 길에는 쌓이지 않았다.

 

해가 났다. 기온도 영상. 금세 녹았다.

밥 때가 되면 어여 나오라고 불러대는 제습이와 가습이다.

밥을 주기 전 앉으라고 하면 퍼득거리면서도 앉는 습이들.

아침마다 그들을 풀어 앞세우고 아침뜨락을 걷는다.

오늘은 미궁에서 가습이를 뒤에 딸려 끝까지 들어가고 나오는 길을 다 따라오게 했다.

어느 날 그는 그 길을 다른 데로 빠지거나 건너뛰지 않고 걷게 될 수도.

제습이는... 뭐 천지로 돌아댕긴다.

우선 늘 쫄쫄거리고 따라오는 가습이부터 해보기로.

다시 집으로 데려와 줄을 매주고

저들 집에 들고 나오기를 세 차례 한다.

들어가!” “기다려!” “나와!”

가습이는 빠르게 하고, 제습이는 버틴다.

알아듣는 날 있겠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틈틈이 귀하게 읽는 책이었다.

그런데, 그게 먼저 해야 할 일이면 하지 않았겠는지.

오늘은 눈떠서 책 먼저 한 시간 읽고, 수행하고 습이들 밥을 주었다.

남는 시간에 읽는 책이 아니라, 틈을 내서 읽을 책이 아니라

책부터 읽고 다른 일을 하면 될 일이었던.

해보자.

23일 분교의 특수학급에 출근을 시작하기 전

생활흐름도 거기 맞춰야.

새 흐름 만들기로 한 주를 시작한다.

 

사용기한이 여러 해 지난 영양제가 있었다.

오늘은 챙겨내서 쓰기로 한다.

몸에 좋다는 한약재가 머리카락에도 좋은 걸까,

늘 의구심이 생기더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좋은 게 다른 존재한테 꼭 좋을까?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나쁘지야 않겠지 하고.

처음엔 알로 다섯 알씩 편백나무 아래에 주었다가

그게 녹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그 사이 맛난내를 맡고 멧돼지라도 오면 어쩌나,

그럴 게 아니다 싶어 다시 거둬들이다, 이백여 알이나 되는 걸.

물에 녹혀 뿌리다.

사택 고추장집 뒤란과 간장집 마당의 나뭇가지들 정리.

바람에 부러진 가지들이 많았다.

 

메일 하나를 보내는데 그야말로 종일을 썼다.

사람을 설득해낸다는 것, 어려운 일이다.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우울한 것인가. 아니다.

그가 물꼬를 돕지 못하는 것이 내게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오해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또 그만이지.

그에게 까닭이 있다면 당연히 그의 사정이 그럴 것이므로.

장애인단체 사이트에서 보았던 구절이었지, 아마;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왔다면 당신은 시간 낭비를 하는 것.

그러나 만약 여기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있기 때문이라면 함께 해보자.”

그의 도움이 내게 영광이고

물꼬를 도우는 게 그의 영광일 수 있다면!

 

오늘 보내는 메일 하나에는 물꼬를 설명해야 했다;

사람이 사는 데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더라,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 살아보는 이곳입니다.

자본주의 하늘 아래서 돈 없이도 삶이 영위되는 기적을 날마다 체험합니다.

돈을 우습게 생각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 죽겠다는 사람들한테 나는 다르다고 잘난 체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 많은 임금과 더 좋은 복지를 요구하는 것 못지않게

돈에 덜 의존하는 삶을 궁리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돈에 덜 억압당하며, 질질 끌려다니느라 존엄을 놓지 않을 수 있겠기에.

더러 사람들이 이런 제 삶을 혹은 물꼬의 삶을 대단하다고 추켜세우지만

알고 보면 그런 소리를 들을 까닭도 없습니다.

없이 사는 사람이 그런 자족조차 없이 산다면 너무 허망하기 때문이고,

열심히 하지 않아서 없는 사람이 된 게 아니기에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뿐입니다.

한편 아주 적은 돈으로도 너끈히 살아지는 제 삶의 정체 뒤에는

역시 돈을 벌어야지만 살아지는 사람들이 나눠주는 것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물꼬에 기부를 하는 이들 가운데는 있는사람이 드뭅니다.

과부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할까요.

몇 시간 채 자지 못하고 슈퍼를 꾸리면서 물꼬에 기부하는 젊은이가 있고,

장애인이면서도 물꼬에 기부하는 청년이 있고,

보육원에서 자라며 물꼬랑 연을 맺었던 이가 어린이집에 일하면서,

또 공장노동자로 물꼬에 살림을 보태는 이들이 있고,

용돈을 쪼개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후원을 하는 대학생들도 있습니다.

저네들이 저리 고생하며 번 돈으로 이곳 삶이 이어진다 싶으면

저 역시 밖에서 열심히 노동한 댓가를 물꼬 통장으로 들어오게도 하지만

무엇보다 살뜰히 이곳 살림을 꾸리는 것이 저들에게 갚는 것이거니 하며 맹렬히 살게 됩니다.

그래서 생긴 힘으로 수행하고 기도하고

언제든 사람들이 깃들어 마음을 풀고 갈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나가지요.

 

코로나19로 개학은 다시 4월로 미뤄지는 걸까?

내일 발표가 있을 예정이란다.

큰일 날 게 뭐 있나. 다이나믹 코리아, 다들 천지로 다니다가 답답할 뿐,

늦어지는 일정들이 무에 대술까.

쉬었다 가는 거지, 넘어진 이 참에.

걱정은 이제 아이들이라기보다 자영업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 곤궁을 어이 지나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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