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물날. 맑음

조회 수 727 추천 수 0 2020.05.06 08:27:44


 

이 멧골엔 진달래 더욱 붉은 4월이다.

볕이 좋은 곳에 작은 밭을 일구고 삽주해 놓은 개나리들에서 꽃들 피고 졌다.

햇발동 부엌 창 아래 개나리는 아직.

학교에선 생강나무와 산수유 노란 꽃들이 한창, 매화와 살구꽃도 환하다.

꽃밭의 백목련은 한껏 벙글었다 몰살하듯 나무에 붙은 채 말랐고,

자목련과 수수꽃다리는 꽃봉오리 내민다.

 

아구구, 어깨와 허벅지와 무릎이 뻐근하다.

하지만 낼모레 쇠날부터 주중에는 제도학교의 한 분교로 출근을 해야 해서

널린 일은 없도록 걸음을 잰다.

오전에는 몸을 풀고 물꼬 누리집 좀 살피고,

물꼬요새도 기록을 정리하여 일부 올려놓고.

오후에는 학교 꽃밭에 진 수선화 한 덩이를 꽃대를 자르고 패 와서

달골 아침뜨락 옴자 자리 수선화 군락에 더한다.

있던 것들 뿌리를 갈라줄 수도 있겠으나 좀 더 실해지길 기다리기로.

사이집으로 내려와서는 심을 잔디에 물부터 먹이다.

툭하면 잔디 심는다고 말한다 다들 여기시겠다.

잔디가 조금 생길 때마다 심는 거라...

다른 작업현장에서 돌아가던 트럭에 실렸던 잔디 있다길래 부려주고 가라 했던 것.

사이집 서쪽과 동쪽 마당 비어있는 곳들을 채우기로 한다.

돌이 많은 곳이다.

풀이 많은 동쪽은 쇠스랑으로 패고 돌과 풀뿌리를 추려내는 방식으로,

서쪽은 몇 곳의 풀은 호미로 매고 전체를 긁었다.

서쪽부터 잔디를 심는데,

 

잔디를 심다 연규샘을 생각했다, 미궁 잔디를 같이 심었던.

점주샘도 여러 날 고생했다.

다른 때라고 생각 않는 게 아닌데

이심전심이었던 걸까, 안부 메일이 들어왔다.

잘 계셨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멀리서도 항상 그런 마음이라고,

이유나 조건 없이 그냥 그런 마음이라고 끝을 맺고 있었다.

고마웠다.

태희샘이며 여러 사람이 그의 안부를 궁금해라들 했던.

내 젊은 날을 생각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 같은 거 생각 안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그런 일을 찾았다. 시대가 그랬으니까.

지금도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구분선이 아니라

앞에 놓인 일을 그냥 한다. 그 말이 생각 없이 산다는 의미는 물론 아닌.

일에 대해 그런 분별을 하지 않고 산다는 의미랄까.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는 훌륭한 청년들이 물꼬에는 많다.

그립다, 모다.

 

개학이 늦어져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오지 않으나

교사들 업무는 이어지고,

이번 학기 한 분교의 특수학급 담임인 내 일은 본교 교사가 같이 해주고 있는 상황.

물꼬를 잘 아는 교장샘과 본교 교사의 배려였다.

대기상태로 있다가 일정이 밀리고 또 밀리고,

6일부터는 더 미룰 수 없는.

교장샘이 내일 분교서 샘들 모두 다 인사하는 자리로 밥 먹자는 제안.

겨울장화에 지워지고 있는 글자 12,000을 다시 아크릴물감으로 썼다.

먼 길 가는 신발의 끈을 매듯.

거기 ‘.15’도 덧붙였다.

12,000은 장화의 값이었고,

12,000.15<럼두들 등반기>에 나오는 요기스틴의 럼두들 산의 높이.

 

, 교무실 전화기에 남겨진 반가운 음성이 있었다.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어 교무실에 목소리를 남긴.

우리 모두 달골에서 일하던 시간이었다.

오래 생각했더니 그리 다녀가시었다.

이제는 스님이 된, 아주 아주 오래전의 한 학부모였다.

십수 년 전 물꼬가 갈등의 소용돌이에 있을 적 의지가 되었던 그니라 늘 고맙고,

그래서 한편 그 시간이 되살아나 또 마음이 착잡해지기도 하는.

하지만 지나간 시간들이다. 지금 이곳이 그렇듯 그니도 평화로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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