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26.쇠날. 가끔 해 구름에 가리우고 / 백두대간 15소구간

봄학기 갈무리 산오름을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아이들 아홉과 어른 셋이 다녀왔습니다.
백두대간 8구간인 우두령에서 추풍령까지 가운데서
15소구간인 우두령에서 괘방령까지를 걸었습니다
지난 3월 14소구간(삼도봉에서 우두령까지)를 종주한 다음 길이지요.
종주(縱走)라 하면 능선을 따라 산을 걸어,
많은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일을 말합니다만
마루종(宗)자에 달릴 주(走)자를 쓸 수도 있겠습니다.
백두대간 마루를 달리는 일이니까요.
대부분의 산행도에 궤방령이라 씐 괘방령은
영남 쪽에서 한양으로 가는 세 길목(문경새재, 추풍령, 괘방령) 가운데 하나로
특히 과거길 가는 이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질세라 추풍령을 피해
급제하여 방이 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괘방령을 넘었다 하니
그 의미로 볼 때 괘방령이라 부르는 게 맞는 듯합니다.

좀 이르게 학교를 나서자고 하였으나
아이들 입성과 가방을 다시 확인하고 보니
7시 45분에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우두령에 부려진 일행이
산 개념도를 머리에 넣고 각자 지도를 확인하고 주의할 일들을 다시 짚은 뒤
산을 오르기 시작하니 8시 40분입니다.
같이 오래 걷는 길, 땀 뻘뻘 흘리며 산을 타는 일만으로도
온전한 배움의 길일 수 있다는 생각을 곱씹어보지요.

저 역시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이십대에 지독하게 산을 같이 오르내렸던 몇 선배들한테 전화를 넣었지요.
애들하고 가려니 조심해야할 지점들을 묻는데
겁을 팍팍 주는 겁니다.
영락없이 헤매며 영축사로 내려올 수 있다거나,
대부분 직지사길로 가기 십상이라고도 하고,
괘방령이 아니라 아랫재방령으로 내려올 확륭이 더 크더라고도 했지요.
대간길 가운데 수월하기로 꼽을 수 있으나
바라던 길대로 가기는 어려운 코스라 합니다.
물론 최근처럼 백두대간에 대한 정보도 가난할 때고
백두대간이 덜 정비되었던 시절이긴 하나
산 꽤나 오르던 구력을 익히 곁에서 알았던 선배들이 그걸 감안하면서도 준 조언들이라
잔뜩 긴장을 했더랬지요.

"와아!"
뒤에 바짝 따라 오르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눈을 마주칩니다.
애기나리 군락이 우리를 먼저 맞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애기나리라니...
은방울꽃은 어찌 저리도 곱답니까.
이 구간은 야생화들이 유난히 아름다운 곳으로도 이름나 있지요.
두루미꽃도 밭을 이루고 있습니다.
홀아비꽃대도 적지 않네요.
쥐오줌풀에 둥굴레가, 미나리냉이가, 미나리아재비가, 졸방제비꽃들도 한창이었습니다.
고사리와 취나물도 한가방 채우겠데요.
줄창 오르다 985.3m봉에 닿아 가슴을 엽니다.
잠시 산 아래를 눈에 담고 사탕과 오이도 나누었습니다.
물과 밥이야 제 가방에들 일찌감치 넣었더랬지요.
"새앰, 천남성요!"
바삐 가는 걸음에도 놓치지 않을 것들 앞엔 걸음을 세웁니다.
잡목을 헤치며 걷기 한참,
1030미터 봉우리가 우리를 맞습니다.
지도에는 없습니다만 이 지역에선 여정봉으로 불리지요.

오른쪽으로 비켜 내려가니 전망이 좋은 둔덕 하나 나옵니다.
바로 아래가 바람재인데
온 산을 헤쳐 목장을 만들었다가 지금은 버림받은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김천쪽에서 바람재로 올라오는 데까지 찻길을 뚫어 산을 갈라놓으니
흉물스럽기가 이를 데 없었지요.
그 둔덕에서 무선을 하고 있던 아마추어무선사(햄) 셋을 만납니다.
"황악산은 어느 방향이지요?"
민주지산이 어느 방향인지,
아침에 멀리까지 보이던 곳이 혹 천왕봉이냐 들을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주욱 산세를 읊어주며 아는 체도 하였지요.
"아,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한참 우리가 나누는 얘기를 듣더니
언젠가 방송을 보았다 다시 인사를 해오셨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었노라며.

바람재 안부의 헬기장을 지나 우뚝한 형제봉을 향해 오릅니다.
표고 200미터를 급경사로 올라야 한다는 곳이지요.
차츰 뒷패가 늘어집니다.
류옥하다, 나현, 령이가 이제는 어른같은 호흡으로 따르고
승찬이, 동희가 바짝 붙었으며
신기도 젊은 할아버지 앞으로 섰습니다.
정민이와 창욱이, 종훈이가 처져 정운오아빠랑 덩어리를 이루어 따라오고 있습니다.
신성봉 갈림길은 어딘지도 모른채 지나고
조망도 트이지 않는 능선길에 불과한 형제봉을 겨우 알아보고서
뾰족하니 올려다보이는 황악산을 향해 걸음을 서두르니 금방입니다.

황악산 비로봉(111m).
지난 해 봄 들머리,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듯 올랐던 곳입니다.
정상에서 사진을 하나 찍고 바로 내려서니 헬기장,
점심을 먹습니다.
정운오아빠는 둥글레 뿌리를 캐와 깎았는데,
일찌감치 손을 내저으며 못먹으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대개는 맛을 봅니다.
"끓이면 숭늉 맛 같은데..."
뿌리에서도 역시 구수한 맛이 돌았지요.
"담엔 고추장을 챙겨오자."
'산에서 살아남기'를 하는 겁니다.

대구에서 온 산행인들을 만납니다.
만나주어야지요,
대단하네, 그리 일러주는 감탄이 또 아이들을 한껏 치켜세우겠지요.
그런데 그들이 쥔 개념도을 슬쩍 보니
산깨나 탄 사람이 만든 겁니다.
물었지요, 어데서 났냐고.
낙남정맥를 꿰고 그 길을 책으로 엮어낸 이의 것이며
그가 이번 산대장이라 소개해주었습니다.
귀한 한 분을 이리 또 산길에서 만납니다.
길잡이로 도움을 받고 싶다 하자 기꺼이 그러마셨지요.
앞으로의 산오름에 큰 힘을 또 얻습니다.

백운봉도 어딘지를 모르게 지나고
운수암과 백련암을 거쳐 직지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섰습니다.
여시골산이라는 팻말이 길을 잡아주었지요.
운수봉을 지나 여시골산임직한 곳에서 나무들 사이 왼편으로
저수지가 살짝 비칩니다.
어촌저수지지 싶었지요.
"거위벌레알집이예요!"
"어디?"
"정말!"
"본 적 있니?"
"처음 봐요."
"나도."
너도 나도 처음 만납니다.
우리가 책으로 만났던 알집이었지요.
상수리나뭇잎에 똘똘 말린,
0.5센티미터는 족히 되려니 하고 우리는 알집 하나를 펴봅니다.
알이 지름이 1밀리미터나 될까, 예쁘기도 한 노오란 알 하나가 달랑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 누가 그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었던가요.
나고 자라고 소멸하는 길을 스스로 깨치며 저마다 살아가거늘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거늘
교육이 무에 중뿔난 거라 기대도 많고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가요.
저 충만한 생명의 길을 다만 잘 따르면 삶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 될 것입니다.

"여우굴이야!"
여시골산을 벗어날 무렵
길 쪽에서 돌아앉은 곳에 굴 하나가 발견됩니다.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지요.
워낙 여유로이 하고 있는 산행인데다
아직 해 충분하니 해찰을 해도 상관없겠는 때였더이다.
굴 둘레를 내려서고
우리는 준비한 손전등으로 밧줄까지 나무에 묶어 탐험에 들어갑니다.
산짐승도 찾아들었겠고 도망자가 숨었음직도 합니다.
정을 댄 흔적도 나오고 사람 손으로 쌓은 듯한 작은 돌 축대도 찾았지요.
어느 한 때 어떤 이가 무엇 때문에 들었던 걸까요?
처음 보았다 하여 그 굴은 옥샘굴이 되었답니다.

고만고만한 능선길을 조금 내려 오른쪽으로 휘면서
내리막은 심한 경사입니다.
눈이라도 있거나 비라도 내린다면 고생 진창하겠다는 곳이
바로 이 길이겠습니다.
어느 듯 목장 쪽으로 내려서고
마루금을 따라 철조망이 처져 있는 곳에 이르렀지요.
오른쪽으로는 길이 없어 왼편 밭을 밟고 내려섭니다.
목초지를 지나 잡목길을 잠시,
아이들이 소리칩니다.
"괘방령이다!"
김천의 수영장을 오가며 지나던 바로 그 길입니다,
언젠가 백두대간길을 따라 예 오자던.
직지사로 혹은 아랫재방령으로 아니면 영축사로 빠졌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나
바랬던 길대로 오니 그 기쁨 역시 큽니다.

지난 봄, 눈길과 야간산행의 거친 산오름의 경험으로
이쯤은 일도 아니라는 애들입니다.
무슨 동네 뒷산 다녀온 듯들 하였지요.
제가 체력이 많이 떨어져있다고 젊은 할아버지가 걱정 많았는데
저마저도 학교 뒤편 저수지 다녀온 듯 가뿐하였으니까요.
늘처럼 하늘이 도왔겠습니다.
하늘도 아주 조금 축축해 줘 산타기 딱 좋은 날씨였더이다.
나현이가 그러데요,
첨 들어온 애들이 큰 산을 한번만 탔는데도 잘 와서 고마웠다고.
"힘들어도 무사히 와서 다행이고
어린 애들이 잘 따라와 고마웠어요."
령입니다.
동희는 (지난 봄) 큰 산을 가봐서 그리 힘들지 않았다지요.
"다리가 아파도 재밌었어요. 흙썰매도 재밌었어요."
신기랑 종훈이 정민이가 입을 모았습니다.
마지막쯤은 내리막은 엉덩이를 붙이고 와야했으니까요.
"힘들어도 잘 내려와서 좋았고,
10시간 예상한 길인데 8시간만에 와서 좋았어요."
류옥하다네요.
"함께 잘 내려와서 좋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체력단련이 필요하겠어요."
처졌던 아이들은 체력문제라기보다
'근성'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었다는 정운오아빠였지요.
젊은 할아버지는 오늘도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고마워합니다.
"애들이 힘이 넘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자, 그럼 이번 산오름은 우리에게 어떤 보물을 주었을까요?"
이 산오름을 통해 우리는 또 무엇을 배웠던 걸까요?
"배려하는 마음요!"
체력을 길러주었다고도 하고 우정을 나누어주었으며 재미도 주었다 합니다.
동굴, 신기한 생물들, 숱한 나물과 꽃들, 둥글레 뿌리를 먹어본 경험...
"스스로공부(개인연구)에도 도움이 컸어요."
"성취감요!"
그리고,
사람을 더 이해하는 자리가 되었더이다.

하늘이 고맙고
함께한 어른들이 고맙고
그리고 아이들이 고마웠지요.
우리 생의 아름다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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