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만 늘 보고 살아도 크게 죄 짓지 않고 살겠구나...


새벽 1시가 넘도록 목공실에 있었다.

민수샘이 작업장에서 남은 나무라고 여럿 실어 와서 부려놓고 간

켠 느티나무 판이 여럿 있다.

다식 접시를 하나 만들리라 했네.

좋은 음향기기로 소리를 나눠주고,

또 물꼬에도 진공관을 하나 만들어주겠다던 선배 있어

뭐라도 답례를 해야지 하고.

조각칼로 두 겹까지 깎아냈다.

나무망치가 없어 각목으로 조각칼을 두어 시간 쳤더니

손이 벌개지다 물집까지 생겼다.

파는 기본 작업을 끝낸 뒤 직소로 전체 모양을 따냈고,

나머지 다듬는 건 기계로 다른 날 하리라 일단 일 접다.


아침, 수행방으로 간밤에 묵었던 이도 들어와 같이 해건지기를 하다.

사택에서 손님 하나 묵었네.

들어오기로 한 논두렁 한 분은 다른 날로 방문을 잡았다.

태어나 처음 그런 시간을 가져보았다던 방문자는

땀을 어찌나 흘렸던지 한여름처럼 옷이 젖었더라.

이리 하고 사시니 그토록 강하실 수밖에 없겠네요,

자기가 본 내 또래 사람들 가운데 가장 건강해 뵈는 까닭을 이제야 알겠노라 했다.

그저 마음이나 좀 다스려보자고 하는 일이지.

그렇다고 가지런해지는 마음이겠냐 마는.


해우소에 하려던 숙제를 그예 했다.

선반이나 탁자, 혹은 의자 하나 만들리라,

그러면 겨울에 두툼한 외투도 벗어두고 전화기를 놓고 들어도 갈 수 있게,

샘들이 가끔 아쉬움을 토로 했던 바.

그걸 굳이 옷걸이나 탁자로만 생각했다가

쉬운 방법을 찾았네.

들어가면 마주 보이는 벽면에 번데기라 불리는 걸 박고

거기 살구나무 고사목을 다듬어 굵은 걸이를 붙였다.

샌딩기를 사용하는 일이 늘 두렵더니

날을 떼내고 손사포를 겹쳐 날로 쓰니 회전이야 달라지지 않아도 위험도는 낮춰진.

그래서 수월하게 겉을 털어내고 옷걸이를 붙였네.

남자 칸에 두 개, 여자 칸에 세 개.

그리고 작은 선반을 양 쪽 칸에 하나씩 역시 그 벽에 걸다.

이리저리 방법을 찾으면 그리 쉬운 길들이 있나니.


아이들이 지은 흙집 지붕을 양철로 툭 덮어둔 개집이 아쉽다가

새로 ‘호텔 캘리포니아’를 지어주며 오래 같이 산 진돗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은 했지만

장순이가 제 살던 그 흙집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기

내내 새로 지붕을 덮어줘야지 했다.

6각 지붕으로 뼈대는 만들어놓고 한참을 손이 가지 못하고 있었다,

바쁜 일이 아니니.

방부목 조각으로 너와집처럼 올리려 하니 일이 쉽지 않아서도 밀리더니

내내 그 생각으로만 골몰하니 외려 방법이 캄캄하다

오늘은 다른 생각을 하였네.

뜯어냈던 교실 마룻바닥을 여기도 쓰기로 한 것.

거개 꼭대기까지 다 올라간 참인데,

저녁에 약속 하나 있어 멈춤.


운동장 저 구석자리에서 뱀 하나 만났다.

어, 보던 것들과 다른.

아니나 다를까 서로 놀라놓고, 그가 도망은 안 가는 거다.

고개 빳빳이 들고 혀를 날름거린다. 독사다, 독사!

"삼촌, 삼촌, 삼촌!"

어쩔 줄 몰라하며 학교아저씨를 찾았다.

그러는 사이 나는 그만 그의 불안을 보았다, 봐 버렸다.

꼬리를 바들바들 떨고 있더라.(실제 무서움증인 줄이야 어이 알겠냐만)

흔히 강성인 우리들의 자세는 때로 그 뒤에 심장 벌렁대는 겁이 숨어 있나니.

어쩔 줄 몰라 노려만 보고 있는 나 대신

장순이가 날렵한 호랑이가 먹이를 채듯 그를 공격하였네.


낮밥 밥상을 방문했던 이가 마련했다.

여기 이런 거 귀할 거라며 라면을 들고 온 그였다.

학교아저씨가 파다 준 고구마를 채로 쳐서 데쳐내 라면에 고명으로 올렸더라.

찾아온 이가 차려준 밥상에 고마웠네.

그에 대한 인사로 저녁 밥상에는 달골 뒤쪽 산에서 따온 버섯들로 전골을 차렸다.


저녁, 드디어 지하수 때문에 사람이 왔다.

지하수 사장이 현장소장을 보냈다.

어찌하야 그리 된 건지 설명을 듣고

어떻게 보강 공사를 할 수 있는지 또한 얘기를 들었다.

상황을 알기까지, 사람이 오기까지 수년이 걸렸네.

다음은 또 다음 걸음으로.

일이란 게 다 돼봐야 다 되는 줄 아는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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