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20.달날. 흐리다 비

조회 수 670 추천 수 0 2016.07.16 11:57:37


장마 시작는가.

17:50 빗방울 떨어졌다.

남아있던 마늘을 캐서 들인 뒤였다.

시 잔치에 다녀가신 어른들께 인사 넣다.

우리 생의 어느 한 때 시를 들으며 같이 산마을에서 보낸 찬란한 저녁답에 대한 감사.


“그대의 연애는 무사하고?”

“정처가 없네요. 사람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고...”

“물꼬에 데려와 봐야지!”

샘들이 사람을 만나면 물꼬에 데려온다,

계자에 같이 혹은 빈들모임에 아니면 주말에라도.

샘들로서는 인사를 시키러 온다는 의미가 크겠지만,

물꼬에서 지내는 시간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더라.

일상을 함께해 봐야지, 몸을 써서 움직이는 걸 봐야지,

일을 잘하든 못하든 노동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스물네 시간 같이 움직이며 전면적으로 만나게 되니까,

더구나 그것이 계자라는 보다 큰 범위의 나이대와 여럿 속에서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그를 더 보게 되는, 적나라하게!

“서울에서는 그런 공간이 쉽지 않으니까...”

일종의 선을 보는 것이겠다.

남녀 데이트란 것도 산업혁명 이후 생겼다지.

그 전엔 이도령의 춘향네 방문처럼 집을 방문하여 가족 안에서 만났다.

그런데 도시 노동자가 생기고, 불러서 집에서 데이트를 하기엔 비좁은 방 한 칸,

그래서 그들이 만날 유흥 장소가 생기고, 돈을 지불하고...

베스 L. 베일리의 <데이트의 탄생>을 보면,

부제가 ‘자본주의적 연애제도’이다,

데이트라는 낱말이 처음 쓰일 무렵에는 매매춘의 직접적·경제적 교환을 의미했다 한다.

매춘과 마찬가지로, 데이트는 돈을 매개로 여성과의 교제를 추구한다는.

‘우리 시대의 연애’라는 에필로그가 강하게 남았다,

데이트 시스템으로 나타난 연애의 경제학 메타포 시대는 끝났다던.

‘내가 주목하는 것은 성보다는 혁명이다. 20세기 초에 연애가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경제 메타포가 가정과 가족의 메타포를 대체했듯이, 1960년대에는 혁명(물론 성의 혁명)의 메타포가 경제를 대신했다.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혁명은 침실에서나 거리에서 전면에 등장했다. 변화의 기운이 감돌았고 권력투쟁의 맨얼굴이 드러났다.’(297쪽)

‘남성과 여성의 투쟁, 성과 젠더의 의미에 대한 투쟁은 경제·가정·개인·정치 등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경계의 구분 없이 수많은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그 결과, 남성과 여성은 더 많은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다. 자유의 축복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시스템에는 착취의 가능성이 적지 않으며, 혁명으로 모든 이가 진정한 자유를 얻었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자유를 얻은 것은 확실하다. 물론 그에 따르는 위험, 책임, 쾌락 문제도 아울러 짊어져야 한다.’(297, 298쪽)

뭐 그렇다고.


좀 쉬었다가 수업 준비, 치유수업.

두어 주 시 잔치 준비한다고 좀 소홀도 했을.

이번 학기 바깥수업도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사이사이 물꼬 일로 빠졌던 일정까지 끼우자면 아무래도 7월까지는 할.

어디서도 해결점을 찾지 못했던 아이는 겨우 좀 거리가 짧아지는 듯하더니

어느새 또 저 멀리 있기 자주이다.

그런 순간이면 잘 빚고 있던 항아리를 깬 것처럼,

오래 고민하고 쓰다 마지막에 날려버린 글처럼,

탁 맥이 빠져버린다.

그럴 때면 영락없이 시시퍼스의 바위를 생각한다.

지옥에서 제우스를 속인 죄로 산 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코린트 왕,

정상에 이르면 바위를 굴러떨어지고 그는 끊임없이 그렇게 바위를 밀어올린다.

많은 선생들이 교육에 대해 자주 견주던,

아무리 올려도 또 굴러 내려오고 마는 바위를

그래도 다시 밀어올리고 올리는 일이 교육이라던,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지만

거기서 다시 일어나 허무와 절망과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일.

어디 교육만이 그렇겠는가.

사는 일 또한 그러하리.

아희야, 사는 일이 그런 거란다.

우리 태어나 그 삶을 ‘살아가는’ 거란다.

사람의 삶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그러했을 거라.

자, 또 굴려보자, 저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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