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여는 첫날, 찬란한 아침을 바람이 밀고 왔다.

다시 살아 이 아침을 맞는구나,

아름다운 생이여, 어여 오시라.

아가들을 깨우듯 가만가만 샘들을 불러내

‘아침을 여는 모임’, 시 한 편과 함께하다.


학교로 내려가기 전 달골에서 작업을 이어가다.

바람이 불어주었다.

볕도 강하지 않았다.

명상정원 '아침뜨樂' 옴자의 일부에 회양목 둘러친 안쪽으로 풀을 뽑아내고 잔디 깔기.

이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거기 손을 보태는 것이 어떤 뜻이 있는가에 같이 뿌듯해하며.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졌고,

하여 아침 밥상 앞부터 앉은 뒤 수행방으로 들어갔다.

꾹꾹 눌러 담는 곡식자루처럼 절하였네.


마지막 노동. 정말 가는 마지막까지 일이었고나.

운동장 가 소도의 풀을 뽑고 흙 고르기, 한편에선 모래사장 풀 뽑기.

결국 끝냈다!

자잘하게 남은 일은 또 남은 이들이 할 것이라.


갈무리글을 쓴 뒤에도

가기가 아쉬워 돌아보고 돌아보는, 쉬 일어서지 못하는 걸음들이었다.

여행 같은 이틀이었다.

아름다운 여행이었노니.

바닷가 휴양지였고 거대한 유적지 탐사였고 산오름이었고 꽃구경이었다.

거친 삽질과 호미질이 함께한 일이 그토록 유쾌한 여행일 수 있었다니.

여행이란 결국 어떤 마음으로 누구랑 하느냐가 관건.

이네들과 간 여행이어 기뻤다!

평화로웠고, 행복했다.

‘가난했지만 우린 충분히 유쾌한 날들이었고 넉넉했다. 필요한 게 그리 없었으니까.

하기야 가난한 사람들이 그런 자족이라도 없었다면 불행했겠지.

다행히 우린 우리 기준으로 잘 살았다.’

아이가 제도학교를 가지 않고 지냈던 9학년까지의 기록 일부를 옮겨보노니.


거기에 더하여!

함께 회비를 모아 지내는 동안의 먹을거리를 사들여온 예비교사들이

떠나며 봉투를 내밀었다.

영수증까지 담긴, 남은 동전도 짤랑거리는 투명비닐봉투였다.

“투명하게 하고자...”

마지막까지 실컷 웃게 만들어준 그들이었네.

그런데, 밤에 하루를 정리하며 열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얼핏 보아서 얼마 되지 않았더랬는데.

해서 그저 회비가 좀 남았구나 정도로 여겼던.

근데 아주 많았다.

학교살림을 보태고자하는 의도성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던.

먼저 다녀갔던 이들도 그러했던.

두루 고마운!


사랑은 증오가 되기도 쉽나니.

‘We hate him so much, beeause we loved him so much;

우리는 그를 정말 증오한다. 왜냐하면 그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이다.’

FC의 유스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한 에버턴 혈통 웨인 루니는

2002년 열여섯 살에 에버턴 프로무대에 데뷔해 파란색 유니폼을 입지만

2004년 여름 맨유로 이적하게 된다.

여전히 루니는 에버턴의 경기를 빠짐없이 챙겨보는 에버턴의 팬이고,

지금도 에버턴 원정경기에서 골 세러머니를 하지 않음으로써

원 소속팀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지만,

그가 파란색이 아닌 잉글랜드 최고 클럽의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에버턴의 홈구장으로 처음 원정을 왔을 때 에버턴 팬들은 소리쳤다.

"Once a blue, now a red. In our hearts you are dead.;

한 때는 블루였으나 지금은 레드. 우리 마음속에서 당신은 죽은 사람이다."

일찍이, 5년간 바르샤에서 뛰며 두 차례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루이스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원정 팀으로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

바르셀로나 팬들이 내걸었던 구호도 그러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증오한다.’

떠나간 사랑 때문에 벌어진 몇 범죄 소식을 들으며

비뚤어진 사랑이라고 하기 이전 그 마음이 어땠을까 헤아려보게 되더라.

나이는 이렇게도 오노니.

애정과 애증은 한 동전이라.

기다리는 소식을 영영 받지 못할 때 우리는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 듯.

당연히, 기다리는 소식은 애정이고 오지 않는 소식에 대한 절망은 애증이라.

사람들과 여행을 가거나 가족들과 있거나 벗들과 함께이거나

그 모든 채워진 시간 사이 비로소 혼자일 때 겨우 내 생각하는구나 싶으면,

그런 자리나 채우는 게 내 존재이구나 싶으면 쓸쓸할 수도 있겠다,

나 아닌 다른 이가 되어도 되는 그런 빈자리나 채운다 싶으면.

흔히 슬픔을 나누는 게 가장 가까운 사이인 줄 알지만

오히려 가장 기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관계야말로 정녕 가까운 관계 아닌가 싶은.

차 떼고 포 떼고서야 겨우 생각하는 그런 사랑은 버리기엔 아쉬운 물건과 다르지 않은 듯.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그런 시 구절이 있었지.

시도 때도 없이 스며들고 배나오는 게 사랑 아니던가.

그 사랑이 닿지 못할 때 애증이 되어버리는,

그래서 생의 비애가 되는...

하여 망각의 강 레테는 얼마나 고마우냐.

시간에 기댈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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