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왔다. 20년 전 몇 해 물꼬에서 같이 일한 동료이자 벗.

지난달 중순, 20년 세월 건너 다녀갔더랬다, 소식이야 진즉 있었지만.

잠시 아랫마을 갔다 바삐 운동장에 들어서니 빗속에서 아직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었다.

왔고나!

20년 전이 어제 같아 놀랐던 지난달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즐거웠다.

누구라도 유쾌하게 기억했을 그이다.

같이 나누는 이야기들이 즐거웠고,

같이 일해서도 즐거웠고,

벗으로도 동료로서도 즐거웠던 옛적이었다.

그리고 세월 건너 서로에게 있었을 많은 일들,

그것도 어린 날이 아니라 생에서 뭔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의 20년,

어디 작은 세월인가,

그런데도 여전히 그리 즐거울 수 있더라니.

무엇보다 그냥 같이 놀기 좋다가 아니라 일상을 함께하고 나누던 사람으로도 좋았던.

그때 우리들은 ‘연남리’라는 도시공동체를 막 시작하고 있었고,

그 공간 아니어도 물꼬의 서울공간에서 거의 모두가 많은 날을 같이 먹고 같이 잤더랬다.

그래서 더 굳건했던 관계였으리.

낼모레 물꼬에서 할 작업들을 위해 치수도 재고 재료들을 확인 한다 왔다.


서현샘 소식 들어오다.

‘지난번에 저희 얘기했던 동영상 촬영요~’

14일 정도 어떠냐, 아니면 다른 언제가 좋으냐,

자꾸 늦어지는 것 같아 죄송하다 했다.

물꼬 투어를 담은, 그러니까 물꼬 안내 동영상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고맙다.

일도 일이지만, 그립다.

비어 있던 5월 한 주말도 그렇게 채워졌다.

첫 주는 가정학습주간에 꾸리는 범버꾸살이 일부,

둘째 주는 영상 건,

셋째 주는 섬모임,

넷째 주는 한 지역축제의 메인행사 진행.

동생한테 촬영을 부탁해 같이 온단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품앗이샘들도 그의 동생 혹은 형, 그러다 부모님, 벗, 사촌, 이웃과 물꼬에 동행한다.

그렇게 넓혀가는 물꼬의 관계들이다.

우리가 자유학교 교도들의 교세 확장이라 농하는.


품앗이샘 하나, 함께하는 모임에 참가비를 보내왔다.

대학생에다 혼자 살림을 꾸려가는 스무 두엇 살.

누구라 말하면 쑥스러워라도 할 거나 싶어 이름은 묻어두기로.

형편대로 하는 모임값이거늘 꼭 공지한 대로 챙겨 보내온다, 그것도 자주인 걸.

자주 오가며 물꼬 형편 빤히 알게 되니 더 그렇겠다.

그렇다고 그가 넉넉한가? 아니다. 그의 꼭 넉넉지만도 않은 살림을 내가 또 아나니.

- 번번이 고맙구나.

- 드려야할 거 드린 건데, 제가 훨씬 감사해요, 항상

그 나이에 이런 염치와 도리와 배려와 헤아림이라니.

물꼬에서 만난 이런 ‘어른’들이 그나마 나를 어른 흉내라도 내게 해주었나니.


지옥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지옥 문 앞이었다.

생에 그런 일은 또 얼마나 숱한가.

며칠 전 제법 길었던 터널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잠시,

그 터널에서 만났던 어둠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의 공포 속에 여전히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를 안다면 그리 하면 될 것이다.

길이 없다면 모를까, 길을 아는데,

그게 어렵다고 다시 돌아서서 지옥으로 들어가는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야 없잖겠는가.

나는 오늘 섬 하나를 떠났고,

그리고, 머잖아 점봉산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 꽃 천지로 가서 끝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를 단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천상의 화원에서 물꼬의 인연들을 추억하고 위로 받으며

지옥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또 뚜벅뚜벅 걸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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