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6.쇠날. 맑음

조회 수 780 추천 수 0 2016.05.18 10:48:13


아침저녁 7~8도, 낮에는 26~27도.

요새 물꼬 닭은 알을 품고 있다.

닭장 안에는 새들도 무시로 드나들고.

날은 그렇게 성큼성큼 늦봄을 걸어간다.

학교아저씨는 마을의 키큰엄마가 나눠주신 호박씨앗을 심었다.

어제 식구들은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 옴자의 일부 회양목 둘러친 자리에

못 다 심었던 잔디를 놓고 내려왔고,

오늘은 올라 물을 주었네.


아침, 수행을 하기 전 마당에 나가 풀을 뽑다.

금룡샘이 보내준 커다란 화분에 구피아 모종도 옮겨 심고.

간밤에 이곳에서 묵은 아이는 곁에서 조잘대고, 일을 거들기도 하고.

여기는 5월 1일부터 8일까지 ‘범버꾸살이’ 중.

어제도 사람들이 드나나나. 오늘도.


마을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연지가 진로문제로 어머니와 상담을 왔다.

“교장 선생님 부군이 대학교수라고 어디서 듣기도 해서...”

작년부터는 이 작은 마을 안에서

초등 초년의 ADHD를, 청년의 자폐와 건강장애 문제로 교류가 있더니

이제 진학상담까지.

대학원진학을 앞두고 어떤 선택이 최선일지

기락샘이 와서 같이 도움말을 보탰다.

기락샘은 들어오자마자 내일 새벽같이 집안어르신 한 분 장례식에 가야.

나? 물꼬에 있는. ‘범버꾸살이’ 중이라.

물꼬 사는 일은 가끔 이리 사람 노릇 못하게 되는.


무량이 가다.

형 무겸과 동생 소연이가 어제 엄마랑 같이들 왔으나

먼저 신청했던 무량이만 잘 방이 있었고,

댁이 가까우니 미리 신청 못했던 다른 식구들은 돌아갔다가 오늘 무량이를 데리러.

- 이거!

- 와!

어제 네잎 토끼풀을 찾아주었더니 무겸 저도 찾아 달랬지.

오늘 아침 마당에서 네 잎이 부르길래 지나다 멈췄네.

외할아버지 같이 오셨다.

대여섯 해 전 막내 동생이 태어나던 무렵

달포를 물꼬에서 보낸 무량이와 무겸이다.

그때 계자를 들어올 윤호 건호 성빈이도 먼저들 와서 보내거나

계자와 계자 사이를 보내고 내리 다음 계자까지 하기도 했던.

어느새 중학생들도 되고.

그때 외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부려주셨더랬다.

다시 뵈어 기뻤다.

그런데, 다섯 살 소연이가 가기 싫다 떼썼다.

금세 다시 오기로 하고야 떠났네.

6월 빈들모임에서 보겄다.


윤실샘 오다. 일곱 살 현준이와 함께. 뱃속 아이도.

그의 아비 영진샘도 물꼬의 품앗이였댔고나.

- 세상에! 세상에 없던 게 저리 생겨 돌아다니고 있네...

가마솥방 식탁을 빙글빙글 도는 현준이가 마냥 신기하였네.

대학 때 시작해 교사 발령을 받고도

내가 연구년으로 7개 나라를 떠도느라 비웠던 3년의 시간

물꼬를 지켜주었던 이들 가운데 하나.

러시아에서 돌아오던 비행기를 공항까지 나와 기다려주었던 그니,

교사가 되어서는 논두렁으로 또 한 몫.

하지만 혼례 올리고 여섯 해 지나 아이를 낳고 그 아이 일곱 살 되기까지

간간이 생각이야 하지만 걸음 한번이 어려웠던.

이제 아이가 계자에 참가할 나이가 된!

그리하여 왔다.


희중샘도 들어오다, 장을 잔뜩 봐서.

사흘 머물며 하루는 민주지산을 오르겠다 했다.

물꼬 11년차에 접어들던가.

첫 만나던 그해여름 첫 계자에 손 보태고는 내리 세 계자를 한 이후

대부분의 여름과 겨울을 예서 보냈고,

학기 중에도 빈들모임이며 여러 일정에 동행,

하여 실제 질감으로는 물꼬 20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아, 고마울 일.

서로 교차시기가 없던 윤실샘과 희중샘이랑 물꼬의 시간을 엮기.

그리고 지금 같이 앉아있다!


밤, 별이 쏟아졌다. 여름밤하늘 같은. 미리내가 보일 날도 가까울.

달골의 하늘은 더하다.

마당의 밤의 꽃밭도 별이 앉아 훤했다.

언젠가 단 한 사람을 위한 헌정처럼 꽃밭을 만든 적이 있다.

그러나 오가며 그는 그 꽃밭을 본 적이 없었더랬지.

비껴가는 일들이여.

분명한 건 이러거나 저러거나 우리는 시간을 지나갈지라.

(시간이 우리를 지나가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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