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8.해날. 맑음

조회 수 770 추천 수 0 2016.05.18 10:53:17


1일부터 오늘까지 하겠다던 ‘범버꾸살이’.

마지막 날은 어른들만 남아 종일 일이었네.


서둘러 아침 밥상을 물리고 다시 교문 앞에 모이다.

어제 오후부터 지난 태풍급 바람에 종잇장처럼 날린 현판을 새로 세워 올리기.

더불어 넘어진 게시판도 세우기.

정오에 일터 교대 시간이라 10시에는 떠나야 했던 희중샘,

하지만 같이 힘을 써야만 올릴 수 있는 일을 두고 가지 못하고

닿아야할 시간에야 여기를 떠났네.

맨 꼭대기에 서각한 현판을 붙인 박스형 긴 나무통을 올리는 작업.

높이도 높이였고 무게도 무게여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중간 높이에 비계처럼 올라설 임시 단을 만들었어도

다른 보조물이 있지 않으면 일이 될 수 없었던.

사다리 말고도 우리는 희중샘네 봉고차까지 현판 아래에 끌어다 놓고 올라섰다.

높은 곳에서 나무박스가 주는 무게와 낙하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리고 임시 단이 주는 불안으로 쉽지 않았던,

한 사람도 빠질 수 없었던.

‘밥도 못 멕여보냈네. 그대 없었음 그걸 어떻게 그 꼭대기까지 올렸으려나.’

그런데도 가서까지 두고 간 일을 마저 하고 가야지 않았었나 돌아봐준 우리 희중샘.

‘시작한 일 마무리 짓고 돌아왔어도 하는 아쉬움 남습니다.’

헌데도 모처럼 푹 쉬었다 갔다는.

그런 거다, 쉰다는 건 꼭 눕고 먹고 마시고 노닥거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모여서 같이 일하고 같이 쉬고 같이 먹고...

 좋더라! 요새는 그런 순간이 참말 좋으이.

 나 역시 마음이 푹 쉰, 그리고 즐거운 여행길(사는 곳이 여행지라)이었던.

 윤실샘네랑 물꼬의 긴 시간을 공유해서도 기쁘더라,

 앞 세대와 뒷 세대가 그리 시간을 이어가니.’

그나저나 어디 다친 데는 없으려나.

나만해도 장갑을 꼈는데도 긁히고 까인 자국들 여기저기인데.

미안하고 고맙고 든든한.


아리샘은 밤에야 떠났네,

나서기에 길이 좀 막히겠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일을 두고 가지 못해,

손 하나 아쉬운 게 다 보이니.

현판 지주대에 보강재를 대는 동안

소사아저씨는 다시 세운 게시판 바닥부분을 콘크리트로 미장.

그러지 않으면 썩어버리니까.

그런데, 본관 건물에 수직 각도였으면 좋았겠기

아직 콘크리트 마르기 전이라고 중망치로 한참을 두들겨 각을 맞추다.

그리고 현판 쪽은 저녁이 마당에 내릴 녘에야 일을 접다.

“자, 이제 그만들하고 정리합시다!”

그런데, 일하다 보면 하던 그 일, 못 하나 더 박을 일이 있지.

“선생님!”

밥상을 마련하느라 먼저 들어와 있던 가마솥방으로 아리샘 들어서는데,

그 마지막 작업에서 위로부터 떨어진 나무에 얼굴이 좀 긁혔고나.

콧등에 멍, 이마에 혹을 얻다.

“아이고...”

속상해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이러저러 사람들을 두루 고생 시키나 싶어,

밥 먹다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하지만, 얼마나 다행하냐.

오늘 허공에서 열두 번도 더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 무사히 건너고 마지막 순간 조심하라는 경고장이었을세.

선한 일에 함께하는 거대한 은덕이려니.

다쳤으나 가벼워 고맙고 감사한.


물꼬, 그 대단한 일을 한다고 늘 이리 사람들 고생시킨다.

학교아저씨 언제나 곁에서 종종거리고,

희중샘 와서 제 때 떠나지도 못하고 매달리고,

아리샘도 결국 저녁까지 있다 그런 변을.

원석샘도 내일까지 사흘을 내리 매달릴.

선한 일에 동참한다는 게 그만 아리샘 다치게 했다 싶어 미안할 원석샘도 눈물 찔끔거리고.

그런데 아리샘은 되려 날 위로하네.

“선생님 그런 생각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데, 다들 좋아서 하는 일인데, 선생님이 계시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 선생님은 늘 전면적인 줄 알고 있었지만 정말 순간순간 전면적이야.

   아까만 해도...

그러니까 긴 박스 형태로 만든 나무에 서각을 한 현판 6개를 붙인 것을 올릴 때

“높은 쪽은 내가 혼자 해볼게, 모두 아래쪽에 붙어줘.”

외쳤고, 그리고 그리했다. 온 에너지로. 그것을 두고 하는 말.

옛적에도 그는 나를 그리 관찰했고, 잘 읽었고, 그것을 말해주었다. 여전했다.

- 사람들이 선생님 어려워하잖아. 밥도 같이 못 먹었다 하고.

   그런데, 난 어려워하지 않았잖아.

   사실 ‘말’ 몇 마디 잘해주면 되는데,

선생님을 좀 이해해주면 되는데, 그런 말이었던 걸까...

찬찬히 마음 살피며 설명해주면 설득이 쉽다는?

아, 그랬구나, 그렇구나.


- 이거 선생님이시죠?

- 어떻게 알아봤어?

- 등도 말을 하니까...

달골 햇발동 거실 벽면에 있는 안나푸르나가 담긴 액자를

사람들은 그저 산악 사진 하나로 이해한다.

사랑하는 벗이 찍어 액자를 만들어준 것인데,

거기 깨알처럼 내가 정상을 향해 무언가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 등도 말을 한다.

연극무대에서 특히 등을 돌려 읊는 대사가 훨씬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그는 잊었던 많은 것을 일깨우며 물꼬로 들어와 있다.

고맙다.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은 관계에서 얼마나 자주 절대적이던가.

빛나는 시간들이 우리를 밀어왔고, 또 밀고 간다.

하여 계자가 끝난 뒤엔 늘 아이들에게

애썼다는 찬사와 함께 우리들이 같이 보낸 시간이 그리 빛나길 바란다 전한다.

아름다운 시간이 내일을 또 밀고가지.

더하여 ‘같이’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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