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년 2017학년도(2017.3.1~2018.2.28)는 안식년이라고 알렸다.

짧지 않은 휴식동안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을 만드는 일에나 집중할까 한다,

명분은 그러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연구년 1년으로 식물학자 린네의 도시 웁살라를 가서

미셀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썼던 웁살라대학 카롤리나 레디비바 도서관에서,

구경을 가거나 일을 하거나 책을 읽기 위해 들어갔던 그곳,

이젠 글을 쓰고 있겠다 했다.

그리하여 1년을 비우는 동안 어른의 학교, 아이들의 학교로서의 교육일정들은 쉬고,

학교아저씨가 홀로 있는 학교를 지키는 가운데

품앗이샘 하나쯤, 혹은 여럿 돌아가며 지내고,

가까이서 장순샘이, 멀리는 논두렁 주훈샘에서부터 품앗이샘들이 돌아가며 드나들어

비우는 일 없이 관리를 하자고들 했다.


시간이 지나며...

물가도 만만찮고 싱싱한 먹을거리들 풍족치도 않는,

겨울해가 채 몇 시간 되지 않는 북국은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누가 있는 바르셀로나에 밀려

값싼 와인이 널려있고 해산물 농산물이 흔한 그곳에서 보내리라

계획에 수정이 가해지기 시작했더랬다.


그런데,

2017학년도 안식년(安息年)은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에서 보내기로!

오늘 최종 거취가 정리되었다.

그리고, 2017학년도 물꼬 안식년을 공지했을 때

옥샘이 한국에 안 계실 계획인가 보다, 더러 짐작도 하셨다는데,

한국에 있어도 물꼬가 쉬어가는 해로는 변함이 없다.

덧붙여,

연구년에 이어 방콕의 유네스코에서 2년을 보내기로 한 일도 한국에서 보내기로 한다.

그러니까 내리 세 해를 한국을 떠나 있을 일정이 한국에 있는 세 해가 될.

하나하나 구석구석 손으로 일구겠다던 ‘아침뜨樂’은

그렇게 집중도를 높이게 되었다.

따순 손길 예제 닿은 물고기 한 마리 하늘 향해 오르는 모양새의 ‘아침뜨樂’에서,

어변성룡(魚變成龍); 물고기 변하여 용이 됨이라,

누구라도 이곳에서 그런 생기 안으시라!


내리 밀고 온 일정들에 비로 느긋해지자 좀 앓았고, 몸도 부었다.

손이 퉁퉁 부어 손가락이 두 배는 되겠더라.

결국 저녁 수업을 못하기까지.

‘음... 비 오고 힘 하나도 없는, 열흘 꼬박 밤낮으로 일정을 밀고 왔더니.

종일 달골에서 꼼짝 않는.

라면도 하나 안 갖다놨네, 바깥 수업도 못 가지 싶은.’

이웃 벗에게 문자 넣으니, ‘있다 들릴까요?’ 했다.

‘이런 날은 그대도 꼼짝 말고 쉬시라, 만사를 잊고.’

‘오늘은 쉬고 싶었는데 너무 급하다고 해서 좀 전까지 일하고 들어왔네요.’

산마을의 벗들은 그렇게 비가 와서 쉬었거나 비가 와서 못 쉬었거나.


천 근의 배도 들어 올리던 네 소식이

오지 않을 땐 집 채 열두 채로 머리 위에 있는 밤,

‘밤’이 그런 이미지더라,

시 한 편 읽는다.



오후에 피다


너를 기다리는 이 시간

한 아이가 태어나고 한 남자가 임종을 맞고

한 여자가 결혼식을 하고 그러고도 시간은 남아

너는 오지 않고

꽃은 피지 않고

모래시계를 뒤집어놓고 나는 다시 기다리기 시작하고

시간은 힐끗거리며 지나가고

손가락 사이로 새는 모래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소란스런 시간

찻잔 든 손들은 바삐 오르내리며 의뭉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그러고도 시간은 남아

생애가 저무는 더딘 오후에

탁자 위 소국 한 송이

혼자서 핀다


;권지숙의 <오래 들여다본다>(2010)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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