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16.달날. 갬

조회 수 751 추천 수 0 2016.06.01 12:02:11


반달도 이 산골서는 보름달처럼 훤한!


오전까지 온다던 비이더니 이른 아침 갰고 해는 평소처럼 떴다.

물기가 좀 날아간 대지이기를 기다렸다

아침 해건지기 뒤 풀의 나라도 또 들어갔지.

달골 마당 수로 곁의 풀들을 뽑다.

아, 또 더덕!

더덕향 가득한데 흔적은 없다.

풀 섶에서 겨우 고개 내민 어린잎을 뎅겅 같이 뽑았나 본데,

그래도 또 일어설 줄을 알기에 향 한껏 즐기고 다시 풀들을 뽑아낸다.

다만 올해는 그 예쁜 네 잎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아쉬움...

풀 걷어내진 자리에 마을에서 가져올라온 돌나물을 놓기도 하고,

수로에 번져있던 돌나물을 끌어올려주기도 하고.

이웃 밭 경계 울타리에 오미자넝쿨 덮여 그 아래 수로 가 쪽은 그늘 짙어

다른 꽃 보기 쉽잖고 풀만 무성했는데,

그래도 돌나물 노란 꽃은 볼 수 있으리.


교문 현판 마지막 작업.

날수로 치면 나흘째인가.

- 이리 일하면 못 먹고 살아요.

일하는 업자로 가서 한다면 하루 만에 뚝딱해야 할 일.

지난 7일 오후부터 이틀을 희중샘 아리샘도 붙어 다섯이 시작한 일이었다.

원석샘이 남아 9일 오전까지 같이 일하다 갔고,

다시 달려온 원석샘이 이른 점심을 함께 먹고 현판 지주대에 올랐다.

아래서 재단을 해주거나 목재보호용 도료를 칠해서 올려주거나

때로 같이 올라가 이쪽 끝을 잡아주거나.

그런데 도료를 바로 칠한 터라

등산화를 신고 작업을 하는데도 바닥이 미끄러워 혼쭐이 났다.

‘천천히 천천히!’

어찌나 힘을 줬던지 온몸이 뻐근하였네.

땅거미 내리고 있었다.


- 좋다!

충분하다. 아니, 넘친다.

얼기설기 한 모양새도 마음에 든다.

그런 거친 풍경이 외려 좋더라.

멀리서 마음 쓴, 혹은 손을 보탰던 이들에게도

현판 마무리 되었노라 문자보냈다.

‘사진도 찍어 보내주시지.’

아쉬워하는 품앗이샘들의 문자.

그게 익숙지 않은 일이기도 하여서이지만,

늘 하는 생각, 역시 사진은 실제랑 다른 질감이라는 사실,

와서 봐야지, 6월 빈들모임에서들 보겠다.


스파게티와 와인으로 축하잔치가 있는 저녁밥상이었네.

바흐와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를 얘기하고,

흘러간 옛 노래와 동요를 이야기하거나 듣거나 서너 곡 부르기도.

서른하나에 요절한 병약하고 소심했던,

그리고 사랑을 떠나보내고 못 다한 사랑을 음악에 쏟았던 슈베르트의 음악은 여럿 들었다.

아름다운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음악을 그는 그리 담아 우리에게 전했으니.

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도 입에 올랐네.

가난한 아일랜드 청년의 고군분투기.

영화의 주요 사운드 테마로 쓰인 헨델의 하프시코드 조곡 D단조,

사라방드가 인상적이었던.

동성애자 인권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하비 밀크의 전기영화 <밀크>도.

성적 정체성이 있어서 ‘가장 공개적이었던 공직자’였던 그의 용기를 떠올리며

우리의 부끄러움들에 대해 이야기 하다.

특히 세월호 앞에 우리가 어떠했던가를.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우리 대부분이 겁쟁이였던 시간.

글렌 굴드의 연주 음반도 듣다.

바흐에 능통한 거장.

박과 박 사이를 마치 기계가 움직이듯 흐트러짐 없이 짚는,

그래서 글 읽기의 행간의 의미처럼 그렇게 박과 박 사이가 다가왔던 놀라운 연주!


- 선물입니다!

감탄스런 노트 한 권을 받다.

- 많이 쓰시니까...

지금은 문학적 글쓰기를 하지 않은지 오래.

써야겠다.

요 얼마동안 그는 그렇게 산골에 틀어 앉은 벗을 고무시켜주고 있다,

산골살이를 거들어도 주고.

또 이런 힘으로 날을 보태며 삶을 이어간다.


이제 6월 일정 혹은 작업들을 잡아본다...

시 잔치를 중심으로 앞은 그 준비에, 뒤는 계자 준비가 되리,

봄 학기 바깥수업들도 막바지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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