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꽃은 많이 피었습디까?

날씨는 어떠하였을꼬?

강물은 또 어떻던가요?

그래, 꽃구경은 잘 다녀왔는지.


뿌연 하늘이었다오, 여긴.

잠시 해가 말갛기도.

하지만 하루 전체로는 먼지 많았던 날.

일도 그러했네.

아침 해건지기로 연 하루,

주말이면 쉬어가는 수행이었으나

지난 섣달 초하루부터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절이오.

달골 올라 심었던 나무들을 돌보고

봄비답잖게 세찼던 비에 패인 뿌리들을 돌봐주기도 하고,

명상정원에 심고 남아 가식했던 나무들 허술하게 묻혀있어 세워도 주고,

널린 것들 청소도 하고 가장자리 마른풀들도 걷어내고.

“어!”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서야 비. 몇 방울이지만.

이렇게 또 하늘 고마운 시간이오.


고마웠노니,

꽃구경 가자고 그저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 표를 사고 준비해준 그대에게.

무릉입디까, 거기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꽃구경을 갔어도 좋았겠지만 먼지 뒤집어쓰고 일하는 맛도, 같이 하는, 좋았다오.

널린 것들을 정리하는 마음도 개운하고.

다녀와 밥솥을 걸고 찬을 마련하며도 좋았으이.

아구 힘들어라, 모두 한 마디씩 뱉으며 자연스레 곡주를 꺼내왔데.

“애쓰셨습니다!”

그래, 그랬네요.


밤, 모둠방에다 펼쳐놓은 바느질감 앞으로 가서 앉았으니

식구들이 건너와 곁에 앉아 두런거렸지.

사람 사는 게 이런 재미리 싶더이다.

학교아저씨도 한 잔 걸치신 결에 말씀 많아져

옛일을 더듬고는 하셨네요.

사람 사는 일 참 별 게 없지.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고 사는 것.


달골 들머리 류옥하다 벚꽃 생각나는지?

십년이 다 돼 가지요, 심은 지.

온 달골에 등불 켠 듯.

“나 크듯이 크네.”

아이 되내듯, 꼭 그리 커서 오늘 그 절정인 듯한.

햇발동 앞 꺾어 심은 개나리도 올해는 꽃을 달았습디다.

여기도 꽃구경이오.


꽃구경 가자던 벗이 있어서도 좋고,

꽃구경이 좋았을 그대 걸음도 좋고,

봄날 이 산골서 사람같이 살고 있다 느낀 이 하루의 내 걸음도 좋소.

좋다, 좋다, 다 좋다!


이러저러 사정 봐가며 어렵게 날 받아주었는데,

가지 못한 마음 미안하기도 하나, 그래도 내 몫까지 즐겨주었으리라.

언제 어머니들을 모시고 절집 한 번 갑시다려.


그나저나 어쩌자고 난 이리 여러 날 날밤이오.

이게 늙음으로 간다는 말인지,

지금 고여 있는 생각이 차고 넘친 까닭인지.

혹 ‘...싶다’로 고통 받지 않고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를 다만 바라볼 수 있길.


우리 마음에도 봄꽃 흐드러지기를 간절히 서원하는 밤이라오...

건강하시라. 오래 보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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