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래왔듯 날이 부조한다.

4시 모두가 떠났다.

그간 살피지 못한 밭일을 해야지

삼거리밭도 학교 아래 밭도 둑의 풀을 베다.

삼거리밭에는 콩을 놓기로 했고,

엊그제 트랙터로 갈았다.

들깨를 심는다고도 했으나 이미 달골 밭에 심은 것으로 충분하니.

걸음마다 서너 알씩 콩을 놓았다.

저녁 8시에야 가마솥방에 들어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여러 날 비가 많이 든다 하였으니 오늘은 넘길 수 없는 일이었던.

짧지 않은 하루였다.

 

 

아침 7시 사람들을 깨우다.

4시까지 이야기와 곡주가 넘친 밤이었는데,

계자에서(잠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샘들을 깨우듯 가만가만 흔들다.

고래방에서 자면 피해갈 수 있을 줄 알았던 기표샘도 결국 일어나야 했다.

(연어의 날은 어른들 중심으로 움직이고 아이들은 우리 언저리를 돈다.)

아침을 가르고 멧골을 가르고 아침뜨락에 들었다.

아침뜨락은 우리들이 보낸 시간을 어떤 곳보다 선명하게 말해주는 장소.

20151031일 그 첫 삽을 뜨던 맨 땅을 기억하거나

그 전 묵정밭을 기억하거나.

, 이번에는 기표샘이 기억하나 찾아주었다.

자기 어릴 적 계자에서 여기 나무하러 왔더란다. , 그랬다!

겨울계자에 아이들과 땔감을 하러 왔던 바로 거기다.

우리 밭 위로 산판을 하고 넘어뜨려놓은 나무들이 있었고,

그걸 끌고들 갔던.

포도밭-콩밭-묵정밭의 시간을 건너 2015년부터 아침뜨락을 만들어왔다.

해마다 6월이면 시 잔치를 했고, 이어 2017년부터 연어의 날을 해왔다.

2018년 바르셀로나를 가 있던 한 해를 빼고 여섯 번째.

그 사이 각자 자신에게 있었던 시간을 헤아렸다.

생은 큰 방향성이라, 우리 잘 걸어가고 있는가?

 

간밤 3시에 점주샘과 미리 달골에 올려놓았던 차 덕에

어여 몸을 태우고 와서 아침밥상을 차렸다.

내려온 샘들은 자고 난 이불을 털고 씻고.

차를 달이거나

커피를 내리거나.

여유로운 아침 찻자리도 있었다.

책을 봤던 아이는 책을 꽂고,

땅을 팠던 이들은 땅을 메우고,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뒤를 돌아보는 우리였다.

 

갈무리 모임.

이 자리를 마련한 모든 준비와 노력에 고맙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이대로 참 좋다,

물꼬 밥이 최고다,

젊은이들의 기운을 받아가서 행복하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바뀌어 있는 물꼬를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

경청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소중하다,

항상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얻어간다,

우정을 쌓아가는 시간도 좋고 새로운 인연도 좋다,

귀하고 소중한 인연 오래오래 꾸려갔으면 좋겠다, ...

 

이 사람들이!”

봐 버렸네. 갈무리글을 쓸 종이를 접어 작게 자르고 있는 몇을, 하하.

우리는 또 한바탕 그리 깔깔거리고.

글을 쓰는 동안 낮밥을 차렸다.

대해리에서 나가는 버스로 먼저 움직이는 이들 있어 조금 서두르다.

덕분에 낮 2시에 끝나는 시간이 여유로웠네.

헐목에서 버스를 타고 떠날 이들은 현철샘이 셔틀을 마련해주었더라.

 

큰 해우소를 쓰는 일이 많지 않으니 관리를 놓치고는 하는데,

특히 벌레가 문제였다.

보통 행사 한 주 전에는 벌레퇴치용 약품을 뿌리는데,

그걸 못하고 맞은 이번 연어의 날,

인교샘이 그 일을 맡아 틈틈이 벌레퇴치제를 뿌리다.

누구보다 연어의 날 밑돌로 한 주 내내 애쓴 현철 영철 점주샘 들한테 특별히 찬사를 보냄!

 

저녁 밥상에서 물꼬 2년차로 연어의 날을 처음 맞은 현철샘이 그랬다.

연어의 날, 연어의 날 그래서 대단한 프로그램을 하는 줄 알았는데...”

다소 실망스러웠다고.

엄청 준비하던데, 그래서 엄청 큰 행사인 줄 알았다.

공연도 많이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기대도 엄청했다, “뭔가 볼 게 많을 줄 알았다.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밥 먹는 게 메인이었어요!”

어디나 하는 그런 거 보겠다고 여기까지 사람들이 굳이 올 것까지야...

우리 그런 거 안 한다.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해야 하는 거, 우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거 한다.

정성스레 사람을 맞고, 온 이들이 그들의 손을 보태며 판을 만들고.

쉬고 놀고 연대하는.

“(현철)샘의 후배가 언젠가 샘한테 형은 망했잖아’, 그랬댔잖아요?

그건 세상적인(이리 말하니 무슨 종교 같기도) 기준에서 그렇고

샘이 농사짓고 밥벌이를 하고 좋은 가치관으로 살고,

누구보다 성공한 삶이라 봐요. 물꼬 가치관으로서는 말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거기에 성공이 있는 것.

세상에서 놀다 고향을 찾아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모인 이들,

거기 대단한 무엇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세상에 많지 않은가.

그곳으로 가는 건 거기 내 마음이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는 일이 고단했고,

그래서 시골 엄마 곁에서 할머니 곁에서 쉬었다 가는 그런 하룻밤,

따습고, 건강한 밥과 땀 흘리는 들과 그리고 그늘과 노래와 시와 춤과 이야기가 있는 밤.

우리 괜찮다고, 그리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그런 곳,

그런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격려하고 지지하는 곳.

우리가 무엇을 하고 살지 어떻게 살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거다,

그걸 상기하는 곳.

연어의 날의 가치는 그런 데 있다!

 

(사람들을 보내고 목이 멨다. 같이 있는 시간에도 틈틈이 그랬다.

이들이 물꼬를 살렸고, 날 살렸고, 나도 이들을 살리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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