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식구들이 도라지밭을 맸다.

묵정밭을 갈아두었더랬다.

그저 들꽃이나 보자고 절반은 꽃씨를 뿌렸고,

나머지는 도라지씨를 뿌렸던 것.

도라지가 나기나 하려나,

올해 못 보면 내년에라도 올라오는 것들 있겠지 했는데,

잎을 내밀었던 거다.

그런데 어째 늘 의도하고 뿌린 씨보다 풀씨가 더 힘이 좋다.

저러다 풀에 다 잡아먹히고 말지,

오늘은 도라지들을 돕기로 한 바.

사람들이 도라지밭에 있을 적 참을 내가며

햇발동 앞 풀도 좀 뽑지.

부엌 창 앞 개나리들도 묶어준다.

한껏 뻗친 것들 잘라주면 깨끗할 것이나

새로 난 것들을 해를 넘겨 툭툭 끊어 여기저기 꺾꽂이를 하려지.


버섯을 따러 들어오는 차들이 많다.

아주 멀리서도 온다.

북으로 난 골짝은 산살림이 풍부하다.

이 골짝 버섯 많은 걸 아는 게지.

해마다 들어오는 이들도 적잖을 거라.

더러 달골 대문을 가로막기도 한다.

오늘은 그예 요즘 달골에 손 보태는 하얀샘이 나서서 항의를 했다.

시골 살며 외지에서 들어온(하하, 오래 살아도 외지것의 삶은 그렇다)이가

큰 소리 내기 쉽잖은데,

그래도 되더라. 그래야 하더라.


시인 이생진샘이 화가 원석연의 그림에 시를 부쳐 책을 냈고

그림 전시를 하면서 낭독회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열흘 뒤 서울 통인동 아트사이드갤러리.

일을 도모하는 선배도 전화를 했네.

“네가 꼭 왔으면 하시던데...”

이생진 선생님이 누구에게 부담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굳이 그리 말씀이야 하셨을까만

가야지, 그 책에 물꼬 들어선 이 골짝을 세 차례나 언급도 하신 걸,

그저 밥 한 끼 드셔주시겠다 연어의 날도 예까지 사나흘 길을 오셨던 걸,

다른 일정 잡지 않으면

기차로 휭 갔다 하루만에도 다녀올 수 있는 길, 다녀와야지.


내일부터 인근에서 차수업 하나가 진행되는데,

사범자격증을 따기 위한 그 수업에 초대받다.

내가 그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사범까지는 비용도 만만찮은 줄 안다.

이왕 아이들과 차를 나누는데 공부가 더 된다면 좋을 테고,

좋은 차들을 충분히 구경할 자리 될 것이라

객원으로 참여키로 한다.


밤, 마을에서 굿소리 건너왔다.

어둠 속에서 징소리 북소리는 나는데 빛은 없다.

쉼터께다.

요새 드문 풍경이라.

선뜻 가까이 가기는 조심스럽다.

댓 명이 앉았는 듯한데, 누구네 일일까, 무슨 일일까?

그렇게라도 액을 막고 복을 빌어야할 까닭이 있을 테지.

그것의 효험을 떠나 사람살이 무언가에 기대고 가려는 마음일 거라.

간구가 닿기를.


비가 많았던 어제였고, 흐린 오늘이었는데,

다시 오후에 비 내렸다 저녁답에 그었다.

밤, 다시 비 내린다.

비 많은 이 가을, 알곡들이 너무 귀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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