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열 사흘째 1월 17일 흙날

조회 수 1673 추천 수 0 2004.01.28 21:50:00

< 엄마가 기뻐하실까요 >

오늘은 모둠끼리 오전을 보내고
끼리끼리 오후를 보냈네요.
모둠에선 방마다 걸 달력을 만들고
여태 배운 것들을 서로에게 가르쳐주거나
더러 저수지를 향해 짧은 산오름을 하고
방 안에서 하는 놀이들을 하다보니 금새 밥 때였지요.

아이들이 어른들 죄 몰아내고 저들끼리 보낸 시간이
'끼리끼리'입니다.
자유학교에서 배운 것을 중심생각으로 놓고
어떤 형태의 예술로든 풀어보는 거지요.
한데모임에서 드러내보였던
그 지난한 조율의 과정이 제법 익어졌다고
패를 나누는 것 따위는 그저 가뿐한 일상일 뿐입니다.
친한 사이도 아니고 이미 알았던 사이도 아닌
여태 잘 몰랐던, 그래서 마지막 떠나기 전에 맺지 못했던 관계들을
서로 서로 찾아 패를 이룹니다.
열이 한 덩어리가 되는가 하면 달랑 셋만 덩어리를 만들기도 하고
그렇게 여섯, 자-유-학-교-물-꼬 패로 나뉘었더랍니다.
마음이 안내키는 이랑도 함께 어떤 작업을 하는 일,
우리 어른이라면 어디 쉽겠는지요.
원교는 최다출연상(?)이었답니다.
원교 이야기를 많이들 다루었대요.
어쩜 원교 있어서 우리는 더 풍성한 날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니, 딱히 누구랄 것 없이 지금 여기 이렇게 하나 하나가
우리의 풍성함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서로 따로 했던 시간을 한자리 모아 펼치고 나누는 장에서
원교가 악마역을 맡아 "컨닝해."라는 대사를 읊는데
우리의 예님 선수 원교 아버지한테 슬금 다가갑니다.
"원교가 나빠서 악마 역을 한 게 아니구요 대사가 짧아서 그런 거예요."
연규, 하다, 나영, 효석이네 덩어리는
'돌아봅니다'라는 제목이었던가,
아이들이 모임을 하고 그 뒷자리를 정리하는 이야기쯤이었나 봅니다.
'하다'가 나와 홀로 빗자루를 들고 방을 쓰는데
무대 뒤 연규와 효석이 안타깝게 외칩니다.
"대사해."
그런데 이 눈치없는 하다 선수 큰 소리로 그랬더랍니다.
"대사가 뭐야?"
우리는 끝까지 그 한 마디 대사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지요.

구석구석 들여다볼까요, 우리 새끼들 오늘은 또 어이 지냈나.
대동놀이 때 한쪽에 앉아있기를 더 좋아했던 원교는
이어달리기에 강강술래도 같이 했다지요.
딱지(아이들 가방 가방 쌓인 딱지!), 동서남북, 팔찌를
동주는 종이 네 장으로 만든 봉투에 선물로 꾸렸답니다.
"엄마가 보면 좋아할까요?"
묻고 또 묻더랍니다.
희영이는 강강술래 끝자락 울었다네요.
승찬이랑 기태를 샘인줄 알고 장난친다고
'문지기 문지기'에서 등짝을 세게도 때렸던가봐요.
그예 승찬 기태가 복수를 했던 거지요.
등이 너무 아파서 울었더랍니다.
어느 시간이고 너무 열중하고 지내서,
울 일 따위 없는 희영인데 말입니다.
현주는 홍주랑 손잡고 복도를 여전히 누비고 다니고,
뜨개질을 열심히 하던 다예는 거의 도움샘 수준에,
가끔씩 놀림을 받을 때도 있는 도형 선수는
금방 회복하고 모두 속으로 잘도 섞여들었답니다.
승진이는 점심에 밥 네 차례, 사과 한쪽 반을 먹더라네요.
"배 안불러?"
배를 쑤욱 집어넣으며
"배 고파요!"
소리쳤다더이다.
서울 가면 뭐 할거냐 물으면 온통 먹을 것 타령인데
우리 혜린이는 동생이 보고 싶다하였습니다.
집에 머잖아 간다는 사실이 힘을 북돋아
나영이는 밥을 장난 아니게 먹었다지요.
채은이랑도 싸우고 진만이랑도 티격태격에다 문정이랑도 대판한 재헌이는
승종이랑은 잘 지내더랍니다.
그 승종이는 경은이를 그렇게 챙기더래요.
동생 찬종이랑 정말 밥을 열심히 먹습니다.
지선이는 점자 공부를 좋아해서
쉬는 짬에 혼자 책보며도 곧잘 했다네요.
경은이랑 채경이는 원성이 자자했대요.
"안놀아주면 울어요, 매달리고."
경은이는 석현이랑도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고
다온이 그림을 따라 그리며
다온이가 짜증내며 가려도 굴하지않고 슬쩍슬쩍 베끼고,
채규는 또 누구랑 시끄러웠다더라?...
진만, 호준, 석현은 아주 삼색트리오(?)로 휘젓고 다녔더래요.
우리의 석현 선수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었다 하고.
대동놀이를 정말 좋아하는 석현이...
설거지를 열심히 한 시량이도 있었네요.
3모둠 달력 첫 장을 멋있게 장식한 정욱 선수,
그 색깔이며 에너지를 애고 어른이고 알아보고 탄성을 질렀다지요.
영후는 얼마나 구석구석을 조용히 누비는지 알차게도 자기를 쟁이고
지후도 가만가만 움직이며 자기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습지요.
이젠 좀 가라앉아 보자하는 말을 잘 알아듣고
안을 다지는 게 보기좋은 예린이,
명랑소녀 윤슬이,
오늘도 예외없이 후덕했던 연규,
끝까지 반대하던 일도 자기가 설득이 되고 나면 누구보다 잘 받아들이는 인석이,
욕이 여전히 힘든 벽이지만 애쓰는 문정이,
나무랄 데 없이 귀를 기울이는 정한이,
쳐다보면 그만 마음밭이 환해지는, 자주 반팔로 등장하는 영환이,...

저녁에는 재철샘의 '점'이 엄청난 열기였답니다.
어제부터 공을 들이고 계시더라구요.
산가지를 해보겠다 대나무통에다 일일이 대를 갈라 다듬어 담더니
그 용도로는 신통찮았는지 점을 친다하셨답니다.
주로 남녀관계를 잘 보시더라고.
정한이한테는 "니 주위에 여자가 둘 있다."하고
예님에게는 "올 한 해 남자가 많겠다." 했다나요.
한데모임에서 누가 물었답니다.
"그래, 잘 맞더냐?"
애들이 시원찮다는데 인석이 절대 그렇지 않다 팔짝 뜁니다.
"맞어, 정말!"
인석이는 무슨 말을 들었던 걸까요?
지금 좋아하는 여자애랑 잘 될 거다, 쯤?
족집게란 설도 있더라는 옛날 이야기였습니다!

어제 한데모임에서 우리 윤님이,
"지난 번에 출장갔을 때 교장샘이 사탕을 사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사주시면 좋겠어요."
이 녀석들, 점심 먹고 길을 나서는데,
"선생님, 사탕요, 사탕!" 합니다.
나들이 가는 엄마한테 아이들이 하는 그 모습요,
그만 코끝이 찡해지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지붕 아래 살고 있구나 싶은.
아이들은 이제나 저제나 교장샘 언제 오냐 부엌을 들락거리며 물어대더랍니다.
사탕을 두 번이나 사올 수야 없었지요.
밥 피자를 위해 피자치즈를 준비해왔습니다.
낼은 어느 한 때 새참으로 밥 피자 구경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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