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계자 마지막날, 8월 7일 흙날

조회 수 1690 추천 수 0 2004.08.10 01:11:00

"여러분이 쓰는 갈무리글은..."
낮 11시, 학교를 나서기 전 반찬통도 챙기고 말린 옷도 걷고
여기서 지낸 시간들을 주욱 돌아봅니다.
"이 시간이 사진과 함께 잘 기록되면
훗날, 어린 날을 더듬어보는 좋은 기념품이 될 것입니다."
"이 목걸이도요!"
보물의 여파입니다.

마친보람 시간이네요,
졸업식쯤 되려나요.
복도에 길게 늘어서서 마지막 처마를 나서기 전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나눕니다.
불편한 곳에서 정말 고생했노라 꼭 전해주지요.
그렇게 잘 지낸 이들에게 장하다는 말도 잊지 않고.
"희정아!"
한 번 길게 불렀더니 그만 울음을 터뜨리는 희정입니다.
인영이, 졸업하기 전 다시 오고 싶다는 말 빼놓지 않고,
정한이 참하게 인사하며 나섭니다.
소정이가 큰 놈답게 잘 마친 걸 감사하는 눈길을 주고 가고
이제 장난도 제법 걸게 된 성찬이
(어제 산에서 내려오던 길엔 벌에 쏘였지요.
어디냐 물었더니 단박에 알려주더이다.
말이 많이 없는 아이거든요.),
동형이는 엄마 보고픈 것 맞을까 싶은 표정으로 나가고
형준이는 이젠 좀 알겠네, 여기, 그런 얼굴로 인사 하더이다.
네에, 곱게도 대답 잘해서 신경쓰일 일이라곤 없던 지호,
경민이, 뭐, 또 올 건데요, 무슨 말을 해,
그런 얼굴도 걸어가고,
아, 그래요, 용수, 아버지를 쏘옥 빼닮아서 아들인줄 그냥 알 수 있는,
소박한 행복꾼이었지요.
밥을 못먹는 아이, 우는 아이의 좋은 언니였던 다혜,
갈 녘에야 동생 곁에서 멀어질 수 있었던 수연,
아이구, 야단치다 그만 그 넉살에 웃게 만들고 마는 종헌이,
경은이는 류옥하다랑 또래 기세로 정신없이 헤집고 다니고,
틀림없이 사촌일 거라고 의심할 수 없는 하준이와 희민,
으이그, 그래도 뭘 해야된다 잘 새겨주면
그런 것까진 무시하지 못하는 지준이,
고학년을 위한 배려가 많지 않았는데도 저 알아서 누리던 정후,
붙임성 좋은 희원,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만치 나갔다가 들어오는, 어리지 않은 재웅이,
열호요, 애써서 보지 않으면 눈에 잘 안띌,
그러나 세상을 이루는 필수요소 같은 아이지요.
차가 오거나 말거나, 누가 말을 하거나 말거나 해서
열댓 차례는 불러야 하는,
그런데 갉기만 하고
그걸 풀 수 있는 마지막날 아버지한테 끌려(?)가버려 아쉬웠던 우진이
(아버지의 갑작스런 휴가로, 게다 다음 계자에 또 오니까),
마음 든든하게 곁에서 도와주던 정훈이,
누구든 약속 안지키면 몸살나고 말(약속안지킨 상대가) 세원이,
사리 바른 동호,
무난하다는 말이 더없이 어울린 강이와 호연,
제 힘보다 약한 이를 딴지 거는 게
얼마나 비겁한 지에 대해 이제는 생각을 좀 하는,
그리고 잘 관계맺는 법에 대해 조금은 익혀갔지 싶은 승규,
떠올리고 있으면 웃음 먼저 주는, 순하고 맑은 정호준,
냄새(씻는 곳 옆에는 토끼와 닭과 오리 들이 살거든요)나서 안해요,
숲에서 돌아왔던 첫날부터도 짱짱 제 목소리 내던 일곱 살 윤호,
엄마의 걱정이 다 뭐야 싶게 제 할 일 챙기던 나해,
큰 형아들의 문화를 잘 알아서
여간해 나이 두엇 살까지 맞먹고 마는 류옥하다한테 형 소리들은 민재,
인물만큼 야무딱진 해인,
저 신나는 배움의 즐거움을 나이 먹으면서도 가져갔음 싶은 범규,
성큼 커버린 이호준,
동생 앞에선 울지 않는 지선이,
일정을 마치면 꼭 인사 먼저 하는 예의바른 승호,
눈 말똥거리며 열심히 움직이는 강은이,
속이 올찬 정하,
표정만큼이나 무게를 갖는 경록,
그리고 마치 홀로 차 오르는 달 같던 종한,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풀잎엽서 한 장을 들고 떠났답니다.

참한 품앗이 서경샘의 동생으로
황금 같은 휴가를 예서 땀흘리며 보내준,
선하고 순해서 그것만으로 충분히 훌륭한 선생님이었던 원경샘,
나흘 일정에다 이틀만 더 보태라는 통사정에
흔쾌히 그러마 하고 아이들 아버지 노릇을 해준 영삼샘,
빛나는 새끼일꾼 형석형 무열이형 미연이형 기표형아,
일 많을 때 와서 힘이 되어준 방문자 은영샘과 혜선샘,
학교가 문을 열면서 연이 되어
공동체식구만큼 마음을 쓰고 그만큼 몸도 움직이는,
아이들을 잘 거두는 선진샘,
그리고 한결같은 공동체식구 여섯이 어깨 겯었더이다.
같이 귀한 시간을 만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부족한 공간에 터억 하고 아이를 맡겨주신 부모님들 또한 고맙다마다요.
우리 아이들에게 살아가며 한 켠 힘이 되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아, 석현이는 버스 안태워보냈습니다.
하룻밤 재우고 버릴(?)라구요...
저는(석현) 버스 안타도 된다 그랬거든요.
때가 되면 어차피 버스 타고 기차탈 수 있을 거라 믿는 아이들,
엄포가 좀 됐으려나요.
(석현 어머니, 괜찮으시지요? 맨날 보는 아들인데요, 뭐...
하룻밤 숙박비 안받는 게 그저 고마우신 거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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