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흐렸다. 일하기 좋았다.

5시가 지나면서 머리 위 무거운 구름은 빗방울 몇 되었다.

옷도 젖지 않는 비였다.

 

굴착기 들어왔다. 6W.

60만원으로 하루 작업을 하던 기계는 이제 70만원 삯이었다.

큰 게 오면 그만큼 또 일을 해내는.

컨테이너를 옮겨야 해서도 그 크기가 와야 했다.

30년을 일했다던 기사는 굴착기를 손발 부리듯 했다.

일을 정말 잘하시네.”

굴착기를 수차례 불러다 일을 해본 현철샘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탄했다.

현철샘은 엿새째 물꼬 일을 맡아 들어와 있다: ‘구두목골 작업실작업 엿새째.

일이 안 되네.”

굴착기를 좇아다니며 필요한 일을 챙기느라

당신 하려던 작업을 못했다는 말이다.

굴착기 일만 제대로 되어도!

 

굴착기는 들어오면서 달골 대문 들머리 패인 경사지에 흙을 채웠다.

작업실을 얹으려 만들어놓은 뼈대 위에 농기구 컨테이너를 옮겨 올렸다.

현재 있는 위치에서 바로 곁.

틀 위에 맞춰서 올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항공바로 네 귀퉁이를 연결해 묶어서 들었지만

꽂은 꼬챙이만 휘고 말았다.

컨테이너 앞에 부었던 콘크리트가 얇았어도 컨테이너를 붙잡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다시 시도.

들어졌다. 문제는 틀 위에 앉히기.

1시간이 흘렀을 때 비로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음은 바위투성이, 컨테이너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아래쪽으로 연결된,

땅을 고르는 일이었다. 맨 아래 커다란 벚나무 있는 곳까지.

세 단으로 층을 두어 고르다.

나무 아래는 아이들과 숲교실을 해도 좋을.

 

명상돔 있는 밭으로 올라오던 굴착기는

경사지 아래 아무렇게나 몇 해 쌓여있던 경계석 바위를

한 줄로 정리해두고 지났다.

밭 고르기. 말이 밭이지 바위며 돌들로 뭘 키울 수 없었던 땅.

(그래도 어느 해 진수샘과 병선샘 오셔서 물꼬에서 집중수업하던 아이들과

밭을 갈고 돌을 줍고, 그리고 메밀을 뿌렸던 해도 있었고나.)

그 남쪽 끝으로는 비닐하우스를 하나 칠 계획도 있는 바

전체로 편편하게, 바위는 걷어내고 돌들을 치워내고.

5시가 지나 30여 분 더 작업을 하면 정리가 얼추 되겠기

기사에게 추가 작업을 물었더니 그리 하기로.

빗방울이 떨어져 일이 되려나 잠시 스친 걱정이 있었으나

아주 잠깐 지나는 바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메타세콰이어가 심겨진 아침뜨락의 지느러미길을 따라

아래로 물도랑을 파내고 굴착기가 밭을 나오다.

 

신성철샘이 서각해주신 아침뜨락 나무 현판을 세우리라 했는데,

세 끼의 밥과 두 차례의 참을 내니 하루가 갔더라.

블루베리나무를 지나다 선걸음으로 몇 그루 열매를 솎고,

굴착기 작업들을 사이사이 확인하고,

저녁답에는 명상돔 바닥 틈새를 체로 친 모래로 메우기도.

아침뜨락에서 나온, 옴자의 울타리 대나무를 얼마쯤 태우기도 하였네.

 

저녁 7시가 지나고 있었다. 서둘러 저녁밥상을 차렸다.

컨테이너를 둘 놓고 그 사이를 지붕 이고 목공작업실로 쓰려한다.

한 채의 컨터이너를 어찌할까 궁리 중에

학교에 현재 쓰고 있는 컨테이너를 올리기로.

그 안에 있는 것들은?

잠시 확인해보니,

내가 한국에 없던 시기에 샘들이 서울의 내 살림을 정리해서 내려 보낸 것도 여럿.

그때 네 살이던 아이가 자라 스물다섯이 되었으니

20년도 더 열어보지 않은 상자도 있는 거라.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버린다.

그것 쓰지 않고도 그 세월 살아졌다.

이참에 수년을 손에 대지 않은 것들은 계속 안 쓰는 걸로 생각하고 버리거나 나누기로.

우리 집 아이 어렸을 적, 7,8학년쯤이었을 게다, 같이 창고를 정리하던 생각이 났다.

어머니, 이거 언제 쓰셨어요?”

몇 해를 쓰지 않았다 하니 그러면 앞으로도 안 쓰는 거라 생각하자고.

필요하면 그때는 사서 쓰자고.

그걸 기준삼아 짐 한번 정리해보자.

마침 학교터에도 변화가 생기는 올해라.

모든 일은 때에 이르러 다음으로 전환되는.

창고로 쓰고 있는 컨테이너 짐들을

일부 버리고, 살아남은 얼마쯤은 고래방 뒤란 창고로 보내리라 한다.

내일 일로 삼겠네.

 

9시가 넘어 밥상을 물리고 집으로 들어와

씻지도 않은 채 콩주머니 의자에 몸을 구기고 졸다 깨고 나서야 씻고 책상 앞.

고단했던 하루였을.

으윽, 무척 가려운. 때가 되었노라.

벌레들 우글거리는.

풀섶에서 몇 차례의 쏘임 혹은 물림으로

퉁퉁 붓기를 몇 차례 반복하며 이 계절이 갈.

아니나 다를까 양 눈가로, 심지어 입술에도 쏘인 흔적 남고

퉁퉁 붓고 있는 얼굴이라.

팔다리며 몸의 몇 곳도 열심히 긁고 있는 밤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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