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계자 여는 날, 2007. 7.29.해날. 소나기

조회 수 1648 추천 수 0 2007.07.31 21:22:00

119 계자 여는 날, 2007. 7.29.해날. 소나기


“여기가 대해리잖아요, 큰 바다!
이바구때바구강때바구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그만큼 큰 호수가 요 앞에 있었대요.
거기 청둥오리들이 날아든 어느 해 11월
하룻밤 사이 호수가 얼어버렸네요.
기러기들이 놀라 날아오르자 그 호수가 딸려갔더랍니다.
가장자리는 금새 녹아내렸고,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오리들 발에 딸려있던 호수 조각이
산 가운데 덜컥 떨어져 내렸겠지요.
학교 동쪽 저 산을 오르면 바로 그 호수 지금도 있다지요.”
이야기도 많은 해발 500미터의 산골마을 대해리이지요.
풍성한 설화가 있는 이곳으로 아이들이 왔습니다.
다현이랑 윤배가 아이들이 물에서 나왔을 녘 들어오고
지현이 진희가 광주에서 저녁답에 들어오니
아이들 마흔 일곱이 다 모였네요.
마흔 넷을 신청 받지만
예 사는 아이랑 그를 방문한 친구랑 이러저러 그리 되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을 큰대문에서 맞습니다.
현진이 경준이가 안다고 먼저 달려왔지요.
경준이는 얼굴을 싸악 갈아서(이보다 더한 표현이 없어) 갔던 녀석인데
여전히 이곳에서 얼굴을 봅니다.
동진이도 그렇습니다.
지난 겨울 얼음판에서 놀다가 다친 그는
정작 집으로 가서 병원을 다니는 과정에 많이 아프고 고생도 많았는데도
또 왔습니다.
그도 그이지만 다시 보내준 그 부모님이 고맙습니다.
물론 동생 현지도 같이 왔지요.
변함없이 참한 인혁이가 왔고
동생 동근이는 뒤늦게 개구짐을 얻었는지
자그르 장난끼 섞인 웃음으로 들어섰습니다.
방학이면 오는, 중국에 사는 희주는
이웃의 경덕이 종규랑 같이 왔네요.
경서는 길었던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 나타났고
수현이는 절친한 친구 재인이를 어깨겯고 왔지요.
지난 겨울 동생이랑 왔던 원하는 홀로입니다.
안 온다며 툴툴거리던 그였더랬는데...
승규가 한큼 자라 나타났고,
이름이 먼저 들어온 단을이가 왔고,
동생 수정이가 여덟 살이 되자 정말 그를 데리고 나타난 소정,
선호가 일산 온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왔고,
용범, 용하가 자글자글 장난을 물고 얼굴을 보였으며,
긍정을 고스란히 얼굴에 담은 어필선수,
이름만 봐도 형제인 경모 경근이가,
그리고 지난 겨울 같이 온 동생 자누가 아파서 애가 탔던 해온이가 왔습니다.
어, 그런데 저게 누군가요?
“으응? 너 성준이 아냐?”
그렇답니다.
네 살 때 본 성준이가 여덟 살로 자랐습니다.
재작년에 이곳에서 온 가족이 봄날 얼마쯤을 보내기도 했더랬지요.
현지랑 세진이가 자매구나 금새 알아차리게 나란히 오고...
성주, 찬희, 저 녀석들 아무래도 만만찮아 보입니다, 지내봐야 알 일이지만.
우리나라 윤씨 가문의 대표로 온 민웅이,
덩치는 산만한데 별로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
왔던 범순이랑 그의 친구(예서 서로 익힌 것 같은데 오랜 친구로 보이는) 태성,
혼자 용감하게 기차를 타고 내려온 태윤이,
아무래도 어려 뵌다 싶어 나이를 물어야했던, 커서 손해 보겠는 수환이,
동생 필우랑 자꾸 헷갈리는 준호,
눈이 또록또록한 준성이,
어슷비슷해서 자꾸 이름을 섞어 부르는 재준,
진지한 표정의 호연이,
얌전해서 눈에 띄는 수진이,
까치머리 금효,
새끼일꾼으로 온 누나를 따라 어제부터 와 있었던 태현,
그리고 이 마을에 사는 류옥하다.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정겹고 좋지만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일도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어디 더위가 있나요,
시가 있나요 때가 있나요,
점심을 먹고 곳곳에서 제 깜냥대로 잘도 놉니다.
그러다 시들해지면 또 저기서 다시 마주치기도 하지요.
쫄랑이랑 노는 경서,
진돗개 장순이 곁에는 현지 단을 경덕 세진 수정이가 있습니다.
마당 한 가운데는
동진 태윤 종규 준호 태성 경근 찬희 범순 어필이가 새끼일꾼들과 공을 찹니다.
늘 그렇지만 발보다 말이 공을 더 많이 차지요.
대해에 배를 배를 띄운 아이들도 있습니다.
현진 승규 단을 준성 금효 수환 태현 호연 용하 성진 성주
그리고 해온이가 거기 있습니다.
가만, 가만, 배를 밀고 당기던 이들과 공을 좇던 무리들이
머리 안에서 마구 엉키는 걸요.
아무튼 다 마당에 쏟아져 있었습니다.
경준이와 필우가 잠자리를 좇아다니고,
방에서는 수현과 재인,
또 선호 소정 세진 현진 해온(해온이는 언제 들어왔지요?)이가 공기돌을 가지고 놉니다.
그리고 책방에 책에 코를 묻고 있는 녀석들...
곳곳에서 이렇게 엿새를 살다 갈 것입니다.

‘큰모임’을 시작하려 모둠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막 하늘이 시커매지면서 비가 묻어오는 겁니다.
마치 갑자기 찾아든 가을처럼 거센 바람 일고 마른 잎들이 후두둑 내리고
빗방울이 빠지기 시작했지요.
순식간에 굵은 빗줄기가 그대로 땅으로 꽂히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말을 잃고 창밖을 보았지요.
영화의 한 장면으로 그리 시작한 시간이었더이다.
바램을 담았거나 꿈을 담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자신만의 공책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들고 다닐 글집이지요.

‘물소리 바람소리’
계곡으로 갔습니다.
큰모임 시간에 왔던 물소리 바람소리가
아이들이 가는 수영장까지 따라 갔지요.
온(오온) 아이들과 부딪치는 행동반경 넓은 동진이는 영어의 몸이 되어
오늘 책방에서 책이랑 놀아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경서가 피곤해서 낮잠을 잔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았으며,
원하는 저 좋아하는 만화책 원 없이 보러 책방으로 들어갔고,
승규와 희주는 흥미 없다며 학교를 지켰는데,
날이 꾸덕꾸덕했지만
아이들 물놀이 떠나라고(비가 와도 갔겠지만) 멎어준 비가 서운할까,
죄 갔지요.
물놀이를 가면 아이들의 에너지가 드러나다마다요, 그 끝도 없는 물장구.
오늘이라고 예외였을까요.
늦게 온 다현이와 윤배가 달골 계곡으로 가는 길에
돌아오는 아이들과 만나야 해서 아쉬워했답니다.

끈질기게 묻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건물이 낡아 마루에 발이 빠진 아이가 있었다 들려주었는데,
태석샘이 자기한테 일어난 일이라 한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달려왔지요.
“진짜 저 선생님 어릴 때 그랬어요?”
“응. 그때부터 저 다리가 그리 된 거잖아.”
소아마비를 앓았던 태석샘의 병력은
이제 ‘이야기’가 ‘사실’이 된 증명서가 되었지요.
“누가 구해줬어요?”
“내가! 그렇지만 톱질은 저어기 남자샘이 했지.”
이제 아이들은 정말 복도에서 덜 쿵쾅거리게 되는 걸까요?
구르는 뭐만 봐도 뒤로 넘어간다는 여고생들처럼
별 게 다 재밌는 여기입니다.

‘한데모임’.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앉아
하루를 어찌 보냈는가 돌아보았고
손말도 익혔습니다.
지내는데 필요한 얘기들이 이어졌지요.
축구를 하며 거친 한 아이 때문에 문제가 많았던가 봅니다.
“규칙도 안 지키구요...”
“심판을 두면 되지.”
“축구를 안한 사람도 많은데 그 문제로 이렇게 시끄러워야 해요?”
“엿새를 같이 살 거니까, 우리 일이니까, 같이 해결해보려 하는 거지.”
아직도 울분이 남은 네 아이들의 언성은
모두가 계속 달라붙어 얘기를 할 게 아니라
샘들한테 넘겨주었습니다.
“저는 여기 벌레도 너무 많고 불편해서 집에 가고 싶은데...”
집에 보내 달라 호소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신청하면서 시골인 줄 알았을 텐데 그 정도는 각오해야지.”
“진드기, 바퀴벌레,... 서울은 벌레 더 많아.
개인적인, 징징 짜는 저학년의 문제를 같이 풀어야 해요?”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 목소리로
모든 문제들이 정리가 되어갑니다.
“한데모임에서 앞 다투어 손들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을 보니 색다르고 신기하고 웃기기도 했다."
새끼일꾼 예진이는 그리 쓰고 있었고,
“솔직히 말해서 오늘 한데모임에 아이들 이야기 들어주면서 서로 같이 의견 내고 하는 프로그램이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새끼일꾼 가희 역시 그 시간이 인상 깊었다 합니다.
“거침없는 토론 실력!”
연숙샘의 하루정리글에는 그런 메모가 있었지요.
“특히나 큰 모임 시간에 논의할 때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논제를 발표하고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질서 있게 의견을 내는 것이 내가 학생일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또 그것을 듣고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기특하다.”
한편 거침없는 말하기에 견주어 듣기는 부족하더라며
소현샘은 아쉬워도 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참 안 된다는 말하기 듣기를 연습하고 새로이 보는 자리,
그것이 이곳의 한데모임이랍니다.

‘대동놀이’.
이어달리기는 이곳의 고전이지요.
몇 바퀴나 돌아가며 고래방이 터질새라 몸을 풀고
닭싸움에 들어갔습니다.
“옥샘, 저 선생님은 왜 안 넘어져요?”
무너지지 않는 종대샘의 거대함에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진행자한테로 와서 괜히 하소연을 해대기도 했지요.
“다른 놀이 하자, 하나 둘 셋!”
“다른 놀이 하자, 하나 둘 셋!”
“지구에 생명체가 어떻게 시작했는가에 대한 학설은
가짓수가 많기도 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진화했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여럿이지요.
그런데 이런 학설이 있습니다,
우주에서 툭 떨어진 알이 있었다,
알들이 데굴거리고 다니다 알들끼리 부딪혀서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되고 사람이 되었다, 그런.”
우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고래방을 굴러다녔더랍니다.
“와, 사람이다!”
“이야, 축하해!”

아이들을 씻기고 동화책을 읽어준 뒤
‘어른 하루재기’를 가마솥방에서 합니다.
“다른(내가 살아온) 하루보다 하루가 빨랐고,
내가 그 나이었던 때를 빼면 처음 그 나이의 아이들과 지내보는데
에너지 넘쳐서 기뻤습니다.”
목수 종대샘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지요.
“계자에 대한 교육적인 관점보다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느낌이었다. 47명(정원 44명)이라는 많은 수의 아이들이 서로 부대끼고 충돌하며 그렇게 정들어 가는 모습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사는 게 별 것이 아니구나 하는 삶을 비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 또한 사실이었다. 좋은 공간에서 좋은 연에 감사한다.”
그가 하루평가글에 쓴 글입니다.
태우는 영광의 새끼일꾼이 된 기분을 전했습니다.
그때 그니들(그가 계자를 다닐 때 새끼일꾼이나 품앗이일꾼이었던, 그러니까 샘들)을
이해하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일주간 이런 걸 무난히 소화하신, 제가 아는 샘들이 갑자기 존경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겠지요.”
어른들로부터 새끼일꾼들에 대한 찬사가 쏟아집니다.
아이들 틈에서 잘 놀아주고 있고,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최고 역할이지요.
가끔은 그들이 더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그게 또 뭐 그리 대수겠는지요.
상범샘은 늘처럼 영동역 풍경을 전합니다.
“성의껏 애들 봐주고 섬기는 것 알아주는 것 같아서 고맙더라구요.”
“(반면)아이들보다 부모님들이 더 걱정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영동역에 같이 나갔던 태석샘도 덧붙여주었습니다.
품앗이일꾼 4년차 태석샘,
대학생 때 와서 이제 초등특수교사 되어있는 그입니다.
“선생님, 여기 살아요?”
자주 온 아이들이 잦게 보는 그의 얼굴을 또 보며 묻더라지요.
건물 하나 하나, 골짝 하나하나, 돌 하나 하나
정이 많이 들었다 했습니다.
꼭 예 식구 같은 그이고
우리에게 교사의 선함과 성실과 순함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랍니다.
하물며 아이들은 그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을지요.

하루가 저뭅니다.
평마단식도 달골에서 시작했는데,
첫날이라 학교로 찾아들면서 조금 부산하기도 했네요.
여독이 풀리지 않은데다 새벽부터 부엌을 정리하느란다고 설쳤더니
곤하기 더했나 봅니다.
그게 아니어도 이른 아침부터의 긴장으로 첫날의 피로가 크기도 하지요,
멀리서 온 아이들도 어른들도.
처음 온 일꾼들이 많아 계속 안내가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많았으나
어찌나 마음들을 내는지,
낼부터는 잘도 돌아가겠습니다.
물놀이를 가면 몇은 상처를 입고 오더만
오늘은 다친 아이도 없습니다.
약을 달고 온 아이들이 몇 있었는데 모둠샘들이 살뜰히도 챙겨주었고
경모는 편도선이 부어서 와서 스프를 먹이고 있습니다.
처음 엄마와 떨어져 밤을 보내는 종규와 경덕이는 집이 그리워 울었지요.
위안이 되라고 같이 보내는 것이
되려 서로를 부정적으로 고무시키기도 합니다.
“경덕아, 네가 종규를 위로해야지, 덩달아 그러냐?”
승규는 자꾸 비염이 있어 병원에 가야 한다는데,
외로워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아이들의 문제는 마음의 불편함에서 생기니까요.
한편 정말 병은 아닐까 살펴봐야겠습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처음 올 때는 여기서 어떻게 먹고 자냐고 생각했는데 계속 있다 보니 여기서 잘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싶고 게임도 하고 싶다...”
처음 새끼일꾼이 된 이의 글입니다.
이들이 어떤 변화를 겪어갈지도 자못 기대되는 흥밋거리랍니다.
“...애들이 말을 진짜 안 듣는다. 진짜 때리고 싶었는데 때릴 수도 없고 답답하고... 애들 닦이고... 작아서 닦긴 쉬웠다.”
“벌레랑도 친해지고...”
이리도 쓰고 있었지요.
종대샘은 이제야 (자원봉사)해보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본 자신에게
새끼일꾼들의 존재와 움직임들은 충분히 부러움의 대상이라 고백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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