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 5.달날. 오후, 고개 숙인 볕

조회 수 1668 추천 수 0 2007.11.13 10:37:00

2007.11. 5.달날. 오후, 고개 숙인 볕


달골에 올라 감을 땄습니다.
올해 마지막 감털이입니다.
“와아, 호박이 있어요.”
콩밭을 보던 아이들이 소리쳤습니다.
청둥호박, 단호박입니다.
절단 난 여름농사에서 살아남은 것이지요.
시카고로 가 사람이 비웠던 40일,
그리고 여름 내내 계자로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던 달골 콩밭에서
유일하게 나온 것입니다.
콩이야 이미 거름으로 다 쓰겠다고
아예 갈아엎기로 결정한지 오래지요.
“우리 씨 받으라고...”,
호박 저 녀석들이 그렇게 자신을 이어갑니다.
사는 일이, 자연이 늘, 참, 신비롭습니다.

들었던 여러 사람들이 떠나고
(EBS PD 나현태님, 품앗이 여은주샘, 주혜...),
기락샘도 서울로,
종대샘도 집을 지으러 돌아가고,
다시 고요한 산골 가을날입니다.
다들 잘 가셨는지요?

극장에서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이명세 감독의 .
꿈속에서 누군가 무엇인가를 건네주었습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라며.
첫사랑이었지요.
그건 까맣게 잊어버렸던, 혹은 잃어버렸던
우리들의 소중한 모든 것이겠습니다.
정훈희의 ‘안개’로(보아가 부른 것보다),
그리고 이명세 감독의 다른 영화들이 그러하듯 색(보라색)으로,
오래 머리에 머물지 싶습니다.
"은 꿈이기도 하지만 민우의 상상일 수도 있어. 머릿속에서 그걸 짜 맞추려 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어디서부터가 꿈이고 꿈이 아닌지. 이건 상상이고, 이건 기억이다, 이런 식으로 무 자르듯 나누지 말자는 거지.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나눴는데 참 좋았던 거 같다, 그러면 좋은 거야. 특별할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좋았던 느낌이 있잖아. 꼭 내용이 좋아서 좋은 건 아냐. 그날 햇빛이 좋았을 수도 있고, 바람이 간지럽게 잘 불어줬다든지, 흔한 얘기였는데 참 편안했다든지 그런 느낌이 있지. 기억은 그렇게 남는 거 같아. 인생의 구조가 그래. 영화를 만드는 내 방식은 그걸 따르지. 기승전결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이명세)
<개그맨>을 보고 단박에 최고의 감독이라고 꼽았던 그입니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처럼 꼭 챙겨보는 감독이지요.
그런데, 극장에서 홀로 보았습니다.
연애시절에도 받아보지 못했던 선물이지요.
혼자 보라고 전 극장을 빌려준 것이었습니다.
영화광이었고 영화관련 글쓰기로 생활을 꾸리던 시절도 있던 이가
산골에 들어가 얼마나 엉덩이가 들썩일까,
헤아려 주었던 겝니다.
없이 살아 더 부자라니까요.
고마움을 전할 상대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그것을 위해 궁리하고 애썼을 그 마음이 읽혀
고맙기 더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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