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6.흙날. 비

조회 수 287 추천 수 0 2023.06.09 03:41:23


비다!

비님 오시다!

어제도 왔고, 그제도 왔다.

가물었더랬다.

제한급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전남의 섬 지역만이 아니었으나

보길도 노화도 금일도 소안도 들이 주 한두 차례 물이 공급되었다 했다.

이번 비에 저수지 수위가 절반 이상 올라갔다고.

차차 제한급수가 해제될 거라는 소식.

고맙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들을 해내는 시대라 해도 하늘이 할 일이 늘 있는!

 

이웃의 젊은 아낙이 전화를 넣었다.

비도 내리는데 혹 물꼬도 여유가 좀 있지 않겠냐고.

초대였다.

음악이 흘렀고,

지금 만들고 있는 인형의 몸통에 솜을 집어넣으며

같이 비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안한자적(安閑自適; 평화롭고 한가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다)이라.

정극인의 상춘곡이 절로 나오다.

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 엇더한고

녯사람 풍류를 미칠가 못 미칠가

천지간 남자 몸이 날만한 이 하건마는

산림에 뭇쳐 이셔 지락을 모를 것가

수간모옥을 벽계수 앏픠 두고

송죽 울울리예 풍월주인 되어셔라

 

하하, 딱 여기까지만 되더라.

그러다 그 끝도 기억해내나니.

공명도 날 뀌우고 부귀도 날 뀌우니

청풍명월 외예 엇던 벗이 잇사고

단표누항에 흣튼 혜음 아니 하

아모타 백년행락이 이만한들 어찌하리

 

무서워라, 긴 세월 건너서도 이리 입에 오르는 가사여!

단표누항(簞瓢陋巷)을 거기서 배웠다.

누추한 거리; 대광주리와 표주박과 소박한 거리; 도시락과 표주박과 소박한 거리; 소박한 생활

그리 살고 싶었다.

그리 산다.

멧골의 바쁜 가운데 잠깐 얻어낸 틈, 망중한(忙中閑)이었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356 9월 5-8일, 방문자 오해령님 머물다 옥영경 2004-09-16 1655
6355 2006.2.11. 잡지 '민들레'로부터 온 메일 옥영경 2006-02-13 1654
6354 2월 2일 물날 맑음, 102 계자 셋째 날 옥영경 2005-02-04 1651
6353 2007. 5.25.쇠날. 맑음 / 백두대간 제4구간 8소구간 옥영경 2007-06-13 1645
6352 1월 21일 쇠날 맑음, 100 계자 소식-셋 옥영경 2005-01-25 1645
6351 4월 3일 해날 자박자박 비 옥영경 2005-04-07 1642
6350 5월 17일, 배움방과 일 옥영경 2004-05-26 1642
6349 2007. 3. 16.쇠날. 가끔 구름 지나다 / 백두대간 '괘방령-추풍령' 구간 옥영경 2007-04-02 1641
6348 2월 28일 달날 맑음, 물꼬가 돈을 잃은 까닭 옥영경 2005-03-03 1641
6347 5월 23일, 모내기와 아이들이 차린 가게 옥영경 2004-05-26 1641
6346 5월 12일, 물꼬 아이들의 가방 옥영경 2004-05-26 1641
6345 2020. 2.11.불날. 맑음 옥영경 2020-03-12 1640
6344 111 계자 여는 날, 2006. 7.31.달날. 장마 끝에 뙤약볕 옥영경 2006-08-01 1639
6343 39 계자 마지막 날 2월 9일 옥영경 2004-02-12 1639
6342 10월 18일 달날 흐림, 공연 한 편 오릅니다! 옥영경 2004-10-28 1637
6341 6월 21일, 보석감정 옥영경 2004-07-04 1631
6340 영동 봄길 사흘째, 2월 27일 옥영경 2004-02-28 1631
6339 11월 14일 해날 맑음 옥영경 2004-11-22 1630
6338 4월 14일 물날, 김태섭샘과 송샘과 영동대 레저스포츠학과 옥영경 2004-04-27 1629
6337 1월 11일 불날, 기락샘 출국 옥영경 2005-01-25 162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