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에서 이사 준비 중.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아비는 아들의 학교 앞에서 꽤 먼 직장을 출퇴근했다.

부모가 바르셀로나를 한해 가 있는 동안

아들은 혼자 저가 다니던 대학 앞으로 식구들의 짐을 꾸려 이사를 했다.

6년 대학을 마치고 서울의 한 병원에 자리를 잡고,

내일이면 아비는 직장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한다.

 

포장이사라 그리 할 일이 없다지만

아무리 이삿짐을 잘 싸주는 업체라 해도

제 짐은 자신이 잘 아는 법.

이사란 묵은 짐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떠난 자리가 너무 흉해서 들어오는 이가 지나치게 눈살을 찌푸리지는 않게.

이사하는 가운데 먼지 그득할 것이지만

외려 이참에 대청소.

한 공간씩 짐을 정리한다.

안방 욕실부터.

거의 쓰는 일이 없던 곳이라 놓인 짐도 별 없는 곳.

화장대. 널려있는 아비의 일일용품을 정리한다.

 

다음은 안방.

널려있는 책들은 서재 책꽂이로 몰고,

짐도 덩이덩이 종류별로 몰고.

베란다는 세탁용품들이며 바구니로 정리,

쓰레기통 곁의 비닐상자와 종이가방들은 버릴 것 버리고 남길 것 남기고 한 상자로.

거실은 거실장 위 먼지를 닦는 정도로만.

거실 화장실은 장부터 닦아내고 종류별로 모으고,

얼마 남지 않은 욕실 용품은 마저 쓰거나.

서재 베란다는 그야말로 이곳에 이사 올 때 쟁여둔 이후 거의 열어보지 않은 채 그대로.

여태 쓰지 않았다면 쓸 일 거의 없겠는.

그렇다면 확인만 하고 거의 버리는 쪽으로.

 

서재.

쌓인 짐들 헤쳐보고, 상자들이며 들여다보는.

집 떠난 아들 것들이 나오기도.

 

그리고 아들방, 그건 저 알아 하겠거니.

나중에 저가 와서 정리가 쉽도록만.

책상에 보이는 건 상자 하나로 정리.

오래된 서랍장을 버리는데, 그 안에 든 것은 종이박스에.

책꽂이와 책이야 그 상태로 옮겨질 것이니 손놓고.

 

부엌.

냉장고 정리, 음식 정리.

같은 종류들끼리 정리하고,

쟁여놓았던 비닐류들이며 나무젓가락더미며들 남기거나 재활용으로 보내거나.

부엌용품들 정리.

 

! 오늘 최대의 수확은, 바르셀로나 바닷가에서 사왔던 인디아 명상천이었다.

우리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일 년을 살고 돌아오던 짐이

무슨 컨테이너 화물도 아니고 여행가방 둘에 백팩에 든 게 전부였던 살림.

그걸 넣자고 다른 걸 분명 버렸을 것이다, 적잖은 초과수화물료를 내지 않으려.

그렇게 챙겨온 것이었거늘...

오래 아쉬워라 했던.

물꼬로 돌아온 짐에는 없었으니

대처로 왔던 짐 가운데 섞였거나 하고

몇 번이나 돌아온 짐들 사이에서 찾아보라 했지만 없다고 답을 들었던.

속상했다. 명상 공간에서 잘 쓰이겠다고 잘 여몄던 짐이라.

혹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들 편에 보냈던가 두어 명에게 확인을 해보기도 했던.

어째 그게 서재방 베란다 밀쳐둔 짐들 상자에서 나왔냐고!

휘령샘, 그 때 내가 찾던 그 물건 나왔으이!”

나왔으니 지나간 시간은 다 잊기로.

 

두엇의 이웃에게 인사는 해야지.

진즉에 집이 나가는 대로 이사를 가리라 말씀을 드렸던 바.

윗집은 비어있었다.

늦동이 딸아이가 있어 쿠키를 좀 샀는데,

쿠키를 헐어 먹고서야 아쿠, 현관에 걸어두어도 되었을 걸 아쉬움이 남았고,

옆집은 아들이 혼자 이사를 왔을 때부터

김치며 명절음식이며 때때마다 먹을거리들을 넣어주시고는 했다.

따로 마음 쓰실까 일부러 이사 가기 전날 늦은 시간에야 과일 하나 들여 드렸는데,

그 밤에 굳이 또 이 집 벨을 누르셨네.

잘 풀리라고 화장지를 사오셨더라. 온정이라.

아드님, 명의가 되라고 꼭 전해주시라고.

 

한 공간을 살아냈던 시절을 보내는 밤!

살고 보내고 살고 보내며 생을 건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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