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물날 맑음, 102 계자 셋째 날

조회 수 1646 추천 수 0 2005.02.04 23:11:00

2월 2일 물날 맑음, 102 계자 셋째 날

바람 맵기가 좀 낫다 싶네요.
죙일 바쁜 날입니다.
아이들이 계속 수강신청을 해야거든요.

'점자'방이 있었습니다.
아는 것이든 모르는 것이든
한 번 관심을 가지면 열심히 하는 동영이랑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 열심히 따라한 희주랑
학교이념도 쓰고 명함도 만들고
틀린 것을 스스로 찾고 고치기까지 하는
큰 언니 세인이가 함께 했다지요.
그들이 아이들 앞에서 점자에 관해 들려줄 때
모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눈이 불편한 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되었지요.
지혁 수민 순범이는 특히나 궁금한 게 많나 봐요.

달력은 현석이랑 인영이가 만들었네요.
청계천 7월의 모습을 담고
1974년 3월에 개통된 전동차도 담고
삼팔선은 6월에 담았더이다.
아주 아주 꼼꼼하게 그려진 아기자기 꽃밭도 있었네요.
현석이 참 웃긴대요.
어제는 그런 일도 있었다데요.
지나가눈 어떤 아이가 류옥하다 그림을 보고
"잘했다."
감탄했더래요.
그런데 류옥하다 겸손한 척(?) 했겠지요.
"샘이 도와줬어."
그때 곁에서 그림 열심히 그리고 있던 현석,
"도와준 건 진정한 자기 것이 아니야."
그런데 평을 하던 친구도 만만찮았던 모양이지요.
"내 느낌은 그래."
돌아서서 가버리는 감정자의 뒤통수에 현석이 낮게 읊조리더랍니다.
"진정한 예술도 모르는 놈"
이게 일고여덟 살들의 입씨름이라니까요.
현석이는 정말 아는 게 많습니다.
오만 때만 것 다 안다 그러지요, 이럴 때.
그런데 다른 이와 교통하는 데는 조금 서툴러서 아쉬워하고 있지요.

연도 날렸어요.
바람이 잘 도왔지요.
지원이 현서 호정 재현 성용이는
연을 만드는 걸 잊고는 대나무살을 가지고 노는 데 더 빠졌더라나요.
현서랑 재현이는 유달리 연 만드는 과정에 열심이더래요.
도움꾼으로 들어간 승렬샘은
살(대나무) 자르면서 자신이 더 신기했다고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었다며 재밌었노라고
여기 오면 늘 이렇게 배워간다 했습니다.

이번 계자는 또 한땀두땀의 열기가 뜨거웠네요.
쿠션바람이 불었습니다.
지혁 지운 현휘 영인 도윤 승은 지후 다원 덕헌 세영이 몰려갔습니다.
덕헌이는 해바라기모양의 쿠션을 만들려다 주머니가 됐다던가...

버스 값도 아끼느라 걸어다니시는 아빠를 위해
장갑을 만들던 대호는 이상을 접고
'한코두코'에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아빠 손목아대를 떴습니다.
그는 도현이랑 도훈이가 첨이란 걸 알고
옆에서 뜨는 법도을 잘 알려주데요.
도현이는 짜증 난대더니 할수록 붙는 속도에 재밌어라 하였지요.
영환이가 팔찌를 완성했고
지혜는, 지나갔지만 생신선물로
식당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뭔가를 완성한다지요.

가마솥방 난로는 자주 아이들을 놀래킵니다.
멀쩡히 잘 있는데 애들이 놀란대요.
연통이 뜨거울 수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겁니다.
보지 못한 풍경이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요새 연탄난로가 어디 흔할라구요.
그래서 '뚝딱뚝딱'에서 연통을 둘러싸는 대나무발을 만들기로 하였다지요.
성욱 순범 수민 정후 기환 세훈이
대나무를 쪼개고 송곳을 달궈 구멍을 뚫고 있습디다.
실로 연통을 재고 길이를 가늠하고
넣어야할 대나무 숫자를 계산합니다.
구멍이 잘 안 뚫리니 슬슬 무료함이 스며들었겠지요.
그럴 때 샘이 엄포를 놓습니다.
"점자 갈래?"
"점자 가지?"
아, 아니라고 손을 저으며 다시 하고 다시 했답니다.
처음에 '뚝딱뚝딱'에 사람 많다고 옆의 사람 적은 '점자'가라고 한 말이
나중에는 무기처럼 쓰였다지요.
저들 눈에도 점자공부가 꽤 지난해보였던 모양이지요.
샘이 하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샘이 슬쩍 놀립니다.
"이야 나뿌다. 열악하게 고생하는 옆 교실을 이용하야
저들 수업을 유지할라고..."

'실 다루기'에는 영석 수진 주현 류옥하다가 함께 합니다.
"다 나름대로 예뻐.
처음에는 어렵지만 익어지면 별 거 아냐.
잘못돼도 계속하면 알게 돼!"
도움말이랍시고 몇 마디 흘린 류옥하다는
일찌감치 제 것을 하고는 어제처럼 잡혀있을 세라 온 천지를 다니고
꾸역꾸역 세 녀석은 기어이 팔찌를 만들어
자랑스럽게 다니고 있더이다.

'다싫다'엔 우식이가 혼자 들어왔다지요.
"다싫다의 진수였어요."
새끼일꾼 무열이형이 그랬지요.
이것도 싫어요, 저것도 싫어요,
그래서 산책으로 끝냈더랍니다.
사실 설득하다 끝이 났다나요.

호떡 떡볶기 부침개 수제비 만두
그리고 '우아!'가 있는 보글보글방이 열렸습니다.
만두방에는 온갖 가지 모양을 빚는 재미에 신이 났고,
호떡방에선 애들끼리 묻고 답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왜 뒤집어야 돼?"
"한쪽이 타잖아."
"왜 눌러?"
"호떡이 눌러야 퍼지지."
세인이가 영인이를, 인영이가 세훈이를 챙기는 걸 보며
장가가면 꼭 둘은 놔야겠다고
호떡을 같이 부치던 승현샘이 결심했다는 후문입니다.꿀이 들어가지 않은 호떡이었다고 원
성이 높았는데
정작 자신들은 많은 걸 먹을 수 있었다나요.
넘들 생각한다고 먼저 만들어 먹였는데
다들 꿀을 계속 넣으라 해서 넣고 더 넣고 하다보니
자기네들 먹을 땐 정말 꿀호떡이 됐다고 세인이가 전했지요.
호떡이 젤 먼저 나와서 동네마다 돌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빨리 됐냐 누가 물으니
인화샘이 농담 한마디 던졌다데요.
"호떡집에 불났나 봐."
그런데 한 녀석 호떡방에 다녀오더니 너무나 진지하게 대꾸하더랍니다.
"선생님, 호떡집에 불 안났어요."

'우아'에서는 뭔가 우아한 요리 하나를 해보겠다 모인 모양인데
경단을 하자 하였습니다.
조막막한 녀석들이 모여 찰흙 빚듯 신이 났지요.
워낙에 손이 안가는(손을 덜 쓰는) 음식이라 여유만만입니다.
해서 아이들이 찹쌀반죽을 주물럭거릴 때
샘은 홍당무도 꺼내와 꽃 모양도 쓸고
귤이랑 사과로 경단 담은 접시에 장식도 합니다.
그때 승렬샘 지나가며 소리쳤습니다.
"우아!"
아, 그래서 우아였던 거였더이다.

수제비는 공을 많이 들였던가 봐요.
목이 빠져라들 기다렸지요.
감자를 많이 먹는 민족을 얘기하다보니 게르만도 나오고
독일 얘기가 꼬리를 무는데,
"그런 건 학원에서 질리도록 해요."
지윤이가 한 소리 쏘았다지요.
"그냥 나는 감자를 보니까 생각이 났어."
가끔 썰렁하고 순한 형길샘이 얼른 말을 주워 담았다나요.

보글보글방에서는 미리 챙겨도 꼭 다시 부엌에 필요한 일이 생기지요.
밀가루가 더 필요하기도 하고
뒤집기가 용도가 좀 다른 게 필요하든가,...
아이들에게 임무를 주면 기쁘게들 다녀오는데
여기서는 무어라도 하게 하는 힘이 있는 듯하다고 인화샘이 말하데요.

우리 가락 첫 시간은 첫날 저녁 민요를 부르며 보냈고
오늘은 탈춤과 풍물이 두 패로 나눠 놀았네요.
풍물은 날이 갈수록 칠 줄 아는 아이들이 많아져갑니다.
예전엔 처음 만져본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거든요.
제법 가락을 쳐대는 녀석들도 늘었구요.
탈춤에선, 안에 그린 동그라미에선 남자애들이 밖에선 여자애들이
한삼 대신 수건을 한 짝씩 들고 춤을 춥니다.
5분 쉴 때도 연습하고 있는 인영이를 보며
"처음은 쉬 눈에 띄지 않는데..."
참 노력하는 그 아이의 20년 뒤가 인화샘은 궁금하다 했습니다.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중에 아는 것을
할 줄 모르는 것과 할 줄 아는 것 중에 할 줄 아는 것을 선택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소개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해내는 아이들을 보았을 때 기쁨은 배가 되는 것!
그 때문에 끝까지 아이들을 놓지 못하나 봅니다."
들려오는 풍물 소리에 마음 울렁여 자꾸 콩밭에 가던 녀석들과
씨름하며도 멋진 춤을 잘 가르쳐준 현애샘이 한 말이지요.
펼치보기를 서로 하였는데
꼴새들이 제법입디다요.

아주 아주 작은 그림영화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수다가 없습디다.
"어떡해..."
잃어버린 꽃신에 마음이 짠한 누군가입니다.
"한 쪽 있잖아."
곁에서 또 덧붙여요.
"고무신이랑 한 짝씩 신으면 되겠네."
"짝 안맞으면 어쩌나?"
"스토리상 짝은 맞아야 돼."

한데모임에서 인영과 기환이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늘 책방이 문제지요.
어느 학교에서고 자주 듣는 얘기겠지요.
<새로운 공동체를 여는 이야기>에서였던가,
공동체로 사는 것의 한 부정적인 모습 가운데
예로 든 호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제자리에 있지 않고 널린 볏짚 사이에서 잘 발견된다는.
우리 인간은 정말 그렇게 생겨먹은 것일까요,
내 거는 챙기는데 우리 것이 되면 잘 안되는...
마음을 내서 책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해보자 합니다.
(잠자기 전 누군가의, 정리가 되어가더라는 중계가 있었네요)

방바닥의 유리 비스무레한 게 깨질까 걱정이라며
대책이 있어야겠노라는 안도 나왔습니다.
냉방에서 자야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문제가 많네."
여덟 살이 되는, 진주에서 온 수민입니다.
"나는 고향이 진주인네."
반가워라 하니 상대동 상봉동 칠암동 뒤벼리 다 나옵니다.
"신안동도 알아요."
"어, 나는 모르는데..."
진주 가면 저 집에서 밥 줄 수 있냐 하니 그러라 합니다.
배 운전하는 아빠랑 한의원 하신다는 엄마한테 상의 안해도 되려나...

보일러 문제를 남 얘기처럼 말하는 몇 아이도 있네요.
"우리 모두의 문제예요."
준비했나 봐요, 인영이, 얼마나 야물던지.
기환이는 그 대로 똘망똘망 잘 듣고 있습니다.
"남자도 말해 봐요."
꼭 남녀대결구도로 가져가는 녀석들이 있다니까요.
"(뛰면)설거지 당번해요."
덕헌이도 한마디 합니다.
(덕헌이는 생각날 때마다 집에 간다고 꽁무니를 따라옵니다.
그래, 가라 하지요.
어찌 가냐 하면 걸어가라 하지요.
그러며 제(내) 갈 길을 걸어가다가 돌아보노라면
어느새 저도(자기도) 제 갈 길을 갑니다.
아주 구색(빠지면 아쉬워 끼워 넣는 장면)이라니까요.)
"벌금 내요."
"개집에 자라 그래요."
"밖에서 열 번 뛰어요."
"샘 따라 나무해요."
정후도 화난 얼굴로 응징하자 분위기입니다.
도훈이도 질세라 소리칩니다.
"눈 청소 해요."
이쯤이면 어른들도 끼어들어
죄와 벌의 문제로 가지 말고 우리 마음을 바꾸는 문제로 보자는
시각 바꾸기 제안이 있지요.
"엉뚱한 얘기 좀 마십시오."
인영이는 적절한 자리에서 말을 끊기도 하며 주의를 줍니다.
"<어, 유리!>"라고 (잊어먹지 않게)붙여요."
류옥하다가 벌을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제안을 시작하자
예 제에서 툭툭 스스로 왜 우리가 그러지 않아야하는지를 헤아려
달리 살아보기로 하는 것이 결론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꺼냅니다.
호떡에다 꿀 좀 넣으라는 순범,
떡볶이에 오뎅도 추가해달라고 한 마디를 더 덧붙입니다.
우리 샘은 (모든 음식을 한 상에 차려지게 해서 먹느라)못 먹게 했다,
다른 방식으로 먹었으면 좋겠더라는 현서한테
"기다렸다 먹는 게 문제구나."
본질을 알려주는 순범이.
"아까 전에 먹고 있데."
재현이도 한 마디 합니다.
음식 만든 자리, 선생님 시키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같이 치우자고
진행자는 자리를 정리하며 한마디 내놓습니다.
한데모임이 감동이었다고 현미샘은 감흥을 어쩌지 못하였지요.

샘들 하루재기도 기네요.
"내가 하는 것하고는 (가르치는 게)다르구나,
이렇게 알려줘야지, 이렇게 가르쳐줘야겠구나..."
규모가 생기더라는 유상샘.
날마다 나무를 해 내리며 얽힌 얘기들을 전하는 승현샘,
"공포의 외인구단도 아니고..."
형길샘까지 오늘 들어와 두 무식하되 충직한 머슴(?)들 등쌀에
다른 남자샘들이 얼마나 힘을 썼을지요.
"주승이가 어떻다, 지원이가 어떻다, 현석이가 어떻다,...
우리가 얘기들을 하잖아요.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문제가 있다, 그냥 그런 거지요.
그걸 이미 나쁜 것으로, 옳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보는 시각,
그거야말로 문제가 아닌지.
못견디는 건 늘 자기 자신이지요,
자기가 그 꼴을 못보겠는 거지요."
이놈의 선생이란 작자들은 어떻게든 고쳐보겠다 뎀비거든요.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그건 이미 문제라는 시각에서 아이를 보는 거고
그걸 문제로 보는 건 자기 자신인데 말입니다.
그런 자신이 문제일 수 있다고 좀 보자 그런 얘기도 이 밤에 있었네요.
"나이 스물에, 마흔에 커다란 생의 전환을 만나기도 하더라."
사람 일 모르지요,
무엇이 와서 혹은 무엇이 내 안에서 나와서
우리 생이 다시 거듭나고 거듭나게 될런지,
다만 사는 겁니다.
다만 사랑을 키우며 그것을 보는 겁니다.
특히 버릇없다고 대여섯 살을 놓고 법석을 부리는 어른이라면
우리는 그 아이가 아니라 그 어른을 한 번 잘 보아야하지 않을 지요.
너그럽지 못한 그를.
(그 아이를 위해서 더한 사랑으로 자신을 너그러이 만드는 건
왜 방법이 되지 못하는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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