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쇠날 맑음, 100 계자 소식-셋

조회 수 1641 추천 수 0 2005.01.25 15:05:00

1월 21일 쇠날 맑음, 100 계자 소식-셋

아이들과 나날을 사는 일이 남긴 부스러기는
산이 되고도 남구 말구요.
웃고 또 웃으며 아이들 얼굴을 떠올렸더랍니다.

계자가 흐르는 동안 어느 시기가 되면 아이들이 샘들 나이를 묻는데
지나샘이 그랬다데요.
"맞춰봐라, 가기 전까지."
정확하면 마지막날 상품을 준댔대나 어쨌대나...
어느 날 여덟 살 경은이가 슬쩍 다가가 은근히 물었다나 봐요.
"방년 18세!"
지나샘이 낮은 목소리로 알려주었겠지요.
자기는 이제 알았다 비밀처럼 갖고 있다가
가끔 와서 확인하고 또 확인하더랍니다.
"몇 살?"
"열 여덟!"
그런데 이녀석 그 비밀을 누군가에게 발설까지 한 모양이예요.
큰 여자애들이야 대번에 장난 혹은 거짓말이라 했겠지요.
"에이, 진짜 열여덟?"
우리의 지나샘이 서른 넘은지 좀 됐지요, 아마....

석현이랑 재홍이는 무척 친했던 모양입니다,
꼴새도 닮은 것이.
무슨 일로였다나 재홍이가 집에 간다했대요.
"진짜 갈 거야?"
"글쎄..."
"아, 왜, 여기가 훠얼 좋은데(재밌는데)?"
"가지 마까?"
그러며 한 이불에 나란히 누웠더라데요.
그런데 이네들 마려운 오줌으로 동틀 무렵 잠이 깨서는
그 길로 잠이 달아나 도란거리고 있더랍니다.
"진짜 갈 거냐?...
대동놀이랑 다하고 잠 12시에 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대동놀이니까요.

승찬이는 엉덩이를 꿰매고 와서 내내 안달 났더랍니다.
다음주에 때 빼고 광내러 가야는데 못갈까 봐,
일주일 뒤에 풀라 했으니.
맨날 와서 물어봤대요.
당일 아침, 기어이 보건소까지 물어보러 갔다지요.
다행히도 샤워는 해도 된다했답니다.

마지막까지 그리들 믿었다데요.
아이들이 돈을 포함한 귀중품을 맡겼는데
그게 든 큰 물꼬 금고가 어디에 있는 거냐,
벨을 누르면 운동장이 열리며 목욕탕이 나온다는데
그 벨 어디에 붙어있냐,
바퀴벌레 우르르 나올까 장판을 조금만 들추어도 현정이는 난리가 났다하고,
보일러 유리 비스무레가 깨질까(아, 자주도 까먹지만) 살살거리질 않나,
선진샘은 한 바퀴 돌면 원더우먼으로 변한다는데...
부웅 뛰면 털 달린 괴물 바야바로 변한다는 승현샘을 자극하면 안돼...
그런데, 정말 아이들은 믿-었-을까요...

한 날 편지를 썼답니다.
주소를 쓰는 데도 애 먹었다지요.
하기야 손으로 편지 쓰는 그런 고전적인 일은
이제 좀체 발견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보내는 곳에다가 '보내는 곳'이니까
집 주소를 게다 써야 한다 우기기도 했답니다.
어찌 보낼 거냐,
하고 묻더라데요.
편지란 걸 보내본 적 또한 거의 없었겠지요.
아무도 안볼 때 우체통 뚜껑이 열리고
편지봉투에 날개가 달려 날아간다 했다는데,
우리의 재혁선수였나,
지키고 섰다 와서는
"아직 안날아가던데요..."
하더랍니다.

승호랑 나윤샘 선진샘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지요.
"아줌마!"
나윤샘이 장난으로 선진샘을 불렀습니다.
그때 승호도 그리 불렀다는데
나윤샘도 도매금으로 넘어가 호칭이 아줌마가 됐다데요.
그런데 나윤샘,
"원래 아줌마가 아니고..."
이름을 들려주려 하였는데 승호가 그러더랍니다.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느린 말투의 나윤샘,
자신의 이름을 끝끝내 승호에게 말해주지 못했다지요.

재홍이가 한턱 쏘았답니다.
돈을 주워서 경찰서에 갔는데
일년 동안 보관했다 주인이 없음 주운 사람에게 준다지요.
그런데 돈에 이름이 써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일년 뒤에 받을 것 미리 받으라 하였답니다.
부엌 반찬도 사고 애들 과자도 사서
그간 자자하던 원성을 한순간에 재웠다지요.

"여기 빨개요?"
"아니."
"그런데 쓰라려요."
하늘이가 버젓이 잘 있는 가마솥방 난로 연통에 데였습니다.
연통이 넘어진 것도 아니고
그냥 쓰윽 다가오며 그랬대요.
내참, 연통이 거기 있는 줄 몰랐다는 겁니다.

읍내 나갔던 날 아이들은 집에 전화도 하고
장도 보고 하였더라는데
돌아오는 버스에 맨 뒷자석에 앉은 석현의 무릎에도 장바구니 놓였더래요.
우연히 들추다가 빵임을 알고 그러더랍니다.
"웬일이다냐, 빵을 다 사고..."
경은이랑 경민이는 남매지요.
석현이랑 경민이는 더러 티격거렸는데
경은이가 쪼르르 달려와 경민이 편을 들었겠지요,
지들 형제끼리는 그리들 싸우면서도.
"아이('씨'자도 달고 싶었다? ), 형제면 다예요?"
편드는 경은이를 기도 안찬다고, 아님 억울하다고
복장 터져라 석현이 외쳤댑니다.

학종이 아시지요?
종이학을 접는 용도로 일반 종이접기 종이의 사분의 일쯤 되는 거.
어데서 그게 굴러다닌 모양인데
다 요따만한 딱지를 접어 그리 열심히들 놀았다네요.
금박이 너덜너덜 떨어질 때까지 말입니다.

쌀 곳간이 어이 어이 잠겼더랍니다.
갖은 방법도 소용이 없어 상범샘이 창문을 깨고 들어갔는데
승찬 주환이 재홍이 형준이가 따랐다데요.
목숨 걸린 일이니 얼마나 열심히 붙었겠어요.
창문 깨고 다투어 들어가서 문 따보고
왜 그랬나 열쇠로 열어보며 탐구하는데
그 하나 하나가 같이 학교에 오래 사는 애들처럼
너무나 진지했더라지요.

주환이 성진이는 내내 춤을 추고 다녔답디다.
주환이는
그가 오므로써 일가 아이들이 다 예를 다녀간다는데
은샘이 누나는 몇 모둠이었냐,
민정이 누나는 몇 번 왔냐,
끝없이 묻고 묻더랍니다.
3년 승찬이는 벌써부터 새끼일꾼 되겠노라 꿈을 다진다지요.
첫날 연극이 끝나고 정말 오길 잘했다던,
언니노릇까지 수진이랑 잘했던 소연이
(그리고 새끼일꾼 꿈도 키우고),
연극놀이가 정말로 유익했다던 유민이,
승호를 잘 챙겼던 그요,
그리고...
그래요, 수많은 일들이 있고 있었겠지요.
모두,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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