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는 흐렸고,

산에서는 흐린 속에도 멀리까지 산과 바다와 도시를 보았다.

곧 안개가 급하게 몰려와 산을 덮쳤다.

전국에 내린다는 비 대신이었다.

울산바위에 올랐다.

울타리처럼 생겨 울산이라고도 하고, 우는 산이라고도 하고,

전설에서 금강산으로 가던, 울산 지역에서 오다 주저앉은 바위라고도 하는.

사계절 내내 사람이 많아서도 피하게 되거나,

멀리서 이곳만을 목표로 오기는 무언가 아깝다 할 수도.

단풍이 눈부실 것이나 번잡함을 이길 재간이 없어 눈 찔끔 감지만,

가을 아니어도 바위가 이미 계절이라.

산오름이라고까지는 말하기가 멋쩍다 싶지만

바위 보는 것만도 넘치게 벅차다.

대청봉 아니어도 울산바위만 가고도 설악산 다녀왔다 손색 없을.

 

한동안 잘 살았다. 머무는 곳이 내 집이라.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나섰다.

백담사 아래 인제 용대리에 들어 열흘 가까이 머물렀다.

황태덕장에서 이레를 일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났고 아이들을 만났다.

숙소까지 찾아온, 오늘 울산바위 가는 길에 동행하겠다는 이들 있어

같이 설악동으로 넘어가다.

 

설악소공원-신흥사-(안양암)-내원암-계조암(흔들바위)-울산바위/ 3.8km

왕복이래야 7.6km의 짧은 길.

하여 오늘은 절집의 대웅전과 산신각을 다 들여다보리라 하였네.(안양암은 빼고)

설악산을 오가도 신흥사 대웅전에 들어서는 일은 없었다.

신흥사 청동좌불상만 해도 불상을 제대로 쳐다본 적 드문.

오늘은 그 아래 있는 법당에도 들다. 그러니까 부처 몸속에 있는 법당.

불상 뒤로 돌아가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흔들바위가 있는 계조암에서부터 울산바위에 닿는 1km는 가파르다.

흔들바위까지만 다녀가는 이들도 적잖다.

울산바위는 둘레가 4km에 달하고 해발 873m의 수직 암릉.

흙길, 돌계단, 나무계단, 철계단들을 밟고

아래 전망대 바위에 앉아 미시령을 볼 적

안개가 급히 달려왔다.

미시령터널이 숨고 멀리 바다가 사라지고 속초 시내가 잠기더니

안개는 대청봉 중청 천불동계곡 서북능선을 삼켰다.

쫓겨 정상 전망대 바위로 갔다가, 바위를 감싼 데크를 따라 걸어가 맞은편 바위를 잡힐 듯 보고.

내 다 보여주었노라, 쳐버린 장막처럼 그렇게 안개 덮쳤다.

가란다.

내려왔다.

전망 좋은 산도 좋지만 잠긴 산도 산에 스며든 듯하여 그도 좋다. 

 

내려오다가 어디께 바람을 등지고 앉아 소리 한 자락.

올라오던 외국인 친구가 물었다.

혹시 노래 그대가 부른 거냐,

바위를 배경으로 들리는 소리가 마치 스타디움 공연 같았다고.

그래서 '소리'(판소리 따위)가 좋다.

악기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니, 내 몸이 악기이니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요새 연습하는 육자배기 한가락.

 

권금성에 올라 한눈에 다 보던 울산바위였다.

확대한 화면처럼 그 속으로 걸어간, 

아니 바위 안으로 용궁 가듯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

마등령에서 산그림자 너머로 울산바위에만 닿던 햇살이 잊히지 않기도.

거기만 햇살 닿던 곳이 여기였나니.

눈에 띄게 좋은 소나무가 많았다. 아직 꽃이 닿지 않은 높은 봄산이어 더할.

산오름이라기보다 나들이라고 할 산길이었다.

 

속초에서 바다를 내다보며 물꼬 바깥식구들 만나 조개찜을 먹다.

바닷바람이 아직 매웠다.


설악에 깃들어 아흐레를 보내고 떠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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