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바람이 거칠었고, 종일 그러했다.

오후에 내린다던 비였고,

그래서 서둘러 햇발동 이불 두엇 빨아 널고,

학교에서 달골로 몇 그루의 나무를 옮기거나 묘목을 심기로 한 오전이었다,

그래도 멧골의 일이란 늘 넘치기 마련이라

오후 한가운데까지는 가겠구나 짐작은 했는데,

몇 시?”

“520!”

어두워 불편해지지 않을 즈음에 삽과 괭이와 호미를 씻었다. 7시였다.

세 차례의 밥상만 있었고, 참은 없었다.

움직임이 빠듯하기도 했고,

물을 챙기거나 할 만큼 갈증이 심하지도 않은

일하기 참 좋은 날이기도 해서.

아주 잠깐 몇 방울 지나는 듯하는 걸로 그쳤고,

다저녁에 가서야 옷의 겉이 젖도록 내렸다.

마지막 옮긴 나무인 소나무를 심을 즈음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 셋이 일했다.

읊어보자.

가마솥방 앞 모과나무와 소나무와 자목련,

20년은 족히 된 것들이라 뿌리가 얽혀 패 내느라 시간을 꽤 들였다.

책방 앞 모양을 한껏 낸 커다란 연산홍,

컨테이너 앞 운동장 가장자리 쪽 산수유,

가식해 두었던 백남경화 홍남경화 여섯, 보리수 하나, 산딸 둘 패고,

 

학교에서 옮길 나무를 팰 적 그사이 달골에서 톱질도.

아침뜨락 미궁 자리 남쪽 측백울 가운데 하나,

여러 뿌리 가운데 북쪽 가지가 말랐기 잘라내고,

아가미길에 있던 겹벚꽃 죽어버린 본가지 잘라내고.

그러는 사이 여러 차례 차가 오갔다.

큰 뿌리는 하나씩 옮겨야 했으니.

비가 든다고는 했으나 아직 볕 남고 바람도 좋았기

서둘러 햇발동 이불을 두엇 더 빨아 널고.

 

채울 곳은 채우지만 때로 비우고,

나무의 제 성질도 잘 살피고,

곁에 있는 나무와 조화롭기,

심는 일도 일이지만 여러 차례 돌며 자리를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얼마든지 옮겨 심을 수도 있을 것이나

이왕이면 오래 제 자리가 되어 제 삶의 뿌리를 든든히 내리게 하고 싶었으니까.

나무들이 달골에 자리 잡은 이야기도 열거해볼까.

명상돔 동쪽으로 옮긴 모과나무와 모과나무 묘목,

서쪽으로 옮겨온 연산홍, 북쪽으로 수수꽃다리묘목.

묵정밭 가장자리 개나리 울타리 남쪽 끝에 보리수 묘목과 옮겨온 산수유.

사이집 들어오는 경사지로 백남경화 셋 묘목, 홍남경화 셋 묘목.

도라지밭 가쪽 철쭉울타리 끝으로 나란히 옮겨온 자목련.

산딸나무 묘목 둘은 아침뜨락의 한 바위에 이미 자라는 산딸 곁으로,

나머지 한 묘목은 감나무 있는 둔덕에.

능수홍도 한 그루는 아침뜨락 옴자의 눈썹 시작점,

지리산에서 거제도에서 그리고 달골로 와서 그만 죽어버린 단풍 대신에.

아고라 남쪽 가장자리 뽕나무와 뽕나무 사이로 겹살구 묘목 둘 심고.

아가미길 남쪽 끝의 둥근 향나무 곁으로 나란히 명자 묘목 둘,

광나무 시들거나 얼어버린 자리로.

마지막으로 옮겨온 소나무가 자리를 잡았다.

미궁의 너르고 편편하고 여유 있음을 해치지 않고

밥못에서 내려오는 계단 곁 경사지로.

뿌리를 많이 잘라 옮긴 대신 그만큼 잎을 많이 손질해내다.

 

비에 쫓기고 어둠에도 내몰려 마을로 내려섰다.

열흘 개두릅(엄나무순)이라고 열흘 잘 갈무리해서 먹을 엄나무순이라.

보은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데쳐 간장과 마늘로만 무치고, 부침개를 하고,

두릅도 몇 들어와서 데쳐내 초고추장과 내고.

낮에는 숙주와 달래를 고명으로 국수를 내고.

그렇구나, 봄이더라!

 

모자가 젖었다. 묶은 머리는 꼬랑지만 물기가.

옷도 겉만 살짝 비 앉았다.

옷이야 빨래통으로.

지난 불날 찾아온 담을 아직 보내지 못해 뻐근한 갈비뼈.

그래서 씻는 것에 좀 게으르기도.

머리는 그냥 말려야지 해.”

식구 하나가 말렸다.

오늘 황사비였다고, 난리였다고.

, 그런 줄도 모르고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그저 나무 패 내고 심느라

목이 왜 이리 따가운지 눈은 또 왜 이리 따갑나 그러고 있었더니만.

늦게야 머리를 감는 밤.

집이 들썩이는 바람천지 멧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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