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 5.불날. 맑음

조회 수 390 추천 수 0 2019.12.28 23:58:03


 

자주 보는 사람보다 오래 보는 사이가 좋다,

올해 지어진 인연 하나가 보내온 문자였더라.

 

제습이 뒤로 같은 진돗개 뱃속의 형제가 또 한 마리 온 것을

가습이라 이름 짓고도 마음이 아직 흔들리는 거라.

제습이랑 발음이 자꾸 헷갈려.

가섭이라 불러보는 오늘.

제습이는 오전에, 가섭이는 오후에 산책,

끈을 묶어서. 아직은.

내일은 둘이 같이 데려가 볼 참.

 

학교에서는 본관 앞 꽃밭 나무 둘레 풀뿌리들을 패고 있다.

달골에서는 08시 빨래를 시작으로

사이집 뒤란 화로에 불을 피워 종이며 태울 수 있는 것들을 넣는다.

불과 몇 발 사이로 사방에 나무들 둘러친 멧골이라 지키고 섰다.

그러자니 여기저기 사이집 마당 청소거리가 보인다.

현관도 쓸고 닦고, 자잘하게 날려 온 마당의 쓰레기들을 줍고,

걸리적거리는 돌들을 치우고,

울타리로 세웠던 대나무를 탕탕 소리 나지 않도록 잘 꺾어 화로에 넣는다.

세웠던 애씀을 생각하면 다음 걸음이 쉽지 않은 일들이 한둘일까.

굴삭기 오가는 가운데 대나무 울타리를 치워두고

그 자리로 돌담을 쌓을 생각을 하고 났더니

울타리가 한해도 안 돼 쓰레기가 되었더랬다.

애를 쓴 게 아까워 그 자리로 다시 세울 일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적어도 반영구적일 수는 있도록 일을 하면 좋으련,

그때 그때 사정이란 게 또 있지.

보낼 건 보내는 대로 편안히, 오는 일은 또 오는 그대로 편안히 받기.

 

금세 정오다.

얼른 손풀기 잠깐 한다.

피아노를 열심히 쳐보던 때처럼 하루 5분은 연필이 떨어지지 않게 하자 해놓고

두어 달 만에 게으름이 일었던.

세상에! 한 주가 그냥 훌쩍. 일상에서 그 5분이 쉽잖은.

5분을 지켜내는 이들의 훌륭함이여!

 

늦은 오후 아침뜨락에 들어서서 괭이질 좀.

달못 아래 수로에서 아고라까지 벽돌을 놓을 길을 팠다.

아침뜨락 들머리 감나무 아래에서부터 옴자를 지나 수로까지

벽돌 길을 만들었고, 거기서 다시 이어진 길.

파고 두드리고 풀을 뽑고 고르고 다지고,

그 다음에야 벽돌을 놓을 테다.

편편하게 놓은 벽돌 위로 다시 흙을 채우고 쓸고 다지고 할.

괭이 든 걸음에 사이집으로 가는 길에

울퉁불퉁 발에 채이는 돌들도 파내고

도라지밭가 길바닥도 긁고 자갈돌을 추렸다.

 

한 청년의 삶 고르기.

정작 본인보다 여전히 엄마가 더 애가 타고 있다.

“1학기에 F3개 나오고 휴학을 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다 잘 안돼서 친척이 데리고 있어 보겠다더니 힘들어한단다.

가게라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일진대(대개 그렇지만)

아이가 말이며 용모며 사회생활이며 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서 고민이라는.

물꼬에 와서 집중치유를 하는 시간을 가지면 또 얼마쯤은 되더니만...

습을 만드는 건 또 얼마나 지난한 일이더냐.

우리 아이들 참말 우리 부모들의 공부거리여요.

 그것들이 없으면 우리가 얼마나 오만하겠어요!”

얼굴을 보지 못할 땐

이곳에서 지침 혹은 조언이라고 두엇 주는 것 말고는

기도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네...

어떻게 그의 자립을 도울까 궁리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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