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계자 이틀째, 2006.8.8.불날. 맑음

조회 수 1607 추천 수 0 2006.08.11 19:28:00
112 계자 이틀째, 2006.8.8.불날. 맑음


샘들이 어른 아침모임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더니
이미 아이들은 이불 개고 청소를 하고 있더라지요.
해를 건져 올리는 세 마당은 크게 바뀌지 않는 계자의 아침 풍경입니다.
첫째마당에는 요가로 몸을 풀고
둘째마당에서는 깊이 바라보기를 하며
셋째마당에선 학교 큰 마당에 널린 일과 산책으로 세 패가 나눠졌지요.

사물을 오래 응시하며 그 모양을 종이에 옮기는 손풀기를 끝낸 아이들이
열린교실을 위해 모였지요.
참, 손풀기 뒤엔 지우개가루가 그 시간의 애씀만큼 떨어져 있는데,
지윤 민지 지은 규연 호연 정록이 새끼일꾼 소연이형님을 도와
발에 버석거리는 게 없도록 비질을 해주었더랍니다.
“뭘 할까요?”
처음 새끼일꾼 역에 발을 들인 소연이는
시간과 시간 사이, 혹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떨어진 일이 없는 시간에도
자신을 어떻게 쓸까 물어가며 잘 움직이고 있답니다.
그 아이를 또 얼마나 성장시키는 계자일까요.

열린교실, 몇 나라의 노래와 놀이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소마이에(Haji Somaiieh)가 진행하는 이란 노래,
머뎃(Tairov Medet)이 여는 키르기즈탄 노래,
마미와 마키(Sakata Mami, Umezawa Maki)가 맡은 일본 노래,
칠르(Li Qile)가 가르치는 중국 노래 교실이 있었지요.
열린교실을 닫을 무렵 고래방에 모인 모두는
객석에 불을 끄고 무대 조명만 켠 채 서로에게 펼쳐보이기도 하였답니다.
이란의 ‘귀여운 알리사’놀이는 많은 아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안과 밖으로 동그라미를 두 개 만들어 그 손이 끊어질 때까지 춤을 추며 노는 놀이입니다.
한 원은 오른쪽으로 한 원은 반대쪽으로 노래를 부르며 도는데
차음 그 속도가 빨라져갔다가 다시 느려지고 다시 빨라집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과도 금새 한 자리를 만들며 흥에 겨울 수 있는
이란의 한 풍습을 만난다 싶데요.
주연 성재 예슬린 보민 동연 규식 지윤 여정민이 함께 했답니다.

‘카이다슨’은 너는 어디에 있니 라는 뜻의 키르기스탄 노래입니다.
사랑을 노래한 대중가요로
우리가 함께 봤던 꽃들은 어디에 있니,
가을에 낙엽이 떨어져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걷는 거지요, 라는
노랫말들이 담겨있습니다.
가은 종훈 기완 승엽 은비 다온이 키르기스탄말로 간단한 인사와 소개하는 법도 배웠네요.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말의 리듬을 만나는 자리였지요.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나라라
러시아, 그리고 러시아와 국경을 나누고 있는 핀란드 느낌이 물씬 나는 노래로
아이들이 짧은 시간 배우기엔 좀 길었으나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여서 우리를 흠뻑 젖게 하였답니다.
머뎃은 이 노래와 전통가요가 담긴 음반을 물꼬에 선물로 주기도 하였지요.

우리들이 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본 아이들이 나누는 ‘쎄쎄쎄’도 배웠지요.
미국 텔레비전의 유명한 어린이 프로그램인 ‘바니와 친구들’에 나오는 노래로
근년에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불리는 ‘팽이’입니다.
일본에서는 ‘아르푸스 이찌만자끄(알프스 10,000높이)’였지요.
마미와 마키의 친절함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간 강좌였답니다.
하지만 끝까지 남은 건
현진 예지 정우 기환 민지 채영 성준 예슬 지은 진웅이었네요.

‘벌처럼 열심히 일하라’는 중국의 동요는
놀이를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날아다니며 놀다
노래가 끝나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이가 과장되게 때리는 시늉을 하고,
그렇게 짝을 바꿔가며 돌고 도는 놀이였지요.
대호 정환 기환 최정민 은기 혜원 정록 한슬 성수 규연이가 들어갔습니다.

‘평화’라는 추상적 낱말이 ‘행위와 형태’로 전해지는 작은 공연 속에
그만 맘이 울컥하였지요.
지구 위 서로 다른 곳에 살면서도
우리는 인간 일반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공유점들이 있습니다.
타문화를 만나고 있으면
(특히 어린 날의 놀이야말로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잘 없지요)
사람살이의 비슷함에 정겹고 또 놀랍고는 하지요.

교실이 별 흥미가 없었던 녀석들은
잠자리를 잡고 개구리를 좇아다니고
염소에게 풀을 뜯어다 멕이고
(교실이 일찍 끝난 예슬린 지은 주연이는
열심히 풀을 찧고 빻으며 염소 사료를 개발하고도 있었지요)
더러는 축구도 했네요.
그것은 그것대로 교실 안 못잖은
타 존재하고의 만남 속에 배우는 시간이었을 겝니다.

“저기 가서 해봐요.”
우리가락시간이었는데요,
장구가락을 고르고 있었는데요,
아이들이 무대를 손가락질 하며 우르르 객석으로 가서 앉습니다.
허허, 이번 애들은 또 희안한 풍경입니다.
판소리도 그렇습니다.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먼저 해보세요.”
그래서 조명 켜고 무대에서 공연 한 판으로 시작했지요.
아리랑타령을 배우고
판소리를 서너 줄만 하지 했는데,
그 열의들이 어찌나 대단턴지, 결국 마지막 소절까지 아이들은 소리를 받았더랍니다.
풍물이야 입장단 손장단으로 실컷 하고 났더니
실제 악기를 만지는 일은 일도 아닙디다려.

요리는 또 얼마나 훌륭한 공부인가요.
‘감자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들여다봅니다.
재화는 야물게 달걀을 까고
주연이는 열심히 야채를 다지고
지은이와 예슬린은 감자를 곱게 으깨고 있습니다.
성수는 어쩜 그리 단정하게 칼질을 하는 걸까요?
“집에서 많이 해봤니?”
“아니요.”
“그런데 그렇게(왼손으로 야채를 잘 쥐고) 하는 걸 어떻게 알았어?”
“계자 왔을 때 여기서 배운 거예요.”
그런 성수에게 재화는 물어가면서 칼질을 하였지요.
“이렇게 하는 거야?”

기름이 튈까 겁도 내다가 끝말잇기를 하며 즐거이 감자를 후라이팬에 굴리고 있는 이들은
혜원 가은 지윤 채영 동연 규식 예슬이었네요.
이름하여 ‘감자구름’이었답니다.

한슬 준홍 준오 승엽 세훈 기환 대호는
숨꼬방에서 엄청나게 얼음을 갈았다 합니다.
남들은 아직 시작도 않았는데 팥빙수를 만들어 일찌감치 돌리고 있었지요.
집안이야기, 특히 아이스크림에 얽힌 이야기들로 한참 수다를 떨었다네요.
나눔과 배려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던 이들이었답니다.
이곳에 와봤던 아이들이 먼저 만들어놓은 분위기도 있었겠습니다.

민지 최정민 호연 규연 지수 세훈 보민 은기 여정민이는
감자핏자를 만들었습니다.
살구나무 아래서 물꼬의 감자밭 이야기를 들은 뒤
장을 보듯이 가마솥방으로 가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지요.
민지와 호연이는 감자를,
세훈 지수는 양파를 칼과 가위로 잘게 썰고
정민 둘과 규연이는 삶은 감자 껍질을 벗기고
보민이는 밀가루를 풀어 반죽을 하였다나요.

성재 정우 종훈이는 뒤란에서 감자비빔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샘이 손을 베였다네요, 조금요.
“선생님은 쉬세요, 저희가 다 할게요.”
정우는 타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득 찬 아이랍니다.

감자부침개는 고요하기까지 한 시간이었지요.
소연이형님과 류옥하다는 열심히 믹서기를 돌리고
예지랑 형진이 지원이는 강판에 감자를 갈았으며
저는 곁에서 열심히 부쳐냈네요.
어느 흐린 날
마당을 내려다보며 마루에 식구들이 모여앉아 도란거리듯 자분자분 보내다
나온 부침개에 삼잎국화로 장식을 해 다른 모둠에 돌렸답니다.

보글보글에서 나온 산더미 같은 설거지에 샘들이 함께 있을 때
보민 은비 여정민 다온이가 저들끼리 빨래를 걷어왔습니다.
딸래미들이 뭐가 나아도 낫다니까요.
아, 딸 키우고 싶습니다.
아니면 뭐 아들을 딸처럼 키우고 싶지요.
대동놀이를 다녀와 소연과 여정민이 여자 아이들의 샤워를 도왔습니다.
아무리 봐도 딸아이들 키우는 맛이 다르겠습니다요.


'IYC 캠퍼'들은 아이들이 보글보글방을 열 동안
정운오아빠랑 600여 평에 이르는 달골 콩밭에 들었습니다.
‘물꼬가 만드는 새 물결’(Mulggo Makes a Way for a New Stream)에 대한 관심으로
단지 계절학교에서의 문화 나눔뿐 아니라
물꼬생태공동체가 꾸려가는 삶도 경험하고픈 그들이었지요.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어요."
뙤약볕 아래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쓰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새참으로 나온 막걸리도 한 잔 걸치고
나름대로 산골살이에 취한 좋은 하루였다 합니다.

어둠이 내리는 다리 밑 울돌목에선
해전이 벌어졌습니다.
물에서 하는 대동놀이였지요.
족대를 들고 나가 우르르 고기를 몰기도 하다
(정록이는 정말 고기잡이를 사랑하였지요)
어느새 두 패로 벌어진 물싸움이었습니다.
여자들이 밀리니 소연이형님이며 멀찍이 구경만 하던 이들이 지원군으로 뛰어들고
우리는 다리가 들렸다 다시 놓일 만치 함성을 지르며
여름 저녁을 즐겼더랍니다.

캠퍼들 가운데 ‘칠르’는 특히 교육에 관심이 많고
물꼬에 대한 많은 이해를 가지고 왔습니다.
점심 때건지기에서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여러 대안적인 학교에 대한 이야기들로 시간가는 줄 몰랐지요.
힘이 되데요.
게티스버그(미국)에서 멀잖은 ‘헌드레드 폴드 팜’이라는 공동체에 머무를 적
지구 반대편에 살며 한 번도 교류했던 적이 없던 서로가
너무나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계획을 가진 것에 놀라
밤새 울며 서로 감동에 젖어 날밤을 새웠던 적이 있었더이다.
때로 ‘이해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표면적이고 사실은 ‘이해’란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싶다가
또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을 통해
이해를 동반하고 있다 여겨지면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아지지요.
일정들 사이사이 얼마나 할말들이 많았던지요.
이네와 짧으나마 좋은 교류가 될 듯합니다,
아이들 못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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