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쇠날 맑음, 101 계자 다섯째 날

조회 수 1607 추천 수 0 2005.01.31 01:50:00

1월 28일 쇠날 맑음, 다섯째 날

무지 내린 눈도 푹한 날에는 장사 못되지요.
바람도 없는 날입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도 죄 녹았네요.
길 양쪽으로야 수북합니다만.

이른 아침부터 임시한데모임이 있었습니다,
야단난 책방 때문에 엊저녁 한데모임이 길었지요.
책방 문을 닫아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았으나
누군가가 알아서 정리를 하고
낼 아침 책방을 어찌 쓸까 다시 얘기나누기로 했더랍니다.
어른 일터에 잠시 들렀다 대동놀이 하러 가는 길,
얼마나 정신이 없길래 그러나 싶어 들여다 보는데,
어, 훤합니다.
경표와 현재, 숙희샘이 책 정리를 하였더랍니다.
마음을 내는 이들이 늘 있지요.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이들도 신선한 아침엔 자신의 문제가 되어
얘기가 많고 많습니다.
"이제 처음처럼 깨끗해졌으니까"
시작했던 그 처음처럼
방을 쓰는 법을 다시 익히고 일단 열어보자 얘기를 모으게 되었지요.
다만 제가 뽑은 곳이 어딘지 모르기도 한다 하니
끼워둘 큰 책갈피를 마련하기로 하였지요.
또 안되면 그건 안될 때 얘기인 게지요.
산뜻한 해결입니다.

다음은 '나무'하는 문제가 안이었습니다.
나무가 무지무지 들어간다,
이번에 우리 쓰겠다고 나무를 하긴 했다,
그런데 지난 번 계자 아이들이 우리를 위해서 나무를 했다,
우리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하자,...
하루죙일 나무를 해야한다는 류옥하다의 말에
두엇을 빼고는 너무 많은 희생이지 않냐,
그리고 절대 할 수 없다는 이들도 있어,
한다면 나절가웃 시간을 내보기로 하는데는 합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민재와 한결이, 끝까지 열린교실을 포기할 수 없답니다.
효빈이도 정원이도 청민이도 꺾지 않습니다.
대세가 나무 하지말자로 기우는데
의리의 원석이, 꿋꿋하게 굴하지 않고
(그는 첫날 방청소를 할 때도 끝처리까지 스스로 갈무리를 잘 하더랍디다)
몇몇과 나무 하자에 손을 번쩍 들어올립니다.
결국, 열린교실을 그림놀이와 바꾸기로 하는 절충안이 나왔지요.
"도시에서야 불이 나거나 물이 끊기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여기서는 물이 안나오면 얼음 깨고 물을 나르고 한다,
계자를 온 아이들이 그랬습니다...
당연히 하는 거지, 의논의 지점이 아니라..."
저녁에 상범샘이 아쉬워라 하데요.
"애들이 옛날과 지금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애요."
기표형아는 늘어난 '이기'라고 씁쓸해합니다.
"애들이 가는 쪽으로 몰면 가는데..."
그래요, 나무를 하러 가는 쪽으로 밀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게 다 뭘까요.
어떤 일이란 게 그렇습디다,
진행하는 어른이 스스로 열고 있는 게 중요하다 싶어요.
꼭 지금 긍정적이다 싶은 쪽으로 가겠다는 게 아니라,
아주 이기적인 결론을 냈더라도,
그것도 얘기를 통한 결정임을 일단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그 결정이 다가 아니지요,
훗날에, 먼 시간 뒤에 불현듯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말고...
우리가 다른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도 의미 있고,
어른의 의도대로가 아니라
스스로들의 동력으로 의견을 조율해보는 것도 가치 있고,
주제에 관심을 놓지 않고 지난하게 생각하기 말하는 것으로도 중요했지요.
생각이란 게 늘 자기 넓이 안에서 다니던 길로 가기 쉬운데
다른 길을 내보려고 시도하는 거,
그런 것으로도 충분한 것 아니겠는지요.
한 시간이 넘는 지독한 말하기만으로 훌륭했지요.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가기로 하고 나니 뭐 담백하게 오릅니다.
포도나무 베고 넓혀놓은 산 아래 밭에서
눈싸움부터 한판하고
어떤 방식으로 나무를 내릴까 의논했지요.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나무를 아래로 보내기로 합니다.
나무 하나씩 문장 하나씩이 함께 전달됩니다.
그 문장은 이어달리기처럼 한 이야기로 모여 동화가 되었지요.
아이랑 엄마랑 하는 기차여행,
아버지의 사고, 병원에 온 손님들,...
아, 일을 놀이로 하는 게 이런 거구나,
숙희샘은 그러데요.
말이 같이 내려올 땐 말 전하느라 불평을 안하는데
이야기가 없어지는 순간부터 투덜대기 시작하더라고,
참 희안하더라는 남경샘의 얘기도 있었습니다.

경표랑 류옥하다는 친척임에 틀림없답니다.
힘이 그리들 좋다지요.
눈을 치울 때도 나뭇단을 안을 때도 한 짐씩을 하더랍니다.
위에서 내려온 나무들이,
아래 있는 줄은 서로의 간격이 넓어
어느 순간부터 흐르지 못하고 쌓였다지요.
게다 투덜이들이 톱질패로 가버리고나니 간격은 더 넓어졌지요.
그런데 경표가 자기 자리를 벌려 이만큼을 왔다 갔다 하면서 끝까지 하더랍니다.
"같이 아이를 키워도 어떤 놈은 저리 크고..."
그러게 말입니다.

나무가 쌓이니 위에서 큰 형님 영운이가 내려왔더랍니다.
자기가 봐도 힘들어 보이니까
위로 올라가서 얘기를 해볼 거라고 갔는데
전달이 어째 흐지부지 됐는지,
별 달라지지 않았다지요.
그런데 자기가 내려와서는 빈자리를 채우더랍니다.
영운이,
드세다고 엉덩짝을 때리던 아이입니다.
올 때마다, 와서 날이 갈 적마다,
그 아이가 얼마나 부드러워지는가를 보지요.
고맙습니다.
그가 고맙고 이 곳이 고맙습니다.

새참을 먹었습니다.
스스로 일을 열심히 했다 싶은(남의 평가가 아니니 누구도 말할 것 없는)
이들부터 주욱 서 보라는데,
(왜냐하면 가래떡을 굽는 시간이 더뎠거든요)
뒤에 섰던 아이들이 뭐 괜찮답니다, 더디 먹어도.
그런데 보글보글방에서 자신이 하고도 제대로 못챙겨 먹었다던
찬슬이부터 앞에 세우는 아이들입니다.
같이 일을 하는 게 그런 거데요,
서로를 보는 거예요, 뭐랄까, 동지애 뭐 그런 걸 갖는 게지요.

어제의 우리가락이 오늘은 보글보글로,
어제의 보글이들은 오늘은 가락으로 갔습니다.
호박전과 호떡을 부치고 구웠네요.
숙희샘은 무작정 했던 어제의 실패를 딛고
미리모임에서 방향을 알려준대로 얘기를 나누었답니다.
어제 얻어먹은 게 있고,
줄 때 어떤 걸 줄래,
집에서는 식구는 안좋은 것 먹고 손님한테 좋은 것 주지 않느냐,
그런데 정말 그 반응에 놀라셨다지요.
좋은 것 다 주고 못난 것들 먹으며 기뻐하는...

열린교실,
아이들이 그토록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입니다.
국어, 영어, 숙학, 자연(과학), 미술, 음악, 도덕, 체육, 사회, 실과, 특별반,
오늘은 전 교과를 다 열었지요.
물꼬 상설학교 공부법과 분위기부터 전했습니다.
수준이 다른 학년이 어떻게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가,
질문이 있는 이가 조용히 샘 앞으로 오면
다음 이는 그것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서로를 위해 침묵하는 일,
교과통합,...
그래서 방에선 숙희샘과 남경샘이 자리를 잡고
밖에선 나머지 샘들이 장작을 팼지요.
용균이 하나 수학을 신청했고(곧 스스로 포기해보렸지만)
거의가 실과로 모였습니다.
바느질과 뜨개질에들 뎀빈 게지요.
공간이 밖인 경우엔 교무실로 오라합니다.
재홍 재우 현수 창욱 경표 태준이 체육이라고 왔습니다.
하나만 약조를 하고 가라했지요.
혹 사고가 나면 나머지들이 다친 이를 지키고
누군가 바로 달려와 소식을 전할 것.
돌아올 시간을 주려니 아무도 시계가 없습니다.
어둡기 전에 오라하지만 놀다보면 혹 모른다 싶어
살짜기 엄포를 놓아봅니다.
끝끝내 돌아오지 않은 개구리 소년들 얘기를 들려주었지요.
(이들이 가서 하고팠던 게 개구리 잡이였던 거디었다!)
현수가 얼른 말합니다.
"창욱이 돌봐줘야지."
그리고 나서는 아이들 뒤에서
"야, 두 사람씩 손 잡아."
복도에서 다시 들려오는 소리,
"야, 준비물부터 챙겨!"
시간이 흐르고 은근히 긴장이 됩니다.
그런데 벌써들 돌아와 있다는 겁니다, 20여분만인가.
바위 딱 하나 들추고 돌아왔답니다.
아이들 사이에선 어느새 개구리소년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데요.

한데모임이 물론 있었지요.
바느질한 열 넷이 우르르 나와 저들 한 걸 자랑합니다.
동생 주려고 했는데 실패해서 그냥 내가 쓰기로 했다는 해인,
순간순간 긍정적인 그 아이를 보는 건 즐거움입니다.
오늘도 부실공사 되었다는 의로에게
"잘했네, 뭐."
류옥하다가 위로하네요.
지은이가 제 것(지갑)을 옷에 감추고 있다
"짜잔"이라는 말과 함께 꺼내보이자
준비한 대사처럼 "예뿌다아" 반응해주는 성빈
(비슷한 또래들의 끼리끼리식 반응),
미완성에도 이제는 편하게 내보이는 지혜,

뜨개질을 한 열 하나도 와르르 쏟아집니다.
찬슬이는 발목아대를 하고 나왔고
(재홍이의 뜨개질도 잘 도왔다지요)
작아서 개목도리로 쓰겠다는 동희의 아대
(동희는 때마다 마음을 모아 하는 물꼬식 절을 어찌나 예쁘게 하는지요),
그런 동희를 위해 손목아대를 떠준 은비,
자기 성과물을 포장해서 나타난 창준
(물꼬 상설 아이들이 한국화 연습했던, 고와서 포장지로 쓰는.
상설과 계자가 이리 또 만났네요.).

시간과 시간 사이에 한 재미들도 꺼냅니다.
용균 동희 재우는 창욱이랑 숨바꼭질을 해주었다지요.
해주었다고 했어요.
가라앉았던 소희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도 뵈네요.
아,
아주 자발적으로 기꺼이 나무를 하러갔고
다른 이를 위해 맘을 쓴 자신의 대견함을 칭찬하느라
바쁘기도 한 한데모임이었습니다요.

강강술래가 있고 한 판 춤도 추었지요.
옛 것과 새 것을 넘나들던 시간입니다.
딱히 특정 동작을 익히지 못하더라도
소리를 듣고 그것에 몸이 반응해보자 했지요.
모두 얼마나 열심히 흔들어댔던지
그간 묵은 모든 걸 그리 털었습니다.
마흔 아줌마 숙희샘도 죽으라 뛰고
남경샘은 오늘은 정말 재밌더라고,
딴 때도 재밌다고 생각하고 들어가고 그리 재미나다며,
"학교에서 애들이 안움직일 때 화나고,
아이들이 늘 무기력하게 앉아있고
좀 나가보라 하면 엎어져 있고, 귀찮대요,..."
한 고교의 교실 풍경을 전하셨지요.
"여기 와서 신나게 뛸 수 있었다,
그러면서 몸에 대해 다시 생각했어요."
자기를 사랑하는 시작이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 같다십디다.

장작놀이 하러 갔지요.
도려내듯 눈을 치우고 불을 피운 젊은 할아버지,
밀가루 같은 하얀 눈 가운데 불이 아, 보기 좋더라시네요.
"불가 노래 부르기"가 참 좋더라고,
자주 하는 일이지만 달빛도 좋고 별도 좋고
또 애들이 예쁜 노래를 많이 불러서도 그랬던 듯하다고
들어오며 상범샘도 보태데요.

감자요? 물론 구웠지요.
그럼요, 뛰어도 다녔지요, 얼굴에 묻힌다구.
맛은 또 얼마나 만나던지...

샘들이 어느 때보다 잠이 모자란 올 겨울 계자입니다,
돌아가며 아궁이를 지켜야했으니.
그런데 원래 파수를 맡은 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같이 지켜주며 아이들 얘기를 하고 또 했지요.
그 시간이 너무 귀해서 잠도 다 달아났던.
그러나 몇 날을 한 두시간을 자고 버티기랑
아무리 즐거워도 결코 쉽지 않지요.
이근샘도 몸을 위해,
가라앉은 몸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숙제가 되었답니다.

날이 푹해서 더 수월한 계자였나 봐요...
이쁜 아이들이 가셔주는 피로야 늘 두말할 것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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