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4.흙날. 맑음

조회 수 281 추천 수 0 2023.03.26 12:49:31


말이 넘치는 날이 있다. 오늘 같은 날.

움직임이 많았거나 생각이 많았거나.

 

일이 많아서 어려운 건지, 서툴러서 그러한 건지...

일머리가 밝지 못해서도 그럴.

공간이 좀 넓기는 하다.

그래서 여기서 저기까지 가자면 가는 걸음에 보이는 일들이 있기 마련.

일은 어느새 커진다.

아침뜨락에 들어갔다.

()()자 둘레를 재기 위해서였다.

대나무 울을 일부 치기도 했으나 밑둥이 썩어 넘어져 봄이 오면 다시 손을 보아왔다.

말뚝을 다시 박고 밧줄로 엮어볼까 생각 중이다.

수크령 마른 잎 무더기가 먼저 보였다.

낫으로 벴다.

옴자 둘레를 재자면 윤곽이 분명해야겠기에

호미로 긁어 자국을 냈다.

자꾸 마른 풀들이 걸렸다.

그것까지 검으려면 일이 너무 더디겠기에

한가운데로 밀치며 팼다.

그런데 옴자를 벗어난 샤스타데이지들이 호미에 자꾸 걸렸다.

그것들을 모으니 삼태기 한 가득.

옴자를 벗어나 샤스타데이지 포기들을 겨울데이지 곁 경사지에 심었다.

겨울데이지라면 겨울에 보자고 플라스틱 병으로 만든 꽃들을 그리 부르고 있다.

다시 옴자로 돌아가 마저 둘레를 쟀다.옮겨 심은 샤스타데이지에 물을 흠뻑 주었다.

벌써 비가 드물어 가뭄을 은근 걱정케 한다.

잠시 잴 줄 알았던 일은 옴자 둘레만도 벌써 길어버렸지만,

정작 아침뜨락에서 오늘 주제로 삼은 일은 나나돌탑 보수였다.

작년 시월 빈들모임에서 진주샘 규명샘 휘령샘들이

진주샘 뱃속에서 세상으로 오고 있는 아이 나나를 맞이하며 쌓았던 거였다.

학교아저씨도 올라와 손을 더해 아가미길 돌을 주웠더랬다.

겨울들머리께 한 귀퉁이가 무너졌고,

걷어내서 다시 쌓자 하고 보니 불안해 보이는 다른 곳들까지 덜어내

거의 바닥인 채 겨울을 보냈다.

, 다시 쌓아야겠다 할 때

마침 낼모레 세상으로 나온 나나가 다녀갈 거라.

오늘 서둘러 쌓기로.

판판한 돌들이 아닌 데다 작은 돌덩이들 앞에

잠시 막연하고 난감했다.

어딘가 시작점만 잘 잡으면 금세 속도가 붙을 줄 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하나씩 집어 올렸다.

돌도 앞과 뒤, 옆이 있다.

면과 면이 아귀가 잘 맞도록 놓는다.

쌓기 시작하면 어느새 일이 된다.

널렸던 돌들이 모두 돌탑으로 모였다.

학교 동쪽개울에서 둥그스름한 돌 하나 들어다

석탑의 보주처럼 맨 위 한가운데 올렸다.

상현달 빛이 내려앉았다.

 

학교 바깥수돗가 가까이 개울 쪽으로 마른 전나무 하나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마른지 오래.

기울이가 개울 쪽이어 넘어지더라도 그 방향이겠거니 하지만

그래도 위험했다. 바람이라도 크게 분다면 사람 다칠 수도 있으리.

겨울은 보내놓고 베야지 했지만,

봄 오면 봄 와서 몰아치는 일들이 베기 쉽잖을 거라.

마침 기락샘도 들어와 있으니 오늘 하자 했다.

엔진톱이 없지 않았으나 편하게 쓸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저녁답에 학교아저씨랑 셋이 붙어서 돌아가며 톱질을 하다가

도끼를 들고 와 찍기 시작했다.

뚝딱뚝딱 나무 찍는 소리에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시골 일에 서툰 기락샘도 오늘은 도끼가 쩍쩍 나무에 붙었다.

골프를 치던 가락인가.

헤드의 무게를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스윙!”

골프로 다진 도끼질이었네.

마침내 지름 30cm 죽은 나무가 쓰러졌다.

 

거참... 이제야.

2월 다 보내고서야 고로쇠수액을 생각해냈다.

고로쇠나무가 강하게 땅 속 수분과 함께 뿌리에 저장해둔 양분을 빨아올릴 때

수액을 얻는.

설악산 아래 오색에서 고로쇠물을 받을 수 있는 도구를 두 짝 얻어 왔더랬는데.

고로쇠는 없어도 고래방 뒤란 동쪽개울 쪽으로 가래나무 서 있다.

고로쇠수액 못잖다고들 했다.

오래 전 마을의 한 어르신이 거기서 물을 받아 물꼬에 나눠주신 적도 있었다.

우수부터 경칩까지 절정을 이룬다는데 3월 말까지도 채취한다고.

요즘은 온난화로 2월초부터 4월말까지도 채취한단다.

낼모레 경칩인데, 오늘 나무 바깥쪽으로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고,

아래는 비닐주머니를 달아두었다.

하는 일이 자주 이리 더디다.

 

봄이 왔고, 벼르던 일들이 하나씩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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