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17.쇠날. 흐려가는 오후

조회 수 281 추천 수 0 2023.04.05 23:56:46


,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 둘과 찻자리.

인제만 해도 셋이었던 군부대가 하나로 줄었다 한다.

어디로 이동을 했는가 하니 군인이 줄어 통폐합을 한 것.

그나마 군속(군무원)으로 딸린 아이들이라도 있었는데,

이제 겨우 얼마 안 되는 초등아이들 수였다.

사람들이 떠나는 곳에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이 땅의 시골 부모들이 가지는 공통의 고민을 안는다는 것.

그래도 한 아버지는

내 새끼가 버섯 키우고 고로쇠 수액받고 그리 살아도 좋겠노라 했다.

게다 여기는 관광자원이라도 있는.

용대리는 국내최대 황태산지이고,

백담사 아래라 설악산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고.

속초로 미시령 터널이 뚫렸고, 해안을 따라 북으로도 남으로도 해수욕장이며 어촌이 줄을 이었고.

이 아비만 해도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먹고살 최소한의 기반만 있다면 이곳 삶도 괜찮다는,

현재가 괜찮다는 그 말이 고마웠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예닐곱 살 아이부터 유투브를 달고 살고 있다.

나는 이 다음 세계가 어디로 흐를지 몹시 궁금하다.

과거에는 무엇을 해보자는 쪽이었지만

지금은 관망하면서 사람의 마음만은 놓치지 않는 쪽을 강조한다 할까.

 

어른의 학교, 황태덕장 사흘째.

아침 9시 출근하여 낮밥으로 한 시간을 빼고 저녁 6시까지 8시간 노동.

최소임금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잠으로 몸을 회복해야 한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일찍 잤고 그만큼 일찍 일어났다.

책상 앞에서 글 한 줄 쓰고, 책 한 줄 읽고 작업복을 입었다.

아침에 세수하는 데 코피가 좀.

미세먼지 때문이거나 일 강도 때문이거나.

그리 힘겹지는 않은데,

농번기 물꼬 일에 견주면,

계자에 견주면 더욱 아무것도 아니겠는데.

여튼 계속 황태 머리를 엮고 있는 끈을 자르고, 자루에 넣고.

 

둘이서 백을 한다면 혼자서 오십을 해얄 것이나

그게 또 그렇지가 않았다.

한 사람이 덕목에서 황태를 내리고 끈을 자르면

다른 이가 자루에 채워 넣는데,

그걸 혼자서 하자면 두 사람이 하는 절반의 시간보다 더 걸렸다.

15년을 여기저기 덕장에서 일해 왔다는 베트남 여인은

흔히 이 현장 사람들이 쓰는 낫 대신 가위를 들고 똑똑 황태를 따내렸는데,

혼자 하면서도 하루 70자루를 한다 했다.

나는 첫날 20자루로 시작해 오늘에서야 겨우 40자루를 해냈다.

그것이나마 가능했던 건

이틀은 덕주가 황태를 내려주었던 바.

걷어서 모아둔 2층 덕목의 것들을 기어 올라가서 내렸다.

내려줄 덕주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서.

첫날부터 황태 9통을 140미씩 자루에 넣었고,

오늘 오후에는 자리를 옮겨 8통을 120미씩.

 

비린내였다.

말린 거라 하나, 비린내 안 나는 생선이라 하나

바닷것은 바닷것.

온몸에서 비린내가 났다.

덕장에서 돌아오면

씻으면서 작업복에서부터 모든 옷을 빨아 널었다. 작업모까지.

 

215일부터 515일까지 산불예방으로 큰 산이 닫히자

산 아래 마을 역시 가게들에 사람들이 듬성듬성이었다.

수퍼도 종일 사람 보기 어렵다고.

그러니 청과라고 써놓아도 이 계절에 이곳에서 과일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 했다.

15km의 원통이 용대리 사람들의 생활권.

아이들 학원도 그곳에 있었고, 큰 마트도 그곳에.

과일이 있으면 딱 좋겠다 싶은데

마침 멀리서 벗이, 고생한다며 과일상자를 보내왔다.

세상 참 좋다. 좁고 가깝다.

사람 사이도 그만큼 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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