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18.흙날. 살짝 퍼진 해

조회 수 507 추천 수 0 2023.04.05 23:57:25


어른의 학교-황태덕장 나흘째.

해건지기가 하루를 끌어준다.

힘들어서 늦도록 자고 부랴부랴 챙겨 나간다 짐작할 수도. 오히려 그렇지가 않으네.

뻐근한 온 몸을 일으켜주는 게 수행이라.

밤에도 몸을 풀고, 아침에도 몸을 푼다.

잠으로 몸을 회복하며 일하리라 마음 먹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몸을 풀고 책상 앞에 앉는다.

 

황태를 담는 자루에는 만보가 하나씩 들어간다.

‘8/120/영경/**덕장이 적힌 종이.

작업실명제 때문이었을 게다. 먼 시간이 생각났다벌써 20년도 넘어 된,

아이를 데리고 세 해 동안 여러 나라의 공동체를 돌 적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브루더호프 공동체에도 머물렀다.

장애아들을 위한 장난감이며 가구로 유명한 그곳에서

조립과정에 참여하기도.

역시 실명으로 조립자의 이름을 새겼더랬다. 

그만큼 책임을 요구했던.

어느 날 당신은 나의 황태를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손이 그리 더딘 사람이 아닌데

여기서는 작업이 그렇지가 못하다.

그리 훈련된 손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왜냐하면, 가장 큰 까닭은 선별에 걸리는 시간이 제법 길기 때문.

상처가 있다고 황태가 황태가 아닌가.

명태를 잡고 실어오고 얼리고 할복하고

그것을 널고 말리고 가꾸었을 손을 생각하는 거다.

소비자를 생각하시라니까.”

저도 소비자라니까요.”

이걸 정품으로 넣느냐 파태로 넣느냐로 고민하게 되는.

세어 자루에 넣다가도 어느 한 마리를 요리조리 돌려보게 되는.

그래서 나의 자루 작업은 한없이 더뎌지고 마는.

 

낮밥을 실하게 먹는다.

몸을 써야 하니 차 한 잔으로만 아침으로 먹기에 부족하겠다 싶어

과일과 빵을 같이 먹기는 하지만 소량,

저녁에는 또 저녁대로 간단하니.

점심 값으로 나오는 금액을 고스란히 점심으로 알차게 다 쓰기로 한.

오늘은 오색령(한계령) 고개 너머 오색에서 저녁 초대를 했다.

물꼬의 논두렁이 사는 댁.

거기 아흔이 넘는 노모는 온 동네를 다스리는 촌장 같은 어르신.

얼마나 생기 넘치고, 음식은 또 얼마나 거한지.

굽이굽이 고갯길을 1시간 가까이 걸려 가야는데

그 밥상을 생각하면 걸음이 멀지 않았더라.

덕장에서 일한다고 황태를 사서 갔네.

며칠 만에 단단한 저녁밥을 먹었다.

자고도 가라 하였으나 지금은 내 집이 용대리라.

 

여기저기 멍이 들었다.

황태가 때렸다.

쌓여있는 황태를 끌다가, 끈을 자르고 던지다가 황태로 제 몸을 치게 되기도.

덕목은 또 얼마나 우리를 깨어있게 하는지!

나지막한 높이는 자꾸 머리를 부딪히게 만든다.

그 아래서 천막 깔고 작업하니.

조심조심 머리를 들어보면 위의 덕목 사이가 비어 있기도 해서

괜스레 힘만 잔뜩 빼는 일도 있고,

틀림없이 덕목이 빈 곳이라고 안심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꽝,

이쯤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일어서다 그만 꽝,

그렇게 머리에 혹을 줄줄이 달고 있다.

직업병일세. 산재다 산재.

 

여기서는 여기에서의 삶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밤에는 모임이 있었다.

이곳에 이르기까지 소개를 시켜준 이들이 있고,

그들에게 인사이고 동네주민 탐방이고 그런.

곡주도 기울이는 밤이었네.


 

글 쓰는 의사를 꿈꾸던 아이가 자라

의사가 되고 첫 글을 썼다. 오늘자 오마이뉴스의 메인 기사였다.

물꼬의 품앗이샘이자 논두렁이기도 한,

그래서 아들이라고 쓰기보다 하다샘이라 쓰겠다.

그가 쓴 글을 보내왔는데,

읽지도 못하는 밤일세...

 

https://v.daum.net/v/20230318120608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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