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20.달날. 맑음 / 백담계곡

조회 수 284 추천 수 0 2023.04.10 23:46:02


걸었다.

손도 발도 사람의 말도 닿지 않은 듯한 계곡.

계곡을 끼고 걷다 길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아주 가끔 응달에 언 눈이 보이기도 했다.

봄이라기엔 일렀다.

도로가로 망이나 나무로 가로막이 쳐져있어 계곡으로 사람이 내려설 수는 없었다.

그러니 또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을.

몰랐다. 백담사에서 용대리에 이르는 이곳이야말로 백담계곡의 정수였다.

백담(百潭)은 깊은 소가 많아 불려진 이름이지 싶은데,

맑은 물로도 읽혔는데, 그보다는 하얀 바위로 더 어울릴 뜻이었다.

바윗빛에 물빛에 놀라기라도 한 양 자주 걸음을 세워야했다.

인간에게 감탄어조차 내지 못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걷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을.

 

황태덕장 작업 엿새째여야 하는데,

덕주 사정으로 덕장이 쉬었다.

하루를 그리 벌어 아침에는 용대2리 이장님과 만남이 있었고,

덕분에 내일 황태가공작업장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네.

황태 가공은 주로 개인집에서 맡아서들 한다는데

그곳은 마을기업이라 개방이 가능하겠다는.

내일 오전 덕장 작업 가기 전 방문키로 한다.

 

백담사-버스매표소(주차장), 7.1km, 버스로 20분 이동.

10:30 용대2리 마을버스매표소에서 시작해

설악산탐방센터 백담분소를 지나 백담사로 향했더랬다.

등산객 차량은 백담분소까지만 접근할 수 있다.

설악산으로 들 땐 대체로 이 구간을 마을버스를 타고 간다.

산오름을 예정하지 않은 이런 날이 아니면 몰랐을(눈에 담는 풍광) 길이라.

11:40 백담사에 닿았다.

백담사 경내로 들어서다 마주친 등산객 둘에게 가벼이 고개 숙여 인사 건네다.

빨리 오셨네요! 아까 아래서 봤는데...”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셨다는 말일.

 

계곡에 다리 하나 놓고 있었다.

공사 현장 곁에 컨테이너가 있었고, 사람이 보였다.

뛰다시피 걸었던 걸음이라 출출했다.

먹을 게 없나 하구요...”

그런 거 없는데... , 이거 드릴까요?”

캔커피. 산 아래서는 안 마시는. 하지만 마다하지 않는다. 반갑기까지.

백담사가 얼마나 남았어요?”

손전화로 확인해보면 될 것을 그걸 귀찮아한다.

그런 곳에서는(산길에서) 더욱 손전화 꺼내기를 저어하는.

다 왔어요. 바로 앞이에요.”

, 그럼 이거 도로 드릴까요?”

한숨을 돌리며 벌컥벌컥 마시다.

다리 건너 몇 걸음 안 걸었는데 백담사 일주문이었다.

곁으로 주차장.

 

경내 들어서서 기웃거린다.

공양간이 어딨더라...

지나는 젊은 스님, “공양시간 지났어요.” 했다.

공양물을 파는(?) 보살, “공양시간도 지났고, 여기는 외부 사람 먹을 데 없어요.”

하고 두 말 못하게 했다.

다원에 들었다.

밥 먹고 싶어요.”

매점에 컵라면도 판단다.

밥 먹고 싶어요.”

공양시간 지났지만 혹시 모르니 가보라는, 다원의 선한 젊은 처자.

공양간 들어서니 공양보살 둘 설거지 중. 이미 시계는 정오를 넘어갔고.

용기가 대단하시네...”

더 어른으로 보이는 보살이 기다려보라네.

밥과 볶은 김치와 두부부침을 꺼내주시다.

어디 걸터 먹나 두리번거리니

들어와서 안 건물 툇마루에 앉아라 했다가 식당을 내주셨더라.

전직 외교관이었다는 그 어르신은 단호박수프까지 챙겨주셨다.

나오면서 막 눌고 있던 누룽지까지 얻어 나오다.

 

법당들을 주욱 들여다보고 만해기념관도 들다.

서울권 충천권 홍성권역의 만해 행적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고 나오다

오래전 사천 다솔사에서 만해 머물렀다던 곳 마당의 나무 한 그루,

편백이었던가 측백이었던가를 기억해냈다.

 

, 걸어 올라가느라 몰랐는데,

버스를 타고 내려오려니 지갑이 없다.

...

버스 기사에게 내 이 마을에 머물고 있으니 가져다 주겠다 했다.

그러라고 했고, 그리했다. 주민 같아 좋았어라.

절 아래 마을에 깃들어 열흘이면, 그것도 일하는 사람이면

뭐 주민으로 쳐줄 수도. 하하.

 

이 마을에서 덕장을 소개해주었던 어르신네에 저녁밥을 샀다.

그거 벌어 방값 내고 밥값 내고 오는 경비도 안 나오겠네.”

그러게요.”

하지만 여기서 번 돈은 여기서 쓰기로 하는 것도 책임여행 아니겠는지.

 

마을에 깃들어 있으니 마을 내부 소식도 듣게 된다.

갈등이 있다거나 하는.

돈이 문제다.

절집의 큰스님이 절 아래 마을에 유산을 남기고

그것을 둘러싸고 공금을 횡령했다거니 안 했다거니,

이렇게 써야 한다거니 저리 써야 한다거니.

작성된 문건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문제는 또 그 해석과 이행이라.

인간사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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